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은 말자' 미‧중 대화모드로 급선회…난감해진 윤 정부
시진핑 "도전 의사 없어"…블링컨 "신냉전 추구 안 해"
미국, 대중 포위망 '균열'로 강경에서 대화로 전환
블링컨 "대만 독립 지지하지 않아"…중국에 '선물'
중 "봉쇄 중단하라"…미 "국가 안보 조치는 지속"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마주 달리는 열차와 같았던 미국과 중국이 가까스로 충돌을 피했다.
그동안 양국은 대만 문제를 비롯해 미국의 대중 디커플링(공급망 배제) 추진, 중국의 경제적 강압,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국-러시아 협력 관계 등을 두고 전방위적인 갈등을 빚었다. 서방 중심으로 대만이 '제2의 우크라이나'가 되는 미‧중 무력 충돌 시나리오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을 정도다.
이번에 대화모드로 급선회한 것은 미국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전격으로 베이징에 파견한 것이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18일 중국의 친강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19일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당 중앙 외사판공실 주임)을 각각 만난 데 이어 시진핑 국가주석을 접견하고 미‧중 관계의 '해빙'을 희망하는 바이든의 메시지를 전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1년 출범 이후 인도‧태평양 전략에 따라 동맹국들과 함께 경제적, 군사적 대중 포위망 구축과 압박에 주력해왔다.
특히 '경제안보'를 내걸고 반도체 등 첨단 핵심기술의 대중 수출 통제와 핵심 광물 공급망 배제 등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미국, 대중 포위망 '균열'로 강경에서 대화로 전환
그러나 프랑스와 독일 등 서방 동맹국 내에선 물론, 중국 방문 러시로 상징되는 미국 대기업들의 반발이 확산하자 강경에서 대화로 정책 전환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몰렸다. 이 와중에도 전혀 흔들림 없는 '진짜 충복'을 꼽자면 윤석열 정부의 한국이 유일하거나, 일본을 포함하면 둘에 그친다.
또한 미국의 대리전인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에너지와 식량 부족, 과도한 국가부채 등으로 경제위기에 직면한 '글로벌 사우스'(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동, 중남미의 개도국)의 불만이 미국과 서방으로 향하고, 이에 반비례해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사정도 고려됐음 직하다.
지난달 6~8일 블링컨 장관이 '굴욕'을 무릅쓰고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아 반체제 인사 암살 배후로 지목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나 소원했던 양국 관계의 복원을 시도한 것이나, 21~23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국빈 방미를 초청해 성대한 접대를 준비 중인 것도 글로벌 사우스의 지역 강국들을 미국의 경제적‧군사적 세력권으로 '포섭'하려는 작업이다.
블링컨 장관의 이번 방중에서 극적인 돌파구는 없었다. 그러나 미‧중 모두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다. 충돌로 비화할 수 있었던 '갈등'을 놓고 너무 늦지 않은 시점에 "솔직하고 실질적이고 건설적인"(미국)이거나 "솔직하고 심층적이고 건설적인"(중국) 대화를 했기 때문이다.
시진핑 "도전 의사 없어"…블링컨 "신냉전 추구 안 해"
대화를 통해 미‧중 관계의 안정화가 필요하며, 갈등과 경쟁을 하되 대화를 지속하고 오판을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분야에서 소통 채널을 가동하자는데 공감대를 이뤘다. 이에 따라 친강부장의 방미 등 고위급 대화를 지속하기로 했으나 군사 소통 채널은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미‧중 관계의 기초에 대한 논의는 뜨거웠다. 시진핑 주석은 19일 인민대회당에서 블링컨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미‧중의 올바른 공존에 인류의 미래와 운명이 걸려 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중국은 미국의 이익을 존중하며, 미국에 도전하거나 미국을 대체하지 않을 것"이라고 패권 도전 의사가 없음을 재확인했다. 그러면서 "미국도 중국을 존중해야 하며 중국의 정당한 권익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왕이 위원도 "미국은 '나라가 강해지면 반드시 패권을 추구한다'는 인식의 틀로 중국을 보지 말길 촉구한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서구 제국의 역사에서 신흥 강국이 부상하면 기존 패권 국가와 충돌하거나 전쟁한다는 그레이엄 앨리슨의 '투키디데스 함정'이라는 인식 틀로 현 중국을 보면 오판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왕 위원은 "국무장관의 베이징 방문은 중·미 관계의 결정적인 타이밍에 이뤄졌다"며 "대화냐 대항이냐, 협력이냐 충돌이냐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블링컨 장관은 미국의 대중국 입장을 5가지로 요약했다. △ '신냉전'을 추구하지 않는다 △ 중국의 제도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 동맹 관계를 강화해 반중국 행동을 하지 않는다 △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 △ 중국과 충돌할 의사가 없다 등이다. 이에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갈등이 아니라 경쟁임을 매우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블링컨 "대만 독립 지지 안 해"…중국에 '선물'
중국은 '핵심 중 핵심 이익'으로 여기는 대만 문제와 관련해선 시종 비타협적 태도를 고수했고, '대만 독립'을 지지 않는다'는 블링컨의 발언을 끌어내는 등 나름 성과를 거뒀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친강 부장은 18일 회담에서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 이익 중에서도 핵심이며 중‧미 관계의 가장 중대한 문제이자 가장 두드러진 위험"이라고 말했다.
