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할 것들
[최배근의 통찰] ‘통화주권’ 없이 야만사회 추락 못 막아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많은 국민이 너무 힘들어하고 있다. 민주주의 실종, 국가의 대외적 이미지 추락, 경제와 민생의 붕괴 … 지난 1년간 우리가 겪은 것을 나열하는 것 자체가 고문받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와 국가를 이렇게 만들어놓고 여전히 전 정권 타령하고, 비판에는 귀를 닫는다. 그래서 이 정권이 가장 중요시하는 성장률에 대한 국제 비교를 소개한다. 성장률만 보면 전 정권에서 1등을 했고, 현 정권에서는 꼴찌를 하고 있다. 특히 (특수한 상황이었던) 외환위기 당시를 제외하고 한 번도 뒤처진 적이 없던 일본과의 성장률이 역전되었을 뿐 아니라 갈수록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이 정도면 전 정권이나 국제경제 환경 등의 탓으로 돌릴 수 없지 않은가. 이런 데이터를 보여주어도 (개)무시할 정권이기에 의미 없지만 눈먼(?) 유권자들이라도 보고 (설사 마음이 쓰리더라도) 받아들이길 바랄 뿐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들끓는 국민의 분노를 개 짖는 소리 정도 취급하는 이 정권의 후안무치에 국민의 상처와 고통은 깊어만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선거 후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을 너무 힘들어하던 분들에게) 마음에 병을 만들지 말고 5년 이후를 준비하며 즐기자고 했던 본인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글을 전개하기 전에 저들이 겉으로는 아무리 뻔뻔스러운 모습을 보여도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감이 커질 것이라는 사실에 조금은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현대사의 독재자를 모두 겪었던 경륜으로 받아주었으면 한다.
선진국 문턱 못 넘게 한 ‘모래성 민주주의’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자.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꼭 거쳐야만 하는, 첫 번째 과정이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예를 들어, 선진국 문턱까지 넘어섰던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그 토대가 매우 취약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니 우리 사회의 세습성은 문재인 정권에서 더 강화될 정도로, 해외에서 인정한 선진국 수준의 민주주의라는 것이 사실은 모래성 같은 것이었다. 문재인 정권 5년간 생산활동을 통한 국내 총소득은 236조 원 정도 증가한 반면 (세습성이 강한) 순자산은 22배가 넘는 5495조 원이 증가하였다. 또한, 같은 기간 노동소득은 141조 원 정도 증가한 반면 가계의 순자산은 노동소득의 24배나 되는 3334조 원 이상이 증가하였고, 주택가치만도 2220조 원 이상이 증가하였다. 같은 기간 증가한 통화량이 1083조 원이 넘었다.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생산과 노동소득보다 돈이 돈을 만드는 불로소득에 돈이 배분된 결과이다.
자산이 노동소득보다 수십 배 더 증가했지만 재산세(4.3조 원)나 상속·증여세(8.2조 원)의 증가액은 근로소득세(17.9조 원) 증가액보다 크게 적었다. 노동소득을 불로소득과 같은 소득으로 취급하면서도 불로소득에 대한 혜택이 더 크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2017년~2021년 간 가계소득이 16% 증가하는 동안 (외국인 지분율이 적게는 60%에서 많게는 73%에 달하는) 신한, 국민, 하나은행 등의 영업이익은 각각 55%, 45%, 70%가 증가하였다. 새로운 억만장자들이 끊임없이 배출되는 데에도 더 많은 사람이 내핍 생활을 해야 하는 배경이다.
