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 시위’로 위기맞은 이란정부 민심 수습용 조건부 사면
2만여 구금자들 중 ‘개전의 정’ 보인 이들 대상
4명 사형 집행, 사형언도 100명 추가집행 우려
하타미, 무사비 등 개혁파세력 근본개혁 요구
이란 정부가 지난해 9월부터 이어지고 있는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체포돼 구금당한 사람들에 대한 조건부 사면 결정을 내렸다고 외신들이 이란 관영 <메헬> 통신의 보도를 인용해 6일 전했다.
<가디언>과 <아사히신문> 등은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승인한 이번 사면은 오는 11일의 이란 이슬람혁명 44주년 기념일에 맞춰 단행되는 것으로, 사면대상과 관련해 이란정부가 구체적인 수치를 밝히진 않았으나 최대 수만명에 이를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단체들은 지금까지 반정부 시위로 2만여명이 체포당했으며, 그들 중 4명이 사형언도를 받고 처형당했고 100명 정도가 추가로 처형당할 위험성이 있다고 피소자들에 대한 혐의 내용을 토대로 추정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란에서는 지난해 9월 중순 수도 테헤란에서 가족과 함께 여행 중이던 쿠르디스탄 지역의 22살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풍기단속 경찰에 연행된 뒤 의식불명 상태가 됐다가 사흘만에 숨진 뒤 시작된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가 40여일째 이어지면서 수만명이 체포되고 5백명에 가까운 시위 참가자들이 군경의 진압과정에서 숨졌다.
시위 참가자와 희생자들의 다수가 10~30대의 젊은이들이며, 여성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당국은 그러나 이번 사면에서 이중 국적자와 사형수, 범죄사실을 인정하지 않거나 뉘우치지 않는 사람, 외국 공작기관에 대한 협력자, 정부건물 방화자, 이슬람공화국에 적대적인 그룹과 손잡은 사람 등은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밝혔다. 말하자면 이른바 ‘개전의 정’을 보이는 이들만 내보내겠다는 얘기다. 이는 그 동안 반정부 시위가 이란에 적대적인 외국이나 ‘반혁명세력’의 프로파간다에 넘어갔거나 그들의 선전에 세뇌당한 일부 사람들이 일으킨 것이라면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이란정부의 기본자세에 변화가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수많은 사상자를 낸 전례없는 대규모 시위로 흔들린 민심을 근본적인 개혁 없이 이런 조건부 사면으로 되돌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시위는 최근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으나, 전례없는 체제 정통성 및 정치 위기를 겪고 있는 이란정부가 이를 타개하기 위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라도 대규모 시위가 재개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날 사면방침 결정 발표는 정부에 비판적인 두 개혁파 정치인들이 이란정부가 정치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고 경고한 뒤에 나온 것이다.
개혁파 하타미, 무사비 근본개혁 요구
1997~2005년 대통령을 지낸 모하마드 하타미는 이란혁명 44주년에 맞춰 발표한 성명에서 이란 정부의 정치구조 개혁 작업이 한계에 봉착했다면서, 정치범 석방과 언론 자유, 정치와 군사 분리, 사법 개혁을 촉구했다.
이에 앞서 지난 3일 좀 더 급진적인 개혁파 정치인 미르호세인 무사비는 헌법 개정과 국민투표, 제헌의회 구성을 요구했다. 1981~89년에 국무총리를 지냈고 2009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던 무사비는 야권세력을 끌어모아 ‘녹색운동’을 일