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AI 협력'으로 평화공존 토대 마련하자
과학협력, 남북 교류에 돌파구 될 수 있어
소버린 AI 구상, 북한을 위한 자리 마련해야
북한 AI 관심 높고 관련 기술도 상당히 축적
GPU 남북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방법 찾자
10월 3일은 한국과 독일 모두 국경일로 지정된 날이다. 한국에서는 개천절, 독일에서는 통일기념일이다. 메이데이 노동절과 함께, 독일에서는 드문 종교와 무관한 국경일이다. 이날을 계기로 한국의 통일부 장관이 베를린을 방문하는 것은 연례행사가 되었다. 통일 독일을 축하하면서 통일 과정과 통일 이후의 변화를 살피기 위함이다. 심지어 대사관에는 ‘통일관’이라는 이름으로 통일부에서 파견나온 담당자가 있어 1년 내내 독일의 통일관련 이슈를 살핀다. 때로는 남한이 독일인들보다 독일 통일에 더 깊은 관심을 보이는 듯하다.
문제는 타국의 통일사에 깊이 관심을 보이면서도 정작 우리 통일의 대상인 북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점이다. 독일대안당(AfD)이 동독 지역을 중심으로 급부상함에 따라 통일과정에서 소외되었던 동독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통일의 파트너인 북한의 변화와 고민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많이 부족해 보인다. 그나마 통일 논의에서 가끔씩 보이는 북한의 모습은 지난 세기, ‘고난의 행군’ 시절의 어두운 이미지에 머물러 있다. 국가 단위의 혁신체제 복구가 일단락되고 지역혁신체제가 준비됨에 따라, 전국토가 점차 건설현장으로 변하는 지방발전정책의 맥락이나, 과학기술을 통한 경제발전이라는 그들의 미래비전을 우리는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베를린을 방문한 통일부장관은 최근 몇 년간 다녀간 이전 통일부장관들과 약간 달랐다. 메시지의 중심에 북한을 두었다. 독일 통일에 대해 배우겠다는 말보다 동독과 북한은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미국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3대 국가에 북한이 들어간다고 규정했다. 아마도 미국을 제외하고 러시아, 중국, 북한만 개발에 성공한 ‘극초음속 미사일’을 염두에 둔 듯하다.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현실 인정’을 강조한 그의 발언은 분명 주목할 만한 변화이다.
그럼에도 이 ‘현실 인정’은 아직 절반에 못미치는 일부만 다루고 있다. 핵보유는 인정하지만, 그렇게 보유한 핵무력을 없앨 수 없다는, 비핵화는 불가능하다는 과학적 현실은 인정하지 못한 듯하다. 정확히는, 비핵화를 검증할 과학기술적 방법이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더 나아가, 세계 최첨단 무기를 만들 수 있는 과학기술을 이제 민수로 전환하면서 과학기술을 통한 경제발전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북한의 전략은 언급도 하지 않았다. 특히 그가 2000년대 초반 평양의 조선컴퓨터센터에서 북한의 음성인식기술을 직접 참관했고, 전자, 기계 등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한 개성공단 2단계, 3단계 구상을 잘 알고 있으며, 최근 북한의 AI 관련 연구동향까지 알고 있다는 답변을 했던 점을 고려하면, 북한의 과학기술 전략 그리고 미래비전을 인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아쉽게도 이러한 인식이 통일, 대북정책으로 연결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해결되지 않은 과거 합의와 문제들에 매몰되어, 미래비전이나 발전전략과 직결되는 새로운 의제를 정책에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과학기술로 되어 있는 뭐라도 함께 하자”
사실 우리가 북한의 이야기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 북한은 우리에게 꾸준히 한결같은 메시지를 보내왔다. “과학기술로 되어 있는 뭐라도 함께 하자.” 이는 2018년 9월 개소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회의 때마다 북한이 남한에게 요구했던 일관된 제안이다. 하지만 남측은 이 제안에 거의 응답하지 않았다. 그 결과 북한은 상주인원을 철수시켰으며 급기야 2020년 6월에는 폭파라는 충격적인 방식으로 이 건물을 철거해버렸다. 아직까지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 백서나 기록은 거의 공개되지 않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요구도 개성공단지원재단, 서울시 남북협력추진단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졌을 뿐이다.