본래 화폐와 신용은 국가가 공공재로 창출한 것이다. 화폐는 국가부채와 (공공서비스 공급과 연결된) 세금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중앙은행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보듯이 (세금에 대한 징수권을 가진) 국가 권력은 (태환 화폐 대신 불환 화폐를 사용할 수 있도록) 은행 자본을 지원하는 대신 (중앙은행을 포함) 은행이 (국채 매입을 통해) 국가의 공적 화폐 창출을 지원하도록 하였다. 이처럼 불환 화폐는 태생적으로 공공서비스 성격을 갖고 태어났고, 따라서 불환 화폐 발행 권한을 갖는 중앙은행은 공익 목적에 우선하여 화폐 공급을 해야 하고, 중앙은행의 화폐 공급량에 의해 결정되는 은행의 신용이 실질적인 투자와 성장에 도움이 되도록 자금을 공급해야 하는 이유이다.
공공 기능 제거된 금융시스템이 ‘세습화’의 배경
그런데 금융자본은 은행과 금융에서 공공 기능을 제거하고, 이를 위해 은행을 민영화하고 국가의 공적 화폐 창출 기능을 약화시켜 정부와 시민을 민간 신용에 의존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신용거래 국민 중 약 20%가 은행을 이용하지 못해 2금융권이나 대부업체 등을 이용하는 현실이다. 이들은 중앙은행이 발행한 채권인 불환화폐에 기초한 은행시스템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실상의 비국민’인 셈이다. 실제로 은행시스템에서 배제되는 순간 (상환 불가능한 고금리의 덫에 빠져) 채무노예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은행시스템에서 배제된 국민은 못난(?) 자신을 탓한다. 금융자본 이데올로기에 세뇌된 결과다.
금융자본이 정부 재정 자체를 축소하기 위해 세금 인하를 지지하고, 공공은행 설립 및 지역화폐 강화 등을 반대하는 것 역시 이들이 민간 신용에 대한 수요를 축소하여 금융자본 이익에 반하기 때문이다. 또한, 불로소득과 노동소득 간 차이를 없애는 것도 민간 신용이 확보한 지대에 대해 세금 납부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재정과 금융의 공공 기능 정상화 없이 세습사회 고착화는 막을 수 없다. 금융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모피아에 포획된 문재인 정권에서 우리 사회의 세습성이 강화된 배경이다. 우리는 묻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 정권에서 재정과 금융의 공공 기능을 정상화할 용기는 있는지를.
또 하나는 달러=‘종이 금’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나라의 통화 주권을 부정하는 미국에 노(No!)라고 말할 수 있느냐이다. 앞에서 지적한 재정과 금융의 공공 기능 약화는 월가의 이데올로기가 한국의 금융자본과 모피아, 정치권에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월가에 좋은 것이 미국에 좋은 것”이고, “미국에 좋은 것이 세상에 좋은 것”이고, 따라서 “월가에 좋은 것이 세상에 좋은 것”이라는 월가 이데올로기를 (미국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한국 사회의 특권층과 엘리트 등은 공적 영역에서 충실하게 받들 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세뇌시켜 왔다.
돈의 배분을 다루는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주권국가의 과제는 통화주권을 확보하는 일이다. 통화주권의 필수적인 두 가지 중 하나는 앞에서 언급한 은행과 신용을 공익사업으로 유지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투기)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으로부터 국민과 경제의 안전을 지키고 나아가 산업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통화의 대외적 가치인 환율 주권을 확보하는 일이다. 미국이 금융위기 이후 1차 양적완화를 끝내고 또다시 2차 양적완화 의사를 밝히자 브라질이나 인도 등이 ‘국제 통화전쟁’을 하자는 것이냐며 반발을 한 적이 있다. 실제로 1차와 2차 양적완화가 진행된 2008년 12월부터 2011년 6월 사이에 달러 지수는 약 10%가 하락한 반면, 브라질 헤알화나 인도 루피화나 중국 위안화 등은 달러 대비 각각 35%와 9%와 6% 등이 절상되었다. 수출경쟁력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기에 당연한 반발이었다.
