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돈은 목숨 대신이다, 대통령은 모르겠지만
소액생계비대출 이자율 연 15.9% 대부업체 흡사
산행 중 절벽에 매달린 사람을 발견했다. “살려주세요! 발을 헛디뎠어요!” 나는 말한다. “구해주겠소. 대신 천만 원을 주시오.” 질문 하나. 그는 내 제안에 응할까? 답은 빤하다. 응한다. 목숨은 소중하니까. 이제 질문 둘. 나는 저런 ‘장사’를 해도 되는 걸까? 여러분의 답은 무엇인가? 윤석열 정부는 ‘해도 된다’고 답을 할 것 같다. 실제로 이미 비슷한 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액생계비대출’ 이야기다.
지난 27일 정부가 저소득·저신용 차주를 위한 소액생계비대출을 출시했다. 내용을 좀 살펴보자. 연 소득 3500만 원 이하, 신용 평점 하위 20% 이하인 사람이 이용 가능하다. 대출 원리금 등의 연체가 있고 소득이 없더라도 괜찮다. 최대 100만 원을 빌려준다. 기본이 50만 원이고, 특별히 주거·의료·교육비 등의 용도로 쓸 것이 증명되면 100만 원까지 빌릴 수 있다. 여기서 1절을 끊는다.
1절까지 접한 사람들은 대부분 해당 대출 상품의 한도가 얼마 되지 않음에 놀란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적 상태의 성인에게 50만 원, 100만 원은 구하기 어려운 돈이 아니다. 보통은 가족이나 지인에게 전화를 걸면 바로 해결이 가능하다. 우린 그렇게 돈을 융통하는 걸 우스갯소리로 ‘가족 대출’, ‘지인 대출’이라고 부른다. 정부는 그런 대출이 불가한, 말 그대로 절박한 이들을 이용자로 상정하고 소액생계비대출을 개발했다.
2절을 시작한다. 그렇다면 그런 대출 상품의 금리는 얼마가 적당할까? 이 질문에 내 지인들 거의 전부는 연 1~2%대의 금리를 말했다. 소수 의견으로는 “고작 그거 빌려주면서 무슨 이자까지 받냐?”도 있었다.
정부는 연 15.9%의 이자를 받기로 했다. 엄청난 이자다. 현 법정 최고 이자율이 연 20%다. 법정 최고 이자를 받는 대부업체가 두 달 반 정도의 무이자 특판 상품을 출시하면 딱 이런 상품이 된다.
이상의 꼴이 확정되자 정부가 절박한 이들을 상대로 이자 장사를 한다는 내용의 비판적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취약층 긴급생계비대출 금리 ‘연 15.9%’…정부가 이자놀이 하나(JTBC, 2023.03.21)”, “100만 원 빌리는데 금리가 15.9%…소액생계비대출 고금리 논란(머니S, 2023.03.22)”
이에 정부는 “소액생계비대출은 동 대출을 지원받지 못하면 연간 수백% 이자를 부담하는 불법사금융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분들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라고 항변했다.
궤변이다. 본 논리를 앞서의 산행 이야기에 접목하면 나는 (절벽에 매달린 사람을 구해주는 대가로 천만 원을 요구한)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쳐들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천만 원 구조 서비스는 동 구조 서비스를 지원받지 못하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분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소액생계비대출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상담 예약 첫날인 지난 22일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린 통에 관련 홈페이지가 일시적으로 마비가 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마음이 아프다. 절벽에 매달린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일 테다.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는 인간사 불변의 진리다. 장사는 아무 때나 하는 것이 아니다. ‘상도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정부는 장사꾼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그걸 모른다. 사이코패스 정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