'이태원' 국정조사, 與 방어막 뚫을까
여야 합의로 24일부터…예산안 처리 직후 본격 진행
조사 대상 기관서 대통령실 경호처, 법무부는 빠져
자료 제출, 청문회 증인 선정, 기간 연장 등 첩첩산중
정부여당 방어전 주력에도 실질적 성과 거둘지 미지수
국민의힘이 줄곧 반대했던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가 막판 전격적인 협상 타결에 따라 여야 합의로 24일부터 시작하게 됐다. 참사 발생 한 달이 다 돼서야 가까스로 닻을 올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료 제출과 청문회 증인 선정을 놓고 정부여당이 샅바싸움으로 일관할 가능성이 높고, 쟁점이던 대통령실 경호처와 법무부는 대상 기관에서 빠져 국정조사가 얼마나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국민의힘 주호영·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2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실시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여야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정조사 계획서를 표결로 승인한 뒤 국정조사특위를 꾸려 첫 회의를 가질 계획이다.
특위는 민주당 9명(우상호 위원장, 김교흥 간사, 진선미·권칠승·조응천·천준호·이해식·신현영·윤건영 의원), 국민의힘 7명(이만희 간사, 박성민·조은희·박형수·전주혜·조수진·김형동 의원), 비교섭단체 2명(정의당 장혜영·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으로 구성된다.
국정조사 기간은 당초 야당이 요구했던 60일에서 줄어 45일로 합의됐으며, 자료 제출 등 사전 준비기간을 거쳐 내년도 예산안 처리(법정 시한 12월 2일) 직후 기관 보고, 현장 검증, 청문회 등 본격적인 조사를 진행한다.
조사 대상 기관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과 국가안보실 국가위기관리센터, 국무총리실,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중앙응급의료상황실 포함), 대검찰청, 경찰청, 서울경찰청, 서울용산경찰서, 소방청, 서울종합방재센터, 서울소방재난본부, 용산소방서, 서울교통공사, 서울특별시, 용산구 등이다.
대통령실 경호처와 법무부는 대상 기관에서 빠졌다. 당초 민주당은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한동훈 법무장관이 주도한 마약 수사로 경찰 인력 배치에 문제가 생겨 참사의 한 원인이 됐는지 규명해야 한다며 이들 기관을 국정조사 대상에 포함시키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민의힘 측이 완강히 반대하자 결국 민주당은 협상 타결을 위해 이 부분을 양보하고 대신 대검찰청을 조사 대상에 넣었다.
국민의힘은 지금까지 ‘선(先) 수사, 후(後) 국정조사’ 방침을 고수해왔지만 이날 의원총회를 열어 ‘예산안 처리 후 국조 실시’를 당론으로 채택하며 입장을 바꿨다. 예산안 처리에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인 데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 대응이 부적절하고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 정치적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정진석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를 만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사퇴와 함께 국정조사 수용을 촉구한 것도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당시 유족들은 "특별수사본부를 한다지만 제대로 수사가 되겠느냐"며 "똑같이 진실을 밝히자는 건데 국정조사로 밝히면 될 것 아닌가. 무엇이 두려운가"라고 말했다. 22일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주관으로 유족들이 눈물의 기자회견을 열고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국민의힘은 무엇보다 ‘민주당+정의당+무소속’의 거대 야권 공조에 맞서 국정조사를 저지하기에는 수적 열세로 역부족이다. 민주당은 자체 의석만으로도 국정조사 계획서를 본회의에서 단독으로 보고하고 의결할 요건을 갖추고 있다. 현재 국회 의석수는 민주당 169석, 국민의힘 115석, 정의당 6석, 무소속 7석, 기본소득당 1석, 시대전환 1석이다. 무소속 7석 중 김진표 국회의장을 제외한 김홍걸·민형배·양정숙·윤미향·박완주 의원은 본래 민주당 출신이고 국민의힘 쪽 성향은 양향자 의원뿐이다.
따라서 민주당, 정의당, 친민주당 무소속 의원을 합친 야권 의석수는 재적의석의 3분의 2(180석)가 넘는 181석이 돼 대통령의 거부권조차 넘어설 수 있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조사 참여를 거부하는 교섭단체의 의원은 조사위원회에서 제외할 수 있기 때문에 국민의힘 반발을 어렵지 않게 무력화할 수 있다.
특히 민주당으로서는 이태원 참사에 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이 일차적인 목적이지만, 윤석열 정권이 문재인 정부 및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상대로 전방위적인 사정의 칼날을 휘두르는 상황에서 국정조사가 정국 흐름을 바꾸고 주도권을 잡는 카드로서도 중요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일부 양보를 하더라도 ‘반쪽 국조’보다는 국민들 앞에 여야 합의로 시행하는 모양새를 갖춰 실효성을 좀 더 확보하는 방향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여야 각각의 셈법에 따라 우여곡절 끝에 국정조사가 출항하게는 됐지만 참사의 원인과 사후 대응 등 주요 쟁점에 대한 시각차가 뚜렷하고 특히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실과 행정안전부 등 정부 측을 엄호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여 자칫 소모적인 공방전으로 흐를 수도 있다.
국정조사에 부를 증인 선정과 실제 출석 여부, 자료 제출 범위, 조사 기간 45일을 필요에 따라 연장하는 문제 등을 둘러싸고 여야 간 첨예한 신경전과 충돌이 거듭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