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의 설계자’를 기억하는 법

2023-02-28     강미숙
강미숙 시민소셜칼럼니스트

이름만 들어도 오싹해지는 건물이 있다. 독가스 대신 물고문, 전기고문이 자행된 아우슈비츠나 다름없었다는 김근태 선생의 아픈 회고가 아니어도, 육중한 철문을 지나 검은 벽돌의 건물 입구에 서면 “여기 들어오는 자, 지금부터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했던 단테의 지옥문 경구를 절로 떠올리게 만드는 곳, 남영동 대공분실이 바로 그곳이다. 1974년 내무부 산하 치안본부 시절 독재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했던 경찰의 어두운 역사 현장인 남영동 대공분실은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어 도망갈 수도 없는 라비린토스(미궁)와도 같은 곳이었으며, 인간성을 말살한 학살터이자 지옥의 다른 이름이었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일반에게 공개된 후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공간이다.

최근 군사독재정권의 민낯인 이곳을 소재로 1975년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 설계사, 1986년의 대학생, 그리고 2020년을 사는 다큐멘터리 작가를 통해 시간과 공간, 시선을 교차시키며 질문을 던지는 연극 <미궁의 설계자>가 상연되었다. 과거의 선택에 대해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묻는 이 연극은 단순한 선악의 구조가 아닌 중층적이고 다층적으로 건축가와 건축을 다룬다는 점에서 몹시 반갑다. 연극은 건축이 말하는 역사적 사실을 은폐하고 회피함으로써 자성과 사회적 성찰의 기회를 포기한 행동에 대해서도 질문한다.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 위치한 민주주의인권기념센터에서 열린 더 좋은 민주주의 콘서트&제17회 박종철 인권상 시상식에서 가수 강은영이 공연을 하고 있다. 2021.6.10 연합뉴스

1세대 상징적 건축가가 지은 ‘지옥의 건물’

현대사를 뒤흔든 역사적인 건물을 설계한 이가 한국 현대건축의 거장이자 1세대 상징적인 건축가인 김수근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은 2005년 과거사 청산 사업으로 경찰청 인권센터로 바뀌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건물 입구에는 으레 설계한 이의 이름이 있게 마련이지만 대공분실 입구의 정초석에는 당시 내무부장관이었던 조선총독부 검사출신 김치열의 이름만 있을 뿐 어디에도 김수근이라는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작가들에게 고유한 문체가 있듯 건축가들의 설계에도 고유한 양식인 지문이 있게 마련이다. 푸른 담쟁이로 유명한 공간 사옥이 지금은 뮤지엄과 갤러리로 운영되는 덕분에 대공분실에서 그를 떠올리는 건 나 같은 건축 문외한에게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검은색 벽돌과 좁고 긴 창문, 공간을 절약하는 동시에 밀실로 이어질 것 같은 좁은 계단과 열림과 닫힘이 교차하는 공간의 변주는 원서동 공간 사옥의 특징들인데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대공분실 곳곳에도 부정할 수 없는 그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김수근은 과연 몰랐을까 라는 질문은 이제 김수근은 왜, 무슨 생각을 하며 정교하게 설계했을까, 부당한 주문을 천연덕스럽게 납품한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로 바뀌어야 한다. 알고 설계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하는 이들도 15개 조사실이 있는 대공분실 5층, 특히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509호 앞에 서면 절로 입이 다물어진다. 그곳이 고문과 살인이 기획될 곳인지 정말 몰랐을까 하는 질문은 중요하지 않다. 그가 세운 설계사무소 이름처럼 공간을 다루는 건축가가 의뢰인의 주문을 듣고도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했다면 건축에도 최소한의 윤리가 있는 것이니 어느 쪽으로도 변명이 될 수 없다.

건물 뒤편으로 감춰진 출입구로 당시 최상층이던 5층으로 연결되는 좁은 나선형 철제계단과 자연채광이 무시된 좁고 긴 창문, 그 창문 앞 작은 사이즈의 욕조와 침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 엇갈리게 설계한 출입문과 외부에서 통제하는 조명시스템 등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곳만의 특징들이다. 2년 전, 그곳 5층에서 국가보안법으로 삶과 언어를 결박당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기획전시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를 찾았을 때 나는 각 조사실마다 말로 겁박하고 물리적 위압을 가하는 장면이 절로 연상되어 복도를 다니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털이란 털은 다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 작은 조명 하나까지도 섬세하게 설계했다는 그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들이 왜 필요한지 짐작하고도 묻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악마의 설계

