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주가 윤 대통령'에게 보내는 진심 어린 고언

2023-03-25     이명재 에디터
이명재 에디터

나랏일을 하는 어떤 이의 지극한 술 사랑이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불안을 자아내는 듯하다. 매일같이 술을 즐기는 데다 마신다기보다 들이붓는 것이라고 할 정도의 음주 습벽에 대한 개탄과 지적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온다. 그러나 나 자신 술을 즐기는 편인 입장에서 술을 좋아하는 것 자체를 잘못됐다고 하고 싶지는 않다. 무엇보다 그 애주가인 최고권력자를 위해 음주가무를 즐기는 조선민족으로서의 조선인됨을 보여주려는 행실일 뿐이라고 변호하고 싶다.

사실 우리 민족만이 아니라 예로부터 훌륭한 선현들이 얼마나 술을 즐겼는가. 공자 선생도 제자들과 무척이나 자주 술잔을 나눴던 듯 유주무량(唯酒無量)이라는 말로 자신의 주량에는 한도가 없다고도 했고, 이성과 합리의 상징이랄 소크라테스 선생도 벗들과 제자들과 함께 술자리의 향연(심포지움)을 열면서 그 빛나는 대화를 나눴으며, 도연명 시인은 늘 술을 가까이 하면서도 술 한 번 맘껏 마셔보지 못했다고 자탄했으며, 철인 군주였음에도 정조 임금은 신하들과 주연을 가지면서 ‘취하지 못하면 돌아가지 못하리(不醉不歸)’라 했으니, 대통령이 술을 자주 마시는 것을, 취하도록 마시는 것을 비난할 것은 결코 아니다.

술 즐기는 게 어찌 죄가 되랴

사람들이 그에 대해 잘 모르는 게 있으니 그가 술을 즐기는 건 술에 관한 그의 포부가 남다른 데에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사실은 전례 없는 업적을 쌓으려 술잔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는 무엇보다 술로써 이름을 남기려는 듯하다. ‘고래로 성현들은 모두 죽고 사라졌지만 오직 술을 마시는 자만이 그 이름을 남기리라’(유유음자유기명, 惟有飮者留其名)라는 이백의 유명한 시의 한 대목처럼 그는 ‘이름’을 남기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이름을 남기려 하는가. “한 번 만나면 마땅히 삼백 잔을 마셔야 한다”고 했던 이백은 술의 기운에 시흥이 돋아 불멸의 시들을 남겼다. 대한민국의 최고권력자는 일단 이백이 이뤄낸 것의 절반은 달성했다. 한 번 마시면 수십 수백 잔을 마시는 것에선 이백의 성취의 절반은 거의 이룩된 듯하다. 그렇다면 이백은 시를 남겼듯 그는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벌써 한 가지 업적은 이뤄냈다.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 전임자들 대다수의 증언에 따르면 단 1분 1초의 여가도 쉽게 허용되지 않는 ‘초격무’의 일인 대통령의 일을 하면서도 그는 거의 매일, 많은 양의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전인미답의 경지를 보여줬다. 그것이 그의 첫 번째의 업적이니, 그것은 전무(前無)이고 아마 후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 점에선 낮에는 막걸리를, 밤에는 밀실에서 양주를 마시던, 정치적 계보에서 자신의 대선배를 뛰어넘을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그는 그러면서도 매일 어떻게든 출근하고 있는 초인적인 근면을 보여주고 있잖은가. 비록 거의 매일 지각을 하고는 있지만-대다수의 직장에서라면 해고 사유가 될- 대통령의 격무가 주는 피로를 감안해 그 점은 일단 양해해 주기로 하자.

게다가 그가 보여주고 있는 특별한 면모가 있다. 그는 술을 마시지 않고도 늘 술에 취해 있는 듯하는 언행을 보여준다. 늘 작취미성(昨醉未醒)인 듯한 비범한 경지다.  

그렇다면 여기서 드는 의문은 이것이다. 마시나 마시지 않으나 별반 다를 게 없는데 왜 굳이 마시는가, 왜 술로써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고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사는가, 하는 의문이다. 참으로 알기 어렵지만 해봄 직한 추정은 괴로움 때문이다. 그는 자신에게 부과된 짐을 이기지 못해 심하게 괴로워하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것이다.