이와 맥을 같이하는 요구는 2015년에도 있었다. 당시 ‘통일대박론’이 등장하면서 민간차원의 남북교류를 재개하기 위해 방북한 사람들에게 북측은 태양광 패널 공장 건설과 같은 기술기반 사업을 제안했다고 한다. 물론 위기상황에서 필요했을 식량지원과 같은 사업들은 명확하게 거절하였다. 시혜성 사업은 단호히 거절하면서 노동집약적 산업이 아니라 앞선 기술을 활용한 산업으로 교류협력의 패러다임을 전환하자는 제안이었다. 물론 당시 남측은 이러한 요구에 거의 호응하지 못하였다.
2017년 7월에는 남측을 향한 직접적인 제시는 아니지만 당 기관지 ‘근로자’를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간접적으로 피력한 바 있다. 당 정책들에 대한 자세한 해설과 제안 등을 주로 다루는 월간 당기관지 ‘근로자’에 “남조선에서 우리의 과학기술강국건설로선과 관련한 연구토론회가 진행된 데 대하여”라는 글이 2쪽에 걸쳐 실렸다. 북한 과학기술 정책 및 동향에 대한 토론회가 2017년 1월, 남한에서 열렸는데 이를 자세하게 소개하는 글이다. ‘근로자’에 남북 교류협력에 대한 글이 실린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남한 언론에 보도된 기사를 토대로 당시 토론회에서 발표된 내용과 질의응답을 정리한 후, 자신들의 정책을 간접화법으로 담아 내었다. 1월에 있었던 토론회 내용을 반년이 지난 7월에 게재한 것은, 전략적 방향과 부합하는 내용을 신중하게 선택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당원들에게만 배포되어 외부에서는 구하기도 힘든 ‘근로자’는 검열이 엄격하다고 한다. 상당히 많은 기관들이 교차검증한 것인 만큼 그 내용 또한 신중하게 다루어진다. 여기 실리는 내용들은 북한의 정책적 지향과 부합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2017년 7월호에 게재된 그 글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이전 생략) 남조선 전문가들은 북과 남의 과학자들이 협력하여 공동의 과학연구성과를 내놓으면 파국상태에 처한 북남관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북과 남의 과학자들이 서로 만나 공동으로 과학연구사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실례로 북이 특별한 관심을 돌리고 있는 탄소하나화학공업에 대한 연구사업도 북과 남이 이 분야에 대한 공동연구를 진행하거나 기초과학기술이 발전한 북과 남이 정보기술분야에서 협력하는 것을 통해 그 공간을 마련해볼 수 있다고 하였다. (이후 생략)”
이는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와 공식 대화채널이 없어서 직접 제안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간접화법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제안한 것이다. 과학기술을 통한 교류협력이 “파국상태에 처한” 남북 관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드러낸 것이었다. 특히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분야인 ‘정보기술분야(IT)’와 2016년 제7차 당대회에서 강조했던 ‘탄소하나화학공업’을 중심으로 공동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구체적인 제안이었다. 일방적인 지원과 수혜 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파트너로서 첨단 과학기술을 공동 연구하고 이를 통해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구상을 2015년에 이어 계속 내비쳤던 것이다.
과학기술 교류에는 늘 UN 제재 문제가 따른다. 그러나 UN제재는 본질적으로 북한의 핵무력 발전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이후 북한의 핵무력 수준이 발전함에 따라 제재 항목도 넓어지고 자금원까지 통제하게 되었지만 기본 취지는 핵무력이 발전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따라서 첨단 과학기술과 관련된 것이라도 생활에 필수적인 것은 예외로 허용되는 경우도 많았다. 게다가 과학기술은 본질적으로 군수와 민수 양면에 활용될 수 있는 이중성을 가지므로, 기술 자체를 전면적으로 제재하기는 어렵다. 지금은 UN의 대북제재를 이행하는 실행기구인 ‘전문가 패널(Expert Panel)’이 이미 없어졌고 러시아와 중국이 점차 이를 거부하고 있으므로 UN 제재는 점차 사문화되어가고 있다.