왕 위원도 19일 회동에서 "타협하거나 양보할 여지가 없다"며 △ '하나의 중국' 원칙의 진정한 준수 △ 중국의 주권과 영토의 완전성 존중 △ 대만 독립에 대한 명확한 반대를 요구했다.
이와 관련,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블링컨 장관은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대만관계법, 미·중 간 6대 보장, 3개 코뮈니케에 따른 '하나의 중국 원칙'에 변화가 없음을 재차 강조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또한 블링컨은 19일 베이징 주중 미대사관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도발적인 행동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고 소개한뒤, "미국이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으며 어느 일방의 현상 변경 시도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소개했다.
여기서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표현과 함께 '어느 일방'이란 표현이 눈에 띈다. 그동안 미국과 그 동맹국은 중국의 대만 무력통일 시도를 비판할 때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변경 시도'라는 관용표현을 써왔다.
여기서 '힘에 의한 일방적'의 주체는 중국을 뜻하는 데 반해, '어느 일방'은 중국 또는 대만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미국이 '중립적' 위치로 물러났다는 말이 된다.
중국 "봉쇄 중단하라"…미국 "국가안보 조치는 지속"
공급망 문제를 놓고도 치열한 줄다리기가 있었다. 왕이 위원은 블링컨 장관에게 대중국 불법적 독자 제재를 철회하고, 첨단 반도체 등 전략산업 분야에서의 대중 봉쇄 중단을 요구했다.
이에 맞서 블링컨은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불공정하고 비시장적 경제 관행과 마이크론에 대한 판매금지 처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대중 경제정책의 초점은 종전의 디커플링이 아니라 '디리스킹'(de-risking·위험제거)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을 중국 측에 밝혔다.
블링컨은 "미국은 핵무기나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주민을 억압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은 중국에 제공하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국가 안보에 필요한 조치를 계속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전했다"고 말했다.
중국과의 교역과 투자는 계속하되, 전략적 경쟁 상대인 중국의 군사력을 강화함으로써 미국 안보를 약화할 수 있는 기술과 관련해선 중국과의 '단절'을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연합뉴스는 풀이했다. 디리스킹의 핵심 대상이 첨단 반도체와 그 기술이라는 점에서 이를 두고 미‧중 경쟁은 매우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중 대화모드로 급선회…난감해진 윤 정부
미국 측에서만 공개한 것 중 주목할 만한 내용이 있다. 블링컨에 따르면,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러시아에 살상무기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또한 중국에 북한이 대화에 나서게 하고, 위험한 행동을 중단하게 압박할 "특별한(unique) 위치(역할)"에 있다고 말해 중국의 대북 영향력 행사를 촉구했다.
이에 중국의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은 20일 정례 브리핑에서 "각 측은 문제의 난점을 직시하고, 각자의 책임을 감당하고, 유의미한 대화를 통해 각자의 합리적 우려를 균형 있게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19일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서 미‧중 관계에 대한 질문에 "우린 지금 여기 올바른 길 위에 있다. 블링컨 장관이 대단한 일을 했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충돌 위기까지 갔던 미‧중 관계가 대화모드로 급선회하자, 미국 주도의 반중국 전선의 선두에서 행동대를 자청해온 윤 정부는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최근엔 "중국 패배에 베팅하면 후회할 것"이란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발언 공방까지 겹쳐 한‧중 관계는 파국 직전에 이르렀다.
특히 여당 대표에 이어 대통령까지 나서 "우리나라를 침략한 중국" "위안스카이와 비슷하단 얘기가 있다"는 등의 발언으로 비난을 쏟아내고 중국에 대사 경질까지 요구해 놓은 상황인 반면, 중국은 윤 정부의 대응이 과도하다고 보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70년 동맹'인 미국만 맹신하며 국민 우려를 무시하고 반중국에 매달려온 윤 정부의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