월가 이데올로기 내면화한 한국 금융자본과 모피아
그런데 미국 연준은 이에 대해 양적완화는 통화정책일 뿐이라며 궤변(?)을 늘어놓았다. 당시 원/달러 환율도 18% 이상 하락했지만 한국 정부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2010년 10월~11월에 서울에서 열렸던 G20 정상회담에서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GDP 대비 4% 이내에서 관리할 것으로 요구하는) 미국의 경상수지 목표제 도입은 대다수 국가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당시 회담 의장국의 실무 장관인 윤증현이 회원국 대다수가 반대하는 분위기를 읽고 처음에는 특정국 환율 문제는 의제가 될 수 없다며 호기를 부리다가 미국 가이트너가 밀어붙이자) 의제로 추진하면서 국제사회로부터 ‘글로벌 호구’라는 얘기를 들었다. 미국은 2015년 교역촉진법을 제정하여 경상수지 흑자 3% 이내 관리를 밀어붙였다. 해외로 유출된 달러가 미국으로 재유입되면서 미국 통화정책에 교란 요인이 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경상수지와 더불어 (GDP 대비 2% 초과하는) 외환시장 개입이나 (150억 달러가 넘는) 대미 무역흑자라는 기준도 제시하였다. 이른바 환율조작국 3대 기준이다. 3대 기준이지만 교역파트너 국가에게 경상수지 흑자를 줄이라는 것이 미국의 요구였고, 이를 위해 경상수지 흑자 환경에 유리하도록 환율에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기보험 차원에서 경상수지 흑자를 통해 외환보유를 축적할 수밖에 없는 비기축통화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다음 미국 환율보고서가 보여주듯이 스위스, 대만, 싱가포르 등은 GDP 대비 두 자릿수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유지해왔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경우 환율에 개입하였다. 외환시장 개입하면서 벌벌 떠는 우리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이들은 미국이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경상수지 흑자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저인플레 상황에서) 통화정책에 불과하다며 미국과 똑같은 논리를 되돌려주었다. 그렇다 보니 미국이 제시한 3가지 기준을 모두 위반해도 지금껏 미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나라가 없다.
그런데 한국의 언론은 미 재무부가 환율보고서를 발표할 때마다 매우 유난스럽게 보도하고, 위반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한국의 특권층과 엘리트 등은 통화주권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기에 미국이 요구하면 반드시 따라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는 외환보유고 축적에도 영향을 미친다. 외환위기 이후 2021년까지 한국과 대만과 싱가포르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모두 1조 달러가 조금 넘음에도 불구하고 GDP 대비 외환보유액 비중은 대만과 싱가포르가 80%와 110%에 달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26%도 채 되지 않는다. 스위스는 무려 140%에 육박한다. 한국의 원화 가치가 세 나라와 달리 국제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때마다 가장 취약성을 보이는 이유이다.
우리 사회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의 통화주권을 지킬 생각이 있는지를. 그리고 이 질문은 한 걸음 더 나가야만 한다. 미국의 제국 유지를 위한 전쟁(방위)비용을 왜 우리가 보조해야 하는지를. 사실 미국 부채는 전쟁 비용의 결과물이고, 지속 불가능한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미국채 투자자들이 미국채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높은 금리 지급이 불가피하다. 특히 (팬더믹 이전 같은 저물가 시대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높은 인플레로 인해 미 정부가 부채를 상환할 정도의 낮은 이자율 유지는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남은 선택은 (발권력에 의존한) 연준의 매입이지만 이는 인플레를 악화시킬 수밖에 없고, 미국채 가격 하락 → 미국채 보유자의 국채 매각 → 미국채 수급 불균형(미국채 유동성 문제의 재현) 문제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미국채로 뒷받침되는 달러가 ‘종이 금’의 특권을 누리기 어려운 시간이 다가옴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달러=종이 금’의 환상을 벗어날 준비는 되어 있는가를 물어야만 한다. 주권국가의 국민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통화주권(경제주권)을 우리 사회가 지키지 못하는 한 야만사회로의 후퇴를 막고, 글로벌 호구 국가에서 벗어날 길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