2018년 4월 20일, 과학기술과 교육을 통한 경제발전 전략 채택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회담을 앞둔 북한 지도부는 일주일 전인 4월 20일에, 아주 중요한 전략적 노선 변경을 채택하고 공개했다. 2013년부터 유지해 온 ‘경제-핵 병진노선’을 끝내고, 이제 남은 하나의 목표인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 집중’하겠다는 새로운 국가 발전 노선을 천명한 것이다. 길게는 2002년 채택된 ‘국방 우선, 농업-경공업 우선 전략’ 이후, 국가발전 전략노선의 대전환이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위한 핵심적인 방법론으로 제시된 것이 ‘과학기술과 교육’이었다. 단기적 성과를 위한 동원 체제 도입보다, 긴 시간이 소요되고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지만 ‘지식경제 시대’, ‘정보산업 시대’에 부응하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선택했던 것이다. 1978년부터 제시된 인민경제 발전 방향인 ‘주체화, 현대화, 과학화’에 2016년 7차 당대회에서는 ‘정보화’를 덧붙일 만큼 과학기술 특히 IT를 경제발전의 핵심 요소로 북한지도부는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김정일 위원장 시기부터 ‘새 세기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으로 생산현장의 변화방향을 ‘CNC화, 무인화, 지능화’로 명확히 규정했다. 이에 맞추어 경제발전 전략을 다듬은 것이 ‘과학기술과 교육’ 중심 발전전략이었다.
이 결정이 비록 국내 경제발전 전략에 대한 것이긴 하지만, 판문점 회담 직전에 공개된 것으로 보아, 남한과 미국을 향한 무언의 제안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17년 11월 화성-15형으로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면서 핵억제력을 충분히 확보했다고 판단한 북한지도부는, 이를 바탕으로 과거의 대결적 관계를 종식하고 평화 공존의 미래를 설계하자는 메시지를 던졌던 것이다. 그 구체적인 협력의 주제로 대부분이 동의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 의제인 ‘과학기술과 교육’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 입장에서 제시할 수 있는 핵무력과 관련한 최대한의 양보는 2018년 남은 기간동안 다듬어져 2019년 신년사에서 공표되었다. 당시 김정은 위원장은 일명 4-No 정책, 즉 “더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이로써 핵무력에 집중되었던 자원, 자금, 기술, 인력 등을 민수로 전환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였던 것이다. 핵무력은 이대로 동결하고, 남는 여력으로 민수경제 즉 일상생활의 발전에 집중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운명공동체 의식과 미래비전의 공유
통일의 근거로 우리는 흔히 ‘민족’을 이야기하지만, 그 개념은 모호하다. 혈연, 지연, 언어, 역사인식, 문화, 풍습 등의 여러 요소가 있지만, 가장 핵심은 ‘운명공동체 의식’이다. 아무리 동질성이 높아도 서로를 ‘함께 흥하고 망할 운명’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같은 민족으로서 통일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최근 북한이 남북의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유는, 혈연, 지연, 언어, 역사 등의 변화가 아니라 서로가 함께 합심해야 ‘(잘) 살 수 있다’는 의식이 약해지고 있다는 위기감의 표현일 수 있다. 상대를 제거해야 내가 살 수 있다는 ‘공존 불가능성’에 대한 동의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극렬한 대응이라 볼 수 있다. 오랜 분단으로 인해 생기는 사회 문화적 거리감의 문제를 넘어, 군사 안보 전략의 격변과 연결되어 있다. 사상 최대 규모, 최대 횟수의 한/미/일 군사훈련이 실행되고 있고 이를 사회 전체에서 용인하고 있는 사회 분위기가 자리잡은 데 대한 선제적 대응이라 할 수 있다.
‘운명공동체’는 ‘미래비전을 공유하는 집단’으로 재정의할 수 있다. 과거를 공유한 집단이면서 하나된 ‘미래’, 서로 함께 잘 살 수 있는 ‘비전’을 함께 설계할 수 있는 관계가 바로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관계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북한이 그리고 있는 미래비전에 우리가 어떤 대응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북한으로 하여금 ‘통일의 대상이 아니’라는 선언을 하게 만든 것일 수도 있다. 과학기술과 교육으로 미래를 구상하고 있는 북한이 “과학기술로 되어 있는 뭐라도 하자”라고 끊임없이 제안했던 것은, 같은 민족으로서 ‘미래’를 함께 설계하고 실현하자는 통일을 향한 제안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지향적 제안에 대해 대안 마련은커녕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먹을 것만 밀어넣고, 불가능한 ‘비핵화’만 주장하였다. 이것이 우리가 성찰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할 지점이다.
소버린 AI 구상, 북한을 위한 자리는 있나?
