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까지 중국 대사 비판…조태용 "국격에 안 맞아"

싱하이밍을 구한말 내정간섭한 위안스카이에 빗대

'일개 대사'에 집단 공세…핵오염수 시선 돌리기?

한‧중 '버티기' 돌입…양쪽 모두 ‘아쉬울 것 없다’

2023-06-15     이유 에디터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중국 패배에 베팅하면 후회할 것"이란 지난 8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의 발언을 두고 여권 중심으로 비난 움직임이 거세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직접 가담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은 지난 13일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싱하이밍 대사의 태도를 보면 외교관으로서 상호 존중이나 우호 증진의 태도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싱 대사의 부적절한 처신에 우리 국민이 불쾌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 과정에서 '위안스카이'(1859~1916) 발언이 나왔다. 윤 대통령은 "싱 대사를 보면 위안스카이가 떠오른다는 얘기들이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훗날 중화민국 초대 대총통을 지낸 위안스카이는 20대 청나라 무관으로서 조선의 내정에 간섭했던 인물이다.

한국의 정상이 싱 대사의 발언을 내정간섭으로 본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어서 파문을 예고한다. 통상 어느 나라든 외교 갈등을 빚고 있을 때 정상은 말을 극히 아낀다.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우리 국민이 느낄만한 감정을 대신 전한 것으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8일 저녁 성북구 중국대사관저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만나고 있다. 2023.6.8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싱하이밍을 구한말 내정간섭 위안스카이에 빗대

싱 대사를 처음으로 위안스카이에 빗댄 것은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이었다. 신 의원은 9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싱 대사가 마치 구한말 우리나라에 왔던 청나라의 위안스카이처럼 막말을 쏟아 냈다"고 비난했다.

13일에는 이철규 사무총장이 국회에서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6월 8일은 조선 말기 청나라의 위안스카이가 조선에 내정 간섭한 것에 버금가는 치욕적인 날"이라고 가세했다.

그 밖에도 여당인 국민의힘 중심으로 앞다퉈 싱 대사와 함께 만찬을 했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극언'을 쏟아냈다. 김기현 당 대표는 "우리나라를 침략한 중국"이라거나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겨냥해 "중국 공산당 한국지부장인가?"라고 막말도 불사했다. '삼전도의 치욕'이니 '중화 사대주의'니 이 대표와 민주당을 겨냥해 융단폭격을 퍼붓고 있다.

중국에 대해서는 발언한 다음 날인 9일 윤 정부는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이 싱 대사를 초치해 강하게 항의한 데 이어 대통령실은 중국 정부에 싱 대사의 경질을 요구한 상태다.

국민의힘에서는 싱 대사의 사과와 함께 싱 대사를 외교적 기피인물(페로소나 논 그라타) 지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철규 총장은 "싱 대사의 무례한 태도와 언행은 부적절한 정도를 넘어 외교관의 자격마저 재고해야 할 중대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전국어민회총연맹과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공동행동이 연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 2차 전국행동'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23.6.12. 연합뉴스

여권 '일개 대사'에 집단 공세…핵오염수 시선 돌리기?

지금까지 정부‧여당의 대응을 보면 '집단 흥분' 상태에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중국 패배에 베팅하면 후회할 것"이란 싱 대사의 발언이 한국을 겨냥한 '경고'의 느낌이 있다. 그러나 한국을 꼭 집은 것도 아닌데다가 '글자 그대로' 보면 내정간섭으로 연결하는 건 무리다.

또한 '일개 대사'의 발언을 두고 무슨 외교부로부터 집권 여당 3역을 거쳐 대통령까지 등판해 뭇매를 때리는 것은 세계 10위권 한국의 국격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

그래서 싱 대사 발언 수위에 비해 과도한 여권의 공세가 일본 핵오염수 방류에 대한 국민 대다수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 시점에 대통령실에도 할 말을 하는 인물은 있었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14일 한‧미‧일 국가안보실장 회의 참석차 일본으로 출국하기 직전 김포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본인의 견해를 밝혔다.

 

 조태용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14일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조 실장은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 참석차 일본 도쿄로 출국했다. 2023.6.14 . 연합뉴스

안보실장 "이러쿵저러쿵, 우리 국격에 맞지 않아"

조 실장은 싱 대사 발언 논란에 대해 "한‧중 관계의 건강한 발전에 도움이 안 되고 역행하는 그런 일들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특히 조 실장은 올해 서울에서 열 차례인 한중일 정상회의에 미칠 영향을 묻자 "우리나라 외교안보를 총괄적으로 조정해나가는 자리를 맡은 입장에서 주한 중국대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의 당당함과 국격에 잘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상호 존중, 공동 이익, 두 가지 핵심 키워드를 중심에 놓고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자, 건강하게 발전시키자는 것이 윤석열 정부의 변함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어느 곳 하나 흠잡을 데 없는 말이다. 문제는 이런 말은 참모가 아니라 대통령이 해야 제격이라는 점이다.

윤 정부가 싱 대사의 발언을 내정간섭으로 규정짓고 '적절한 조치'를 요구한 데 대해 지금까지 중국 정부가 보인 입장은 단순하다. 요약하면 △ 싱 대사의 발언은 대사의 직무 범위에 있다 △ 지금처럼 악화된 중‧한 관계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 △ 싱 대사 발언은 대대적으로 부각할 화제가 되어선 안 된다 등이다. 당장은 추가적인 확전은 삼가는 듯한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2년 11월 1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 한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2022.11.15 연합뉴스

한‧중 '버티기' 돌입…양쪽 모두 ‘아쉬울 것 없다’

중국의 이런 입장 저변에는 '핵심 이익'으로 여기는 대만 문제 등에 대한 윤 대통령의 잇단 개입 발언 등이 한‧중 갈등을 촉발한 주된 원인이란 인식이 깔려 있다. 이에 반해 윤 정부는 대만 안보는 한반도 안보와 직결되는 만큼 윤 대통령의 발언은 전혀 문제가 없고 필요하면 앞으로도 계속 해나가겠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그야말로 평행선을 달리는 셈이다.

두 나라 모두 '버티기'에 들어간 양상이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서울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와 관련해 "중국의 호응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한‧중 관계에 대해서는 기존의 우리 기조를 의연하게 이어갈 것이다. 먼저 고개 숙이고 매달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도 유사한 기류가 읽힌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중국의 대외 강경 여론 형성에 큰 영향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 후시진 전 환구시보 총편집장은 13일 웨이보 계정에 올린 글에서 윤 대통령 임기 중 한‧중관계는 냉랭할 것이라며 "냉랭하면 냉랭한 대로 두면 된다"고 말하고 "중국은 크게 신경 쓰지 말고 대한국 외교의 평상심을 유지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