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피켓 들고 거룩한 싸움 중이신가요?

2023-06-20     박충구 칼럼
박충구/ 전 감신대 교수ㆍ 생명과 평화윤리 연구자

기독교계의 차별금지법 반대 시위가 16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29일에는 영락교회 김운성 목사는 “이런 걸 아주 깊이 준비해서 안 좋은 방향으로 추진하는 세력이 우리 사회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배후설을 주장하며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온누리교회 이재훈 목사는 차별금지법이 “사회체제 전복법”이라는 피켓을 들고, 분당교회 이찬수 목사는 “차별금지법은 나쁜 것”이라며 “이름만 알면 찬성하고 내용을 알면 반대”하는 것이라는 피켓을 들었다. 광림교회 김정석 목사는 2022년 12월 29일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을 대동하고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유를 “남녀 간 양성 평등을 넘어 다른 성을 가르치는 것은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패한 미국 근본주의 논거를 반복하는 주장들

과연 차별금지법은 이들 대형 교회 목사들의 주장대로 “안 좋은 세력의 음험한 기획”이거나 나쁜 것이고, 사회전복적인 것이며, ‘동성애 독재’를 불러오는 잘못된 것일까? 이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미국의 동성애 반대 운동 집단의 주장과 그 내용이 거의 유사하다. 문자적으로 성경을 읽는 근본주의 성향, 변화를 싫어하는 보수적 우파 성향, 다원사회의 가치를 소화하지 못하는 지체(遲滯)적 사고, 그리고 다양한 가족 형태의 현실을 부정하며 전통적인 가족 가치를 고수하면서, 합리성보다는 성경을 도덕적 판단의 절대규범으로 삼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1)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경우 종교의 자유와 청소년들에게 동성애 확산이 우려된다는 ’피해자 내러티브’로 기독교계의 결집을 도모하고 2) 서구에서 차별금지법이 수용된 현실을 부정하기 위하여 전문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과학적 논거와 차별금지법 피해 사례를 과장 3) 가부장적 가족가치(family value)가 존속되지 않는 이유를 사회학적 해명에서 보지 않고, 동성애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 4) 이들은 시위를 통해 자신들이 거룩한 도덕성의 파수꾼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동시에 수만 명 신자를 둔 종교 집단의 힘을 과시하며 입법자들을 위협하는 이중적 효과를 얻고 있다.

차별금지법 배태의 역사적 배경은 기독교가 범한 악

인류는 20세기에 들어서 엄청난 전쟁을 두 번이나 치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엔은 1948년 ‘보편적 인권선언’을 선포했다. 이 선언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유엔은 일곱 단계의 인권증진 합의, 1948년 ‘대량학살방지조약’, 1965년 ‘인종차별철폐협약’, 1979년 ‘여성차별철폐협약’, 2006년 ‘장애인권리협약’, 1990년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를 보호하는 국제협약’, 1989년 ‘아동의 권리협약과 고문방지협약’, 2007년 ‘욕야카르타(yogyakarta)협약: 성적지향과 성 정체성과 관련한 국제인권법의 적용에 관한 원칙들’, 그리고 2017년 욕야카르타협약을 보충한 ‘욕야카르타 Plus10 합의’를 거쳐 모든 유엔 회원국에게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하고 있다. OECD 역시 이 노력에 부응하여 대부분의 회원국이 이미 차별금지법을 제정했다. OECD회원국으로서 우리나라 차별금지법 윤곽은 이런 맥락을 거친 노력의 산물이다. 누군가가 음험하게 숨어서 한 일이 아니다. 일부 성직자의 주장대로 이런 노력이 과연 ‘나쁜 것’이고, ‘사회전복적’인 것이며, ‘잘못된 것’이고, ‘동성애 독재’를 위한 것일까?

사실, 유엔에서 촉진되어온 보편적 인권에 대한 논의는 과거 유대-기독교 세계가 수세기에 걸쳐 범했던 악을 청산하는 과제다. 과거에 기독교가 성서를 근거로 성전(聖戰)을 벌이며 집단 학살을 용인했던 역사, 인종과 여성을 차별하고 억압한 역사, 사회적 약자를 혐오한 역사, 아동을 소유로 여겨 그들의 권리를 부정한 역사, 그리고 성소수자 낙인찍기와 혐오, 심지어 화형을 시켜온 역사는 유대-기독교 문명 속에서 기독교 주류의 도덕성이라는 숙주에 기생하던 악의 역사였다. 국회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목사들은 정말 이런 기독교의 과거를 전혀 모른다는 말인가? 아니면 그 진실을 부정하겠다는 것인가?

