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문항’, 윤석열 한덕수 만든 학벌주의 산물
‘극한 변별력’ 시험승리자들이 사회승리자 되면 안돼
‘킬러’의 유령이 온 나라를 떠돈다. 수학능력시험(수능)의 킬러 문항(초 고난도 문항)이 사교육업자들에게 돈 폭탄을 안긴다는 사실에 분노한 대통령이 킬러를 만든 사람을 킬하겠다고 한다.
지난 6월 15일 수능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이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지시한 내용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6월 모의고사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교육과정평가원장과 교육부 대입 국장을 경질했다. 킬러에 맞서기 위해 학원에서 새벽까지 졸음을 쫒으며 방패를 깎아온 전국의 수험생들,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일생일대의 전투를 준비해온 전사들은 맨붕에 빠졌다. 이들 전사들의 후원자이자 투자자인 학부모들은 오히려 상담하러 다시 학원으로 몰려든다. 킬러가 없어지면 그동안 쏟은 노력과 시간은 모두 헛된 것이 될 판이 아닌가?
‘킬러’ 소동에 멘붕 빠진 수험생과 학부모
한덕수 부총리도 한술 더 떴다. 킬러 문항은 국가가 배제할 대상이라 하면서, 사교육 카르텔이 그 주범이라고 공격했다. 국민의 힘과 정부가 당정 협의를 거쳐 킬러 문항 죽이기에 나서자, 거짓 과장 광고로 배를 불려왔다고 지목받은 사교육업체는 모두 잠재적인 범죄 집단으로 고발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사교육의 온상으로 지목돼 문재인 정부에서 폐지하기로 결정한 자사고, 외국어고, 영재고는 그대로 살린다고 한다. 곧 ‘공정한 수능’ 대책이 나온다고 한다.
잠 잘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 꿈에 도깨비 나왔다고 잠자는 사람 모두 깨우고 난리를 피는 꼴이다. 킬러 문항,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지문들이 수능시험에 나온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며, 왜 그런 문항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대통령 빼고는 온 국민이 알고 있다. 사교육이 창궐해서 매출 수천억을 버는 대치동 학원이 주택가에 들어와 있는 대학 캠퍼스처럼 번성하고, 백억의 수입을 올리는 일타 강사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것도 킬러 문항 때문이라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시인도 자신이 지은 시와 관련된 수능 문제를 풀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일도 기억난다. 수능에서 ‘엄격한 변별’을 해야 한다는 이 거역할 수 없는 정언명령을 국민이 그냥 따른 이유는 사교육 카르텔 때문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수시가 금수저 전형이라는 보고를 듣고 정의감이 발동해 ‘공정’의 이름 아래 수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폈는데, 윤석열 정부는 이제 수능 내에서도 킬러가 문제이니 킬러를 없앤 ‘공정한 수능’을 하겠다는 것이다. 수능은 공정하고, 수능에서 킬러만 제거하면 정말 공정해지는가? 그러면 물수능 비판하면서 엄격한 변별력 유지를 주장해온 보수 언론이야말로 이 사교육 카르텔의 최대 공모자들이 아닌가?
결과를 원인으로 착각한 입시 처방
결과를 원인으로 착각하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소동이 발생한다. 어려운 수능은 출제나, 사교육업자와 교육부 간 비리 유착 때문이 아니다. 변별의 필요는 한국 시험제도의 오랜 역사 속에서 건드릴 수 없는 공리였다. 서열을 매기는 한국식 시험제도의 존재 이유였으며, 대학의 서열과 사회적 보상의 배분과 관련된 극히 복잡한 사회구조의 산물이다.
입시 경쟁이 극도로 치열할수록, 즉 일류대 합격 여부가 인생에서의 보상과 대우를 결정적으로 좌우한다면, 대입 시험은 수학 능력이라는 대학 공부할 자격을 갖춘 사람, 즉 적임자 선발의 원칙을 지키기보다는, 탈락한 다수를 승복하게 하는 엄격한 선별 기능을 해야 한다. 즉 기출 문제를 모두 숙달한 시험 선수 학생들이 모든 예상 문제에 대한 정답을 맞추는 법을 사교육 시장에서 수없이 훈련을 받아 만점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출제자들은 킬러 문항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암기력 테스트가 아니라 수학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고안된 이 수능이라는 제도가, 이제 변별을 위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려운 시험이 되었다. 불수능과 물수능 논란, 수능 문제 시비는 수능이 시작된 이후 수십 년 계속된 일이다. 2014년 이후 수능 출제 오류는 6번이나 반복 발생했고, 2021년 수능시험 생명과학(2) 문제가 오류로 밝혀져 전원 정답 처리를 한 적도 있다.
수능 관련 이 모든 논란의 역사에 대해 학부모와 학생, 그리고 학원가의 모든 입시 전문가들은 잘 알고 있고, 그것이 쉽게 교정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수능이 대학에서 학업을 수행할 수 있는 학생들의 자격을 확인하기 위한 시험이 아닌, 말 그대로 수학 능력을 엄격하게 변별할 수 있는 최종 고사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즉 수능은 자신의 기능을 사실상 잃어버렸으나 폐기 이후의 대안이 없기 때문에 아직 살아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교육과정평가원장을 지낸 성기선은 “교과 중심으로 못 푸는 수능은 수명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국의 모든 학생을 한 줄로 세워서 수직 서열화된 대학에 학생들을 성적에 맞게 집어넣기 위해서는 엄격한 성적 차등을 두어야 한다는 논리, 즉 변별이라는 사회적 임무를 다하기 위해 식물인간이 된 수능은 계속 호흡기를 꼽고 있어야 한다.
