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을 시찰하는 초능력
2021년 7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일본은 <과업지시서>에 서명했다.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방출) 안전성 검증을 IAEA에게 맡기는 내용이었다. 통상 국제기구에게 일을 의뢰하는 과업지시서에는 직무의 범위와 수탁자의 의무, 그리고 비용지급 사항이 들어간다. 이 약정을 근거로 기구는 지난 4일, 5번째 안전성 보고서를 냈다. 지금까지 11차례의 ‘전문가’ 회의를 했다. 이처럼 IAEA의 오염수 안전성 검증은 의무적인 국제조약 절차가 아니다. 바다의 세계 헌법이라 불리는 유엔해양법 협약에 IAEA는 단 줄도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용역이다. 기구의 입장에서는 이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용역이라고 부른다. 아무리 독립적인 검증이라고 하더라도, 그 본질은 일본과 맺은 약정에 따른 계약관계이다.
윤석열 정부는 IAEA의 용역이 막바지로 치닫는 이달 23일에 일본에 ‘시찰단’을 파견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본 후쿠시마 현 우치보리(内堀) 지사는 이 시찰을 한국이 일본의 방출을 이해하는 데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후쿠시마 텔레비전에서 밝혔다. 이처럼 일본은 오염수 시설 시찰을 일본의 오염수 투기에 대하여 한국의 이해를 받는 계기로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지난 2년간 네 차례 일본으로부터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자료를 받고도 어떠한 평가나 분석 결과도 아직 내어놓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는 정부 입장이 무엇인지 국민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유엔해양법 협약상 아무런 국제법적 권위도 없는 IAEA는 재검토를 진행했고, 이제 최종보고서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올 여름 오염수 투기를 예정대로 추진하고 있다.
입장도, 목적도, 그리고 이후 계획도 없는 후쿠시마 오염수 시찰은 일본의 치밀한 준비처럼, 한국이 일본의 오염수 방출을 이해하는 것으로 활용될 것이다. 이는 오히려 일본이 진정 추구하려는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압력 근거가 될 것이다. 지금은 오염수 시설을 시찰할 때가 아니다. 오염수 방출 문제에 대한 정부 분석 결론과 입장부터 확립해야 한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는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압박에 무방비 상태이다. 세계무역기구(WTO) 위생검역협정 5.7조가 요구하는 '위험평가'를 갖추지 못한 사실이 정보공개법 절차에서 드러났다. 협정 5.7조에 의하면 후쿠시마 잠정수입금지조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방사선 위험평가를 하여야 한다. 그러나 식약처의 4. 29.자 정보공개에 의하면, 2015년 식약처 발주 원광대 연구 용역 ‘원전사고에 따른 수입식품안전관리방안 연구’가 마지막이다. 이마저 내용 공개되지 않았고 세계무역기구에서도 적법한 위험평가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이다.
2019년 한국이 일본에 승소한 WTO 후쿠시마 수산물 금지 판결의 성취와 한계를 알 필요가 있다. 애초 WTO 승소를 자신한 일본은 잠정조치에 수반되는 위험평가 쟁점을 아예 제기하지 않았었다. 대신 일본은 한국 조치가 차별이라는 내용만 강조하였다가 1심에서 승소하고 2심에서 졌다. 1심은 후쿠시마 수산물과 한국산 수산물의 방사선 조사 수치만을 기준으로 차별 문제를 판단했다. 그러나 2심은 “후쿠시마의 바다와 한국의 바다가 다르므로 차별이 아니다”고 한국 승소를 선언했던 것이다.
IAEA의 안정성 검증 용역이 일본의 뜻대로 마무리되는 지금은 한국이 입장도, 목적도, 계획도 없는 시찰단을 보낼 때가 아니다. 방사선을 시찰하는 초능력은 없다. 지금 당장 윤석열 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에 대한 정부 자신의 분석 결과와 입장이 무엇인지부터 정립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믿음을 얻도록 근거를 공개하고 설명해야 한다. 한국은 국제원자력기구의 용역대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