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엔서 '조선인 강제노동' 부인…한국은 관전만?
북한의 구체적 해법과 진솔한 사과 요구에
"ILO협약이 금지한 '강제노동' 아니라 본다"
되레 중국쪽이 "반성하고 피해자 보상하라"
일제강점기 불법적 강제징용(동원) 행위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유엔에서 '강제노동'을 부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정부는 지난 1월 31일 유엔인권이사회(UNHCR)의 국가별 정례 인권검토(UPR)에서 "한반도에서 온 민간인 노동자들이 어떻게 일본 땅으로 들어왔는지를 단순히 설명하기 어렵다"며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이 금지한 '강제노동'이 아니라고 주장했다고 연합뉴스가 6일 전했다.
일본 정부 대표는 강제징용 피해에 대해 "당시에는 자유의사에 따라 일본으로 온 노동자들, 관(官)의 알선이나 징발 등으로 일하게 된 노동자들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고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제공된 노동이 국제 노동협약에 나오는 '강제노동'이 아니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자유의사나 관의 알선‧징발 노동자 있었을 가능성"
2008년부터 UPR은 유엔 193개 회원국을 돌아가면서 해당 국가의 인권 실태와 권고 이행 여부 등을 동료 회원국들로부터 심의받는 제도이다.
강제징용 피해 문제를 거론하고 나선 것은 북한이었다. 방광혁 제네바 주재 북한 차석대사는 "2차 세계대전과 그 이전에 행해진 강제징용과 성노예(위안부) 문제에 대해 국가 책임하에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진솔한 사과를 하라"고 일본에 요구했다.
정작 피해자들이 가장 많은 한국의 윤석열 정부가 이 문제를 거론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불법적 강제동원(징용)을 자행한 일본 전범 기업들에 완벽한 면죄부를 준 윤 정부의 행태로 미뤄보면 일본을 자극하지 않고자 관전만 했을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ILO의 1930년 제29호 협약은 모든 형태의 강제노동을 폐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일본도 1932년에 이 협약을 비준했다.
일본은 강제징용 피해 배상에 대한 북한의 질의에 자발적인 근로 참여, 전쟁 등 비상시 부과된 노역 등이 강제노동의 예외에 해당한다는 점을 들어 일본 정부가 ILO 협약을 어긴 게 아니라는 주장을 편 것으로 연합뉴스는 전했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강제징용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으며 '징용공'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한일 합의만 있으면 강제동원 불법행위 없어지나?
또한 일본 정부는 UPR 회의에서 "작년 11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로 재확인했으며 대한민국 정부와 긴밀한 소통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해 양국 간 합의만 있으면 강제동원이란 전쟁 범죄 사실이 없어진다고 믿는 듯한 인식을 드러냈다.
문제는 이처럼 유엔 공개석상에서 '강제노동'이라는 강제동원의 불법성을 부인하는 답변을 내놓는데도 한국 대표가 정면으로 항의하거나 따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3‧6 외교 참사'로 불릴 만큼 굴욕적인 '제3차 대신 변제안'을 발표하면서도 윤 정부가 판결금이라는 돈 문제만 거론했지 강제동원의 불법성에 관해서는 일언반구가 없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윤 정부가 어느 나라 정부인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국 대법원은 2018년 10월 30일 전원합의체 선고를 통해 '강제동원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강제징용 피해자의 "정신적 피해, 인권 침해에 대한 개인 위자료 청구권 행사"를 인정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원고인 피해자들에게 피고인 전범 기업이 1인당 1억 원씩 배상하도록 했다.
뒤이어 이에 불응하는 전범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을 압류하고 현금화 명령을 앞두고 있었으나 지난해 7월 윤 정부의 요청하면서 지금까지 현금화는 중단돼 있다.
한국, 북‧중과 달리 위안부 문제도 '의례적 언급'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당시 UPR 회의에서 거론됐다. 북한에 이어 중국 대표도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 등에게 저지른 역사적 죄책을 경시해왔다. 책임 있는 태도로 반성하고 피해자에게 보상할 것을 권고한다"고 강하게 따졌다.
반면에 윤성미 제네바 주재 차석대사는 "일본이 한국과 긴밀하게 협력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되찾고 그들의 정신적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귀를 기울이기를 권고한다"고 말해 '의례적인 언급'에 그쳤다는 인상을 주었다.
일본의 '강제노동' 부인 보도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질타하고 나섰다. 추 전 장관은 이날 자신의 SNS 글을 통해 "명백한 강제노동이 맞다. 이렇게 역사적 사실마저 왜곡하는 일본에 대해 정부는 뒤통수를 맞기만 할 것이 아니라, 즉각 합의를 폐기하고 항의해야 한다"며 "역사는 뒷거래나 흥정이 대상이 아니고 5년 단임 대통령이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한편 일본의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6일 논평을 통해 "강제징용과 노예 노동은 일본 군국주의가 대외침략과 식민 통치 기간에 중국, 한국 등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 사람들에게 저지른 심각한 인도주의적 죄행"이라고 말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마오 대변인은 "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명백한 증거는 산과 같아서 부정과 변조를 용납할 수 없다"라며 "일본이 역사를 직시하고, 깊이 역사를 반성하고, 실제 행동으로 역사적 죄행에 대한 참회와 피해자 존중을 보여줌과 동시에 올바른 역사관으로 다음 세대를 교육해야 일본이 아시아 이웃과 국제사회로부터 진정한 신뢰를 얻을 수 있다"라고 충고했다.
일본, 강제노역 현장 사도광산 추진…윤 정부 곤혹
이런 가운데, 나가오카 게이코 일본 문부과학상은 7일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계속해서 추진하겠다면서 징용 배상 문제와 "사도광산의 등재 노력과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주장해 윤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기시다 정부는 사도 광산을 세계유산으로 신청하면서 그 시기를 에도 시대(1603년∼1867년)까지로만 한정함으로써 조선인 강제노역 등 근대 이후에 벌어진 강제동원의 역사를 일부러 누락시키는 수법으로 유네스코의 심사 관문을 뚫겠다는 편법을 동원하고 있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따르면, 미쓰비시광업이 운영했던 사도 광산의 외관은 물론이고 내부에서 채굴 장소로 이어지는 길은 모두 근대 이후의 시설로서 대부분 조선인 강제노역의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