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왜 윤석열 서문시장 '기관단총 노출'에 침묵하나
문재인 칠성시장 기관단총 때는 '공포'라던 조선일보
윤석열 경호처 기관단총 대놓고 꺼내도 선택적 '침묵'
조선일보뿐 아니라 기성언론들도 모두 언급도 안 해
대놓고 기관총 보여주면서 경호…권위주의로 회귀?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이 부인 김건희 씨와 함께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한 가운데, 대통령실 경호처 대테러과 소속 요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기관단총'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누군가에게는 경호원이 기관총을 휴대하는 게 당연한 일이고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있지만, 보수수구 언론들과 이를 침묵하는 대다수 언론들이 경호처의 경호를 두고 보이는 이중적인 행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은 안되고 윤석열은 되는 기관총 소지?
앞서 지난 2019년 3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대구 칠성시장을 방문했을 당시 평상복 차림의 청와대 경호원이 MP7 모델로 추정되는 기관단총을 외투밖으로 노출한 사진이 공개된 적 있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관련 사진을 공개한 뒤, "경호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대통령 근접경호 시 무장테러 상황 아니면 기관단총은 가방에서 꺼내지 않는다고 한다"며 "민생시찰 현장에 기관단총을 보이게 든 것은 경호수칙을 위반"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칠성시장 방문 이틀 뒤인 3월 24일 야당 관계자를 인용해 "다중이 모인 재래시장에서 시민들 사이에 섞인 경호처 요원이 기관단총을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외부로 노출한 채 경호를 한 것은 시민들이 보기에 공포심을 줄 수 있다"고 보도했다.
또 같은 날엔 "기관총신 노출 위협 경호로 공포를 조장하겠다는 대통령의 대국민 적대의식에 아연실색할 따름"이라는 당시 자유한국당(한국당) 민경욱 대변인의 논평을 실었다.
다른 매체들도 '기관단총 노출 논란' '기관단총 경호 논란' '경호수칙 위반' 등의 제목으로 <조선일보> 보도를 추종하며 기사들을 쏟아냈다.
<경향신문>조차도 3월 25일자 보도에서 "북한과는 싸울 일 없다고 GP까지 파괴하는 정권이 우리 국민들에게는 기관총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라는 한국당 황교안 당시 대표의 발언을 그대로 인용해 보도했다(경항신문, 2019년 3월 5일자 <황교안 "GP 파괴 정권이 국민에 기관총 들이대">).
<월간조선>은 칠성시장 방문이 한 달이 다 돼가는 시점인 4월 16일 단독보도를 내고 청와대 경호처 관계자를 인용해 "경호관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댄 대구 칠성시장 때의 경호기법은 윗선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원이 광주의 시장을 방문해서 기관단총을 꺼낸 채 경호를 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라"는 익명의 대구시민 발언을 담아 지역주의까지 부추겼다.
아울러 <월간조선>은 지난 1월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윤 대통령 부부가 대구 서문시장만 여러 차례 방문한 것을 비판하자, 탁 전 비서관을 문재인 청와대의 '괴벨스' 같은 존재라고 폄훼하면서 2019년 기관단총 보도를 인용해 "진짜 편파적인 건 자신에게 비우호적인 지역을 방문하면서 위협 경호를 하는 게 아닐까"라고 적었다.
시장에서 기관총 꺼냈는데 언론들은 침묵
그러나 야당 정치인 발언을 인용해 '사과할 일'이라고까지 보도했던 <조선일보>와 <월간조선> 등 보수수구 매체와 이를 추종하는 기성 언론들은 시민들 앞에 대놓고 기관단총을 꺼낸 이번 윤 대통령의 서문시장 행사와 관련해 지금까지도 철저하게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야당 정치인의 발언까지 나왔지만 보도는 나오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서은숙 최고위원은 지난 3일 제주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대구 서문시장 방문 시에 경호원들이 아예 공개적으로 기관총을 들고 다녔다. 기관총이 잘 보였다"며 "그러나 과잉 경호를 비판하는 기사는 물론이고 보도한 언론을 찾기 힘들다"고 말한 바 있다.
탁 전 비서관도 지난 4일 페이스북에 "세월이 지나 이번에는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의 경호원들이 기관단총이 아니라 자동소총과 각종 무기를 휴대한 사진이 공개됐다. 그러나 이 사진에 대한 매체들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며 "무엇보다 조선일보, 월간조선이 참 조용하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전직 총리도 조용하다. 대구가 테러기지냐며 분노하던 목소리도 이번에는 들을 수 없다"고 적었다.
탁 전 비서관은 "필요할 경우, 기관총도 전술팀도 때로는 저격팀도 배치한다"고 설명했지만, <조선일보>와 <월간조선> 등의 그간 보도 행태를 떠나 윤석열 정권의 경호처가 아예 대놓고 시민들 앞에서 무기를 꺼낸 것도 마땅히 지적돼야 할 문제로 보인다.
국민에게 보여지는 청와대 및 대통령실 경호처의 경호는 그동안 그 강도에 따라 권위주의의 '바로미터'(기준점)가 돼 왔다. 독재정권에서는 화려한 경호가 권위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정권 출범과 함께 '낮은 경호'를 강조했었다.
그랬던 문재인 정부조차도 4년 전 품 속에 조금 노출된 기관단총으로 인해 '공포'를 조장한다며 언론에서 조리돌림을 당했는데, 이번 윤 대통령의 서문시장 방문에선 경호원들이 아예 대놓고 기관단총을 노출시키고 있다. 권위주의 정부로 다시 회귀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때마침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화상으로 진행된 제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가짜뉴스'와 함께 '권위주의'를 꼽았다. 윤 대통령은 과연 자신의 정권이 권위주의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지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대통령실 경호처 관계자는 이번 서문시장 경호가 '과잉'이라는 지적에 대한 입장과 대통령실의 사과 의향을 묻는 <시민언론 민들레>의 질의에 "대통령 경호처는 경호 대상자의 절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행사장의 여건과 환경,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경호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