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을 만들다] ②일상을 접선 '핵심 증거'로 둔갑시켜

약속한 이 찾느라 두리번거림을 '눈빛 교환'

숲 해설가 활동까지 '사전 모의'로 몰아 기소

4.3 추모 참석, SNS 올린 내용도 증거 제출

물리적 증거 없자 '사상 불온하다' 낙인찍어

판사도 황당해한 검찰의 억지 '관심법' 기소

2025-11-24     한요나 시민기자

신동훈 제주평화쉼터 대표는 2023년, 윤석열 정부의 이른바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수사 당국은 신 대표가 2017년 캄보디아에서 북한 공작원을 접촉해 지령과 공작금을 수수하고 국내에 비밀 결사 조직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언론은 피의 사실을 공표하며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에게 '간첩' 낙인을 찍었고,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활동 이력과 엮어 '세월호 간첩'이라는 악명까지 붙였다.

하지만 1심과 항소심에 이어 지난 9월 25일, 대법원은 그에게 최종 무죄를 확정했다. 이는 보수 언론이 즐겨 쓰는 '증거 불충분'과는 본질이 다르다. 신 대표가 밝혔듯, "수년간에 걸친 내사와 불시의 압수수색에도 불구하고 관련된 증거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아" 무죄 판결을 받은, '증거 자체가 부재'를 확인한 사건이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막대한 인력과 세금을 투입해 한 평범한 시민을 어떻게 '간첩'으로 조작하려 했는지, 그 비상식적인 조작의 전 과정을 추적한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18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평화쉼터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관련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다. 2023.1.18. 연합뉴스

​검찰이 신 대표의 '간첩 혐의'를 입증할 '핵심 증거'라며 야심차게 제시한 증거는 2017년 9월 캄보디아의 한 공원에서 이뤄졌다는 이른바 '은밀한 눈빛 교환'이다. 검찰은 신 대표가 공작원과 눈빛을 교환하며 접선 신호를 보냈다고 주장했다. 공소장에는 첩보 영화의 시나리오처럼 긴장감이 감도는 접선 상황이 묘사돼 있다.

하지만 신 대표는 당시 상황에 대해 "약속 상대로 소개받은 사람의 얼굴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공원에 오는 사람마다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며 "약속 장소인 줄 알았던 동상 앞에서 기다리다가, 상대방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바뀐 약속 장소로 이동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누군가를 만나기로 했는데 얼굴을 모른다면, 지나가는 행인을 유심히 살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행동이다. 검찰은 이 자연스러운 시선 처리를 '접선 신호'로 둔갑시켰다.

​국정원이 100m 밖에서 망원렌즈로 촬영해 화질조차 조악하기 그지없는 이 영상은, 법정에서 오히려 검찰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사실을 증명하는 부메랑이 됐다. 영상을 확인한 판사조차 "신 대표가 상대를 볼 땐 상대방이 다른 곳을 보고 있고, 상대방이 여기를 볼 때 신 대표가 딴 데를 보고 있다"며 "이게 도대체 무슨 눈빛 교환이냐"고 검찰 측 주장을 일축했다. 서로 시선조차 맞지 않는 흐릿한 영상을 두고 '은밀한 신호 교환'이라고 우기던 검찰의 주장은 법정에서 조롱거리가 됐다. 결국 판결문에도 '눈빛 교환은 없었다'고 명시돼, 검찰의 주장이 완전한 허구임이 드러났다.

​증거 조작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검찰은 공소장에 신 대표가 눈빛 교환 후 '일정 거리를 두고 공작원을 따라갔다'고 적시하며 은밀한 접선 상황을 묘사했다. 하지만 법정에서 재생된 영상에는 정반대의 모습이 담겨 있다. '전화를 받고 바뀐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는 신 대표의 진술대로, 신 대표가 먼저 앞장서서 걸어가자 1~2분 뒤 상대방이 신 대표가 걸어 간 쪽으로 뒤따라가는 장면이 포착됐다. 피의자가 공작원을 따라갔다고 기소했는데, 정작 영상 속에서는 공작원이 피의자를 따라갔다. 검찰의 공소장 내용이 검찰이 제출한 영상 증거에 의해 정면으로 부정된 희대의 촌극이다.

​물리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자 국정원은 신 대표의 사상을 의심하기 위한 '증거'들도 무차별적으로 동원했다. 신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국가보안법 철폐' 액자 표구 사진이 증거로 제출됐고, 제주 4.3 추모 집회에 참석한 사실도 공소장에 올렸다. 공범으로 함께 기소된 김 모 씨와 페이스북 친구라는 점(사실확인 결과 페이스북 친구도 아니었다), 제주 간첩단 사건 관련자와 숙박 문의 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실까지 증거로 제시했다. 이는 피고인의 행위가 아닌, 내면의 사상을 어림짐작으로 검열하고 처벌하려는 국가보안법의 전근대적 속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신동훈 제주평화쉼터 대표. 사진=한요나 시민기자

​"증거가 없으니 사상을 재판하려 들었다"

국정원의 증거 꿰맞추기와 관련한 신 대표와의 문답.

​-캄보디아에서의 '눈빛 교환'이나 곶자왈의 '사전 모의'는 객관적 증거라기엔 너무 황당하다. 검찰이 이런 것들을 증거로 내세운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간단하다. 진짜 증거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를 거창한 간첩 혐의로 기소했지만, 수년간의 도청과 감시, 압수수색에도 불구하고 이를 뒷받침할 증거를 '단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증거가 없으니, 나의 평범한 일상을 전부 '의심스러운 행위'로 포장해야만 했다. 얼굴을 몰라 두리번거린 것도 '접선 시도'가 되고, 숲 해설을 한 것도 '사전 모의'로 조작됐다. 사실관계를 입증하려 한 게 아니라, '신동훈은 간첩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모든 것을 억지로 꿰맞춘 것이라고 생각한다."

​-'증거 꿰맞추기'가 다른 부분에서도 추가로 드러났나?

"물리적인 증거가 없으니 나의 '사상'을 심판하려 들었다. 그것이 바로 국가보안법의 본질이다. 그들은 내 SNS 게시물, 제주 4.3 추모 집회 참석, 심지어 시국 사건 관련자와 나눈 일상적인 대화까지 모두 증거로 냈다. 이는 혐의를 입증하는 증거가 아니고, 저를 '사상이 의심스러운 자' '불온한 자'로 낙인찍기 위한 밑그림을 그리는 행위였다. 이런 검찰의 행태를 두고 '관심법'이자 '무당짓'이라고 비판한 이유다."

​국정원의 비과학적이고 자의적인 증거 수집 뒤에는, 혐의를 입증하려는 노력이 아닌 혐의를 '만들어내려는' 노골적인 시도가 있었다고 보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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