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결 전엔 ‘12·3 계엄 위헌성’을 판단 못하나

조선일보의 위험한 주장, 민주주의 근간 해쳐

우리 모두 내란의 ‘목격자’이며, ‘소송법상 증인’이다!

2025-11-15     김현철 변호사
조선일보의 11월 15일자 사설.

이재명 정부가 군(軍)의 중장 정원 31명 중 20명을 교체했는데, 육군에서는 중장 15명이 모두 바뀌는 등 최근 10년 이내 최대 규모의 인사였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2025년 11월 15일 자 조선일보는 <정권마다 군 ․ 공무원 편 가르기, 나라 미래 망쳐>라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은 사설을 썼습니다.

사실상 ‘계엄 문책’ 인사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국방장관에게 계엄 연루자의 진급 배제를 지시하며 “잘 골라내시라”고 했는데, 이번 인사에서 이를 반영한 것이다. 국방부는 계엄 당시 합참 · 육군본부 · 지상작전사령부에 근무했던 대령 이상 장교 수백 명을 조사했다고 한다. 이번 인사에선 대상자에게 ‘계엄은 내란이었느냐’는 식으로 묻는 절차가 있었다고 한다. 군인은 기본적으로 명령에 따르는 사람이다. 12 · 3 계엄이 내란이었는지 여부는 법정에서 결론이 나야 할 순전히 법리적 문제다. 군인들이 판사도 아니고 법률 전문가도 아닌데 이런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하나. 내란이라고 답하지 않으면 승진에서 배제하려는 ‘우리 편 테스트’였다. 인사 대상자 중에는 “이런 식이면 진급 안 하겠다”고 말한 장성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12 ․ 3 계엄이 헌법과 법률의 절차를 위반했는지를 꼭 법원의 판결을 통해야만 인정할 수 있을까요? 관련자들의 처벌이야 당연히 판결의 선고가 있어야 하지만, 법원 판결 전에 시민들이 12 ․ 3 계엄의 위헌성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가요?

만약 우리가 12 ․ 3 계엄의 사실관계를 알기 어렵다면, 그 위헌성과 위법성을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7분 대한민국 대통령 윤석열은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라고 하면서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윤석열이 말한 종북 반국가 세력은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국회의원이었습니다. 그러자 이를 해제하려는 국회의원들이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집결하였고, 윤석열의 지시를 받은 김용현 국방장관이 707특임대 197명과 제1공수 특전여단 277명, 수방사 211명, 총 685명을 국회에 보내 국회의원들을 막았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 이 과정을 유튜브로 지켜보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목격자’이며, ‘소송법상 증인’이었습니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업 선포 직후 국회로 난입하는 계엄군.    나무위키

한편 어떤 사실관계가 헌법과 법률의 규정에 부합하는지를 따지는 게 어렵다면, 그 위헌성과 위법성을 시민들이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12 ․ 3 계엄이 대한민국헌법 제77조 제1항이 규정한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는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 없이 명백한 사실이었습니다. 심지어 국회가 폐회 중일 때에는 계엄을 통고하기 위해 대통령이 국회에 집회를 요구해야 합니다(계엄법 제4조 제2항). 즉 대통령은 계엄 아래에서도 국회의 집회를 보장해야 함에도, 윤석열은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를 막으려고 군대를 투입했습니다. 또한 계엄 시행 중에도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체포, 구금될 수 없음에도(계엄법 제13조), 윤석열은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에 대한 체포 명단을 작성하고 그 실행에 착수했습니다. 또한 계엄사령관의 권한이 ‘행정사무와 사법사무’에 제한됨에도(계엄법 제7조), 그와 무관한 국회에 계엄군이 난입하였습니다. 12 ․ 3 계엄이 헌법과 계엄법에 위반된 사실은 법원의 판결 없이도 너무나 명백하게 인정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그러한 전제에서 헌법재판소가 이미 윤석열의 대통령직을 파면하였음은 물론입니다. 따라서 12 ․ 3 계엄의 위헌성이 법정에서 결론이 나야 할 순전히 법리적인 문제라는 조선일보의 주장은 국가 질서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해치는 위험한 주장입니다.

더구나 위 조선일보 사설은 12 ․ 3 계엄에 관련된 공무원을 조사하는 과정을 “정치 성향의 고백을 강요”하는 것이라면서, “전체주의, 독재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정부는 49개 중앙행정기관 공무원 75만 명을 대상으로 이른바 ‘내란’ 가담자 색출 작업도 벌이고 있다. 공무원들에게 동료 고발을 조장하더니 군인에게 정치 성향 고백까지 강요한다. 한 정권과 정당이 자신들 마음대로 ‘올바른 생각’을 규정하고, 그에 따르지 않는 사람을 색출해 불이익을 주는 것은 전체주의, 독재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12 ․ 3 계엄의 가담 여부가 정치 성향의 문제일까요? 아닙니다. 2024년 12월 3일 우리의 시민들이 장갑차를 막고 계엄군의 총을 저지하고, 그러한 와중에 국회가 계엄을 해제하면서 아무런 인명 피해 없이 계엄을 패배시켰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12 ․ 3 계엄은 1980년 광주에서처럼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을 것입니다. 따라서 위헌적인 계엄은 선택할 수 있는 정치적 행위가 될 수 없으며, 12 ․ 3 계엄의 가담 여부는 정치 성향의 선택이 아니라,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가르는 기준입니다. 12 ․ 3 계엄을 정쟁의 대상인 것처럼 주장하는 조선일보는 ‘합리적인 보수의 정론’이 아닌 ‘극우파의 스피커’로 자신을 커밍아웃한 것입니다.

 

김현철 변호사는 그의 책 '민주주의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2025)에서, 역사적으로 계엄이 비상사태 극복이 아닌 쿠데타의 수단으로 악용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우리 헌법에서 ‘대통령의 계엄권’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법원이 판결을 선고해야 ‘12 ․ 3 계엄의 위헌성’이 인정된다는 조선일보의 주장은 민주주의에 반대되는 엘리트주의적 발상입니다. 만약 어떤 판사가 12 ․ 3 계엄이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시민들은 그 판사의 탄핵을 주장할 수 있으며, 또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판사의 위법한 판단까지 사법부의 독립으로 정당화될 수 없으며, 사법부의 독립, 법관의 독립은 민주주의의 지배 아래에 있습니다. 그래야만 나중에 또 부당한 통치자가 나타나 그가 다시 위헌적인 계엄을 선포하더라도, 우리의 군인들이 그러한 위법한 명령을 거부하고 시민들을 보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군인은 기본적으로 명령에 따르는 사람이다. 12 ․ 3 계엄이 내란이었는지 여부는 법정에서 결론이 나야 할 순전히 법리적 문제다”라는 조선일보의 사설은 이러한 위헌적인 사태의 재발에 불씨를 남기는 위험하고도 위법한 주장입니다. 군인과 공무원은 상급자의 명령이 위법한가 적법한가에 대해 판단할 의무가 있으며, 위법한 명령에 대해 거부할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12 ․ 3 계엄은 선택할 수 있는 정치 행위가 될 수 없으며, 결코 정치 성향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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