일본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젊은 건축가가 맞닥뜨린 5.16 쿠데타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딜레마였겠지만 쿠데타 주역인 김종필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국가 주도의 대형 프로젝트를 독점하다시피한 그의 이력을 감안하면 그리 특별할 것도 없다. 박정희 정부가 추구하는 통치철학을 건축으로 구현하며 승승장구한 그가 유신이 깊어가던 70년대 중반 정부의 대공분실 설계 의뢰를 거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는 박정희 유신정권을 비판하다 프랑스로 추방당한 동시대 건축가 김중업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그러니 서울의 로렌조 메디치로 불릴 만큼 적극적인 문화예술의 후원자이기도 했고 왕당으로 불릴 정도로 특유의 카리스마를 갖고 있던 그에게 대공분실은 지우고 싶은 오점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연보 어디에도 대공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쉬운 건 그는 한국전쟁 때 탈영하여 일본유학길에 오른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오점에 대해 죽는 날까지 함구함으로써 또한번 비겁을 남겼다는 점이다. 한창 일할 나이에 갑작스런 병마를 얻은 그는 자신이 설계한 그곳에서 대학생 박종철이 고문으로 죽기 7개월 전에 사망했다. 다이달로스는 자신이 설계한 미궁에서 탈출하기 위해 하늘을 날다 아들을 잃었지만 김수근은 다행히도 생전의 명예를 훼손당하지 않고 죽은 셈이다. 만약 그가 살아서 박종철의 죽음을 목도했더라면 자신의 불명예스러운 건축에 대해 자발적으로 언급하는 기회를 만들었을까? 건축가는 정의롭지 않은 설계일지라도 의뢰인의 주문에 충실한 것으로 면죄부를 발급받는 것일까? 그는 정녕 끝까지 비밀이 지켜질 거라고 확신한 것일까?

과문한 탓이겠지만 대공분실을 고문실로 정교하게 설계한 김수근의 선택에 대해 우리 사회, 구체적으로는 한국 건축을 대표하는 그의 제자들이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가 세운 공간 건축은 김수근의 대공분실 설계를 인정하지 않으며 김수근 타계 20주년 추모집으로 94명의 각계 인사들이 그를 회고하는 글을 담은 <당신이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입니까?>라는 책에도 남영동 검은 벽돌집을 언급하는 이는 단 한사람도 없다는 것으로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러나 이는 비단 건축계만이 아니라 김지하나 양성우와 같은 문인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3.1절 전후가 되면 으레 친일청산 이슈가 뜨겁다. 과거청산은 일제에 부역한 친일청산만 있는 게 아니다. 한때 독재에 저항하는 투사의 길을 걸었던 이들이 어느 순간 독재자의 후예들에게 추파를 던지고 심지어 아스팔트 극우가 되기도 하듯 현대사 곳곳에는 청산해야 할 유산들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누구나 적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과거의 자신의 신념을 배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오욕의 과거를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늘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숨기지 말고 드러내어 평가받고 청산해야

건축가는 설계로 말하고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김지하나 양성우 시인이 자신뿐만 아니라 역사와 민중의 기대를 배반했다 하여 그들의 지성이 빛나던 시절의 작품들까지 매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대공분실을 설계했다 하여 걸출한 건축가 김수근이 우리 사회에 남긴 굵직한 족적을 다 부정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들을 기억하고 평가할 것인가, 어떻게 그들이 남긴 유산을 향유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나치 전범이었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나는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이며 저 신 앞에서는 유죄지만 이 법 앞에서는 무죄다”라고 법정 최후진술을 했다. 법 앞에서는 유죄일지 몰라도 신 앞에서는 무죄라 했던 안티고네와는 상반된 변명이었다. 이 재판을 참관한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신의 주체성과 타인의 고통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죄”라 했으며 아우슈비츠에서 구사일생으로 귀환한 프리모 레비는 이날 참관을 포기하고 '생각하지 않는 죄'라는 시를 썼다. 그리고 훗날 ‘의심하지 않는 죄’라는 시에서 “그대 작가들이여/글을 쓸 땐 부디 ‘의심하지 않는 죄’를 짓지 말라/이 세상에 당연한 건 아무도 없으니”라고 썼다. 전후 이스라엘의 행보에 몹시 괴로워한 그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결코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날까지 악의 근원과 인간의 본질을 인문적 사유로 천착했다. 고문공장을 설계한 건축가는 시대적 딜레마에 빠진 피해자임을 항변하고 싶겠지만 결코 가해자라는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기에 타인의 고통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은 죄를 그에게도 들려주고 싶다.

연극 <미궁의 설계자>를 연출한 연경모는 역사의 과오를 어떻게 반성하고 책임질 것인지, 지식인의 행위가 어떻게 인간에 대한 폭력이 될 수 있는지를 질문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연극은 김수근의 지문이기도 한 붉은 벽돌의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상연되었다. 공연 일정이 짧은 탓도 있겠으나 초반부터 마지막 공연까지 매진될 만큼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이 연극이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변모하여 내년에 개관할 예정인 대공분실에서 정기적으로 상연되어 많은 시민들이 국가폭력의 실체와 권력과 현실 사이에서 예술가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시민으로서 우리는 이를 어떻게 볼 것인지 생각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김수근의 공과 과에 대한 냉철한 사회적 평가를 거쳐 후학들에게 반면교사로 삼게 하는 동시에 현대건축의 거장이자 상징이라는 진정한 명예로 거듭날 수 있지 않겠는가. 미궁의 설계자에게도 탈출할 수 있는 실타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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