성소수자를 죽음으로 몰아가던 기독교

유대-기독교 전통의 지배를 받은 사회에선 성직자들이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면 국가권력이 나서서 범죄로 처벌했다. 영국에서는 에드워드 1세(1239-1307) 때, 프랑스에서는 루이 9세(1214-1270) 때 동성애자를 화형에 처하게 했다. 프랑스에서는 1726년까지, 미국에서는 1873년까지 동성애자를 사형에 처했다. 유럽에서 동성애자를 가장 오래 박해한 나라 중의 하나인 독일은 히틀러 시절 상당수의 동성애자를 학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은 1969년까지 동성애자를 처벌하는 법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듯 동성애자 박해의 역사는 유대-기독교 전통을 가진 세계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다. 성직자들이 성경을 들고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증오하며, 심지어 죽이는 것까지 정당하다고 교사했던 것이다. 그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성경이었다. 그래서 트리블(Phyllis Trible)은 성경이 때로는 ‘테러의 텍스트’(Texts of Terror)로 기능했다고 비판했다.

인류는 최근에 들어서야 이런 참담한 억압의 역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2001년 네덜란드가 제일 먼저 동성혼을 합법화한 후, 프랑스가 2013년, 영국은 2014년, 미국은 2015년, 그리고 독일은 2017년에 동성혼을 합법화 했다. 가장 최근에는 안도라(2023년)가 동성혼을 합법화 했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대만이 합법화 했다. 스위스, 스웨덴, 스페인, 남아프리카, 포르투갈, 노르웨이, 뉴질랜드, 캐나다, 룩셈부르크,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리아, 벨기에, 브라질,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칠레를 포함하여 2023년 현재 동성혼을 법적으로 합법화한 나라는 34개 국가에 이른다.

과거 성직자들이 동성애를 종교적 죄로 규정하고, 국가권력이 중범죄로 여겨 박해하던 세계에서, 이제는 동성애를 범죄나 도덕적인 악이거나 종교적인 죄로 보지 않는 입장으로 바뀐 것이다. 물론 아직도 많은 나라들이 여전히 동성애를 범죄로 여기고 사형이나 중벌로 처하고 있다. 이란, 모로코, 나이제리아, 예멘, 아프가니스탄 같은 이슬람 세력이 강한 지역의 국가들과 우간다를 비롯한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이다. 대부분 빈곤하고 인권의 수위가 낮은 나라들이다.

과거의 악습: 증오와 차별과 낙인찍기

엄청난 가해자였던 집단이 차별금지법 반대를 외치며 피해자 노릇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무수한 연구 논문들에 의하면, 13세에서 21세에 이르는 동성애 성향을 가진 청소년들은 또래로부터 조롱과 모욕, 따돌림을 받고, 어른들로부터 받는 혐오나 무관심과 냉대로 인하여 같은 또래에 비해 자살률이 무려 8배나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들은 다양한 학대로 인하여 신체적, 정신적으로 삶의 질이 심각하게 저하된 처지에 처해 있다. 특히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높은 수준의 거부를 경험한 이들은 우울증을 겪을 확률이 6배 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트레보 프로젝트(Trevo Project 2023)에 따르면 18%의 성소수자 청소년들이 2회 이상 자살행위를 시도했는데, 소수자 따돌림, 괴롭힘, 그리고 부모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험 등이 그 직접적인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트랜스젠더 청소년은 30%~51%가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한 경험이 있었다. 가장 높은 자살시도를 보이는 이들은 여성이 남성으로 젠더를 바꾼 경우다.

차별금지법의 일부 조항은 이렇듯 죽음으로 내몰리는 성소수자 보호를 위한 것이 맞다. 최초로 동성혼을 합법화한 네덜란드의 경우 청소년 자살률이 크게 감소했다. 동성혼을 인정하고 있는 6개국에서 젠더 전환 청소년 자살이 동성혼을 부정하던 과거에 비해 남자 19.98%p, 여성 10.90%p 낮아진 것으로 밝혀졌다. OECD 국가에서도 동성결혼 합법화로 자살률이 17.90%p 감소했다. 제도화되거나 내면화된 동성애 혐오는 청소년으로 하여금 자신을 진실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드는 정체성의 혼란에 빠뜨려 내면의 갈등을 증폭시킨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청소년의 경우 주변으로부터 정죄와 차별의 시선을 피할 길이 없고, 심지어 회개와 젠더를 바꿀 것을 요구받게 되면,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은 존재라는 절망감에 빠질 수도 있다.

성직자들의 동성애 이해의 정도에 관한 연구논문 중의 하나는 목회자 자신들도 동성애가 인위의 문제인지, 자연의 문제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경험적으로나 과학적으로도 동성애의 발현 문제는 아직 분명하게 규정할 수 없는 상태다. 하지만, 성적 성향과 행위가 다르다고 하여 차별하고 낙인을 찍는 일은 한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부정하는 동시에, 그를 죽음으로 내모는 간접적인 살인 행위와 같다. 성직자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은 과거의 가해자가 피해자를 계속 공개적으로 공격하는 행위와 하등 다를 바가 없는 일이다. 거룩한 싸움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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