최근 몇 년간 인공지능(AI) 기술은 차원을 달리하며 발전하고 있다. IT가 빠르고 정확한 계산능력이 아니라 인간에 버금가는 ‘지능’의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를 새 정부에서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새로운 미래비전으로 ‘소버린 AI’ 구상을 내놓고 있다. 국경이 열리는 자유무역시대가 저물고 보호무역시대가 다시 부각되는 흐름에서 AI의 자주권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고성능 GPU 수 1만장 확보,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자체 거대언어모델(LLM) 개발, 그리고 이를 우리 사회에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양질의, 다량의 데이터셋(코퍼스) 구축이라는 세가지 축으로 요약된다.
문제는 이 거대한 소버린 AI 속에 북한의 자리가 전혀 없다는 데 있다. 북한의 두 국가 선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통일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북한과 하나의 민족임을 잊지 않는다는 주장은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비전 속에서 북한은 함께 미래를 만들어갈 파트너로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입으로 하는 주장과 달리, 실행에 옮기고 있는 구체적인 정책 속에 북한의 자리는 없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주장은 오히려 신뢰를 갉아먹는다.
북한 또한 AI에 대해 관심이 지대하며, 관련 기술도 상당히 축적하고 있다. 생성형 AI의 시초인 알파고가 사용한 핵심 기법인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 기법을, 북한은 그보다 빨리 ‘은별바둑’에서 이미 도입하고 있었다. 그 이전 시기 3대 인공지능 기술로 일컬어진 문자, 음성, 안면인식 모두 2000년대 후반까지 기술경쟁력은 물론 상품경쟁력까지 가지고 있었다. ‘새 세기 산업혁명’이라는 담론 속에 정립된 ‘자동화, 무인화, 지능화’라는 목표는 AI를 포함한 IT 기술을 생산현장에 전면적으로 도입하겠다는 전략의 표현이다. 일찍부터 북한은 기술의 발전을 노동해방, 인간해방을 위한 실행방법으로 인식했다. 사회주의 혁명을 3가지 혁명과제로 세분화한 3대혁명(사상, 기술, 문화)으로 정식화하고, 그 중 기술혁명을 다시 3가지로 세분화한 것은 사회주의권 전체에서도 앞선 시도였다. 즉 기술혁명을 통해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구분을 없애고, 농업노동과 공업노동의 차이를 없애며, (여성을) 가사노동에서 해방하는 것으로 3대기술혁명이 1960년대에 이미 정식화되었다.
‘자립/주체’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북한도 이름만 다를 뿐 우리의 ‘소버린 AI’와 같은 정책을 추진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의 과학기술 인재, 특히 IT 인재들의 실력은 오래전부터 객관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수준이다. 그래서 추측건대, 가장 큰 걸림돌은 하드웨어, 즉 고성능 GPU와 이 운영을 감당할 수 있는 전력을 확보하는 일이다. 낮은 사양의 컴퓨터들을 계층적으로 조직하여 높은 성능의 컴퓨터를 대체할 수 있게 하는 ‘병렬 컴퓨터’ 기술을 북한이 일찍부터 깊이 발전시킨 이유가 비용절감과 함께 첨단 하드웨어 확보의 어려움 때문이었다. 아마도 중국의 반도체 산업과 러시아의 극동 지역 전력생산 능력이 우선 고려 대상일 것이다. 남한은 후순위 정도가 아니라 배제의 대상이 되어 버렸으니, 남북의 AI 시스템은 시작부터 분단체제, 혹은 두 국가체제 속에 굳어져버리게 되었다. 결국 이대로 남북이 따로따로 독자적인 ‘소버린 AI’를 추구하게 되면 우리 민족의 미래는 ‘분단’ 혹은 ‘두 국가’에 잠겨(Lock-in) 버리게 된다.
따라서 ‘소버린 AI’ 구상 속에 남북 협력의 가능성을 포함하는 것이야말로, ‘적대적 두 국가관계’ 담론을 넘어 실질적인 평화 공존의 토대를 마련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즉 어렵게 확보한 몇 만 장의 GPU를 우리끼리만 쓸 것이 아니라 남북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남북 과학자들이 협력하여 우리 민족의 언어와 현실에 맞는 LLM을 공동개발하며, 양질의 코퍼스를 공동으로 구축하는 미래를 우리가 먼저 제안하는 것이다. 이는 6.15 공동선언과 개성공단 1단계 사업 이후, 처음으로 남북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진전시킬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청사진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도 원하는 것이므로 호응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제안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