‘트릴레마’의 포로가 된 채 호흡기 꼽고 있는 수능
대학 입학시험에서 공정과 객관성, 기회균등 원칙을 최우선으로 할 것인지, 시험 성적 외의 다양한 능력과 잠재력을 갖춘 최적의 인재를 선발하자는 원칙을 중시할 것인지, 아니면 학교교육 정상화를 우선으로 할 것인지는 일종의 트릴레마다. 즉 한쪽을 해결하려면 다른 두 쪽이 문제가 되는, 정말 풀기 어려운 문제다. 과거 사지선다 지필고사에 대한 비판이 일자, 지필고사 이외의 다양한 형태의 수행 평가가 시행됐다. 교과과정 외의 비교과 영역인 자치동아리 봉사활동, 독서, 행동 특성과 인성 등 학생의 학교생활 전부가 시험에 포함되었다. 지필고사 내에서도 수능, 논술고사로 다양화되었고, 평가 방법에서도 수시와 정시, 그리고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입학사정관제 등이 추가되었다. 그런데 수시가 금수저 전형이라는 비판이 일자 수능에 무게가 실렸고, 사교육은 더 심해졌다.
수능, 킬러 문항 때문에 학교 교육이 정상화되지 않고, 사교육이 창궐하고, 일타 강사가 돈을 벌고, 학생들과 학부모가 스트레스 받고, 학생들이 정신병과 우울증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변별과 서열화의 필요성 때문에 사교육이 창궐하고 킬러가 나온 것이다. 즉 킬러는 부산물이자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그래서 수능, 그리고 수능의 킬러 문항은 아무 죄가 없다. 이런 문제를 야기한 것은 수능이 아니라 수능이라는 제도를 없애지 못하는 한국 대학 서열이다. 킬러는 악의나 부패의 산물이 아니다. 킬러는 변별이라는 건드릴 수 없는 최고 규칙의 종속변수이지 결코 독립변수가 아니다. 그래서 킬러를 제거하면 고등학교는 수시의 비중을 높일 것이고, 대학은 변별의 필요 때문에 본고사 부활 카드를 꺼낼 것이다. 사교육 기관은 암기형 수능을 대비하기 위한 상품으로 수험생을 끌어들일 것이고, 더구나 자사고나 외고는 본고사 대비, 혹은 암기형 수능 문제 잘 푸는 기술을 가르치는 학원이 될 것이다.
대통령이 교육이 아니라 입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아주 오래된 풍경이다. 교육 문제에 대해 무지하거나 평소 소신이 없었던 대통령일수록 교육정책은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주로 입시만 거론한다.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이 모두 그러했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 입시는 교육에 심대한 영향을 주지만 입시가 교육은 아니다. 입시는 잘못 건드리면 안 하는 것보다 못하며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든다. 입시 문제를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해도 결과는 언제나 사교육 확대로 가고, 부자들은 언제나 가장 빨리 새 입시제도에 편승하여 최종 승리자가 된다.
대통령은 입시 아닌 교육, 사회개혁 영역에 개입해야
윤석열 대통령의 킬러 잡기, 사교육 잡기 소동은 매우 희극적인 풍경이다. 왜냐하면 윤 대통령과 같은 서울대-고시-검사 출신이 바로 이런 상황의 최대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서울대-고시-검사-대통령이 연결된 것은 바로 한국의 점수 서열화 대입제도가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시=출세로 등식화된 일제 강점기 이래의 사법 관료 지배체제와 시험 지옥의 혁혁한 공로를 세운 요소가 바로 대입의 변별력, 즉 킬러였기 때문이다. 시험 잘못 본 사람도 출세할 수 있고, 학문적 훈련, 경험, 식견과 경륜이 시험성적보다 권력과 부를 얻는데 훨씬 더 중요한 요인이었다면, 대입 지필고사에서의 엄격한 변별의 필요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시험능력주의’라는 책에서 이러한 고난도의 경쟁과 엄격한 변별력을 가진 시험의 승리자들이 사회의 승리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은 킬러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킬러를 만들어내는 것은 문제풀이식 사교육 행태도 교육부 관료들도 아니다. 킬러는 바로 대입이라는 결정적 관문을 통과하여 출세를 할 수 있었던 한국, 즉 윤석열과 한덕수를 대통령과 총리로 만든 이 학벌주의 한국 사회다. 교육에 대해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고, 자녀를 길러보지도 않은 사람이 갑자기 대통령이 됐다.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사교육 문제를 마치 새로운 것인 양 엄포를 놓을 수 있는 이 후진적 정치구조, 그것이 문제의 원인이다. 검사 판사 의사들이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검사가 갑자기 대통령도 되는 나라에서 죽기 살기의 대입 전쟁은 불가피하고, 사교육의 창궐을 막을 방법이 없다.
즉 사교육 문제는 입시정책 변경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 원인이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장기 교육정책을 대학 정책, 산업 정책, 노동 정책과의 연관 속에서 접근하여 대입의 병목에 집중된 과도한 열망을 식히고 분산시켜야 한다. 그래야 공교육이 정상화된다. 이런 문제는 5년 단임 대통령이 풀 수도 없고, 건드릴 수도 없기 때문에 국가교육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정부는 그런 합의제 기구 자체를 부인하지 않는가. 민주 정부의 그동안의 실패 역사도 만만치 않지만, 그러한 고민과 제도화의 모든 과정을 부정해버리면, 도대체 우리는 30년 전 논의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