평생 해보지 않은 ‘깊은 생각’을 해야 하며, 지금껏 해 본 적이 없는 ‘공공’이니 나라의 앞일에 대한 고심을 해야 하며, 권력과 공직이란 자신의 이익이 아닌 다른 이들의 복리와 안녕을 우선하는 일이라는, 수십 년간 권력과 공직 일을 하면서도 몰랐던 생소한 사실 앞에서의 충격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그를 얼마나 힘들게 할 것인가. 진지하게 숙고해야 할 일들이 많은 - 그에게 맡겨진 일들 중에서 그렇지 않은 경우가 과연 있을까 싶다-자리에 앉은 그가 견뎌내야 하는 괴로움과 번민이 얼마나 클 것인가.

그래서 그는 취기를 빌어서라도 어떻게든 이겨내려 안간힘을 다하는 것인지 모른다. 감당하지 못할 무게에 짓눌려 그것이 공포에까지 이른 전전임 대통령이었던 어느 여성이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해 구중궁궐 속으로 도피했던 것처럼, 그는 술독의 심연 속으로 도피하는 것인지 모른다. 괴로움이 괴로움을 낳고 술이 술을 부르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가 괴로워 또 다시 술을 찾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결코 남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는 이이다. 평생을 ‘사나이’로, 어떤 문제든 잘 알고, 어떤 사안이든 명쾌하게 정리하는 완벽 완전에 만능을 과시하는 그로선 절대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다. 그 괴로움을 다른 이들은 감히 짐작하기 힘들다. 마음 속의 괴로움을 토해내고 싶으나 법률책-대부분 수험서이지만-외에 한 권의 책까지 탐독해 얻은 어휘가 수십 수백 개나 되지만 그걸로는 그 극심한 괴로움과 고뇌를 담아낼 수가 없다. 말로는 뜻을 다할 수 없고, 글로는 말을 다할 수 없으니, 말과 글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시와 노래가 있듯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는 그에겐 술이 곧 시이며 노래인 것이다.

용기 있는 고백으로 갱생하기를 권함

딱한 일이며 가련한 일이다. 그러므로 자학하듯 술을 자신의 몸속으로 들이붓는 그에게 너그러운 국민들이 보내야 할 것은 비난과 성토가 아니라 연민과 동정이다.

우리는 그에 대한 부당한 오해를 거둬야 할 것이다. 그가 보였던 많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 특히 그것의 한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는 친일 굴욕 참사에 대해서까지도, 그 굴욕과 퍼주기는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술 탓이었다고, 그의 사나운 폭주(暴走)는 폭주(暴酒)의 불가피함에서 나올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줘야 할 것이다. 단지 그날 일본 총리와 대작했던 그 자리에서의 술 때문만이 아닌 오랜 세월 몸속에 누적돼 몸의 장기처럼 돼버린 취기 탓이었을 뿐이라고, 결코 역사에 대한 무지 때문이 아니라고 이해해줘야 한다. 오무라이스 한 그릇에 나라를 내 줄 수도 있는 호탕함과 용감함은 무식 탓이 아니라 차라리 눈앞의 한잔 술에의 유혹 때문이었다고 이해하는 관대함을 가져야 한다.

지극히 인정 많고 관대한 국민들은 그를 이렇듯 걱정하고 염려한다. 나라가 우지끈 부서지는 지경이지만 나라보다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먼저다. 진심 어린 애정을 담아 그에게 권한다. 나라를 다스리기 전에 자신을 먼저 다스리기를 바란다. 다른 이를 통치하기 이전에 자신을 치유하는 것부터 먼저 하기 바란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우선 용기 있게 고백해 주기를 바란다.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먼저 털어놓기 바란다. 그를 위한 도움의 손길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 온정의 손을 잡기만 한다면 '갱생'의 길은 열려 있다. 거듭날 의지를 보여주기만 한다면 갱생으로의 문이 그의 앞에 기다리고 있다. 그 치유와 갱생을 위한 예산도 넉넉하게 편성될 것이다. 그의 술 때문에 탕진되고 헛되이 쓰이는 나랏돈의 백분지 일 천분지 일이면 될 터이니, 아마 야당도 이 일에 관해서 만큼은 초당적 협력을 보일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무엇보다 자기고백이 먼저다. 용기를 내기 바란다. 국민들의 관대함과 연민의 마음을 믿고 용기를 내기 바란다. 다만 명심할 것은 그런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몸이 상하는 속도 이상으로 나라가 부서지고 무너지고 있으니, 국민들에겐 기다려줄 시간이 많지 않다. 부디 갱생을 할 수 있는, 최소한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뿌리치지 말기 바란다. 그의 나라에 사는 ‘복된 국민’으로서 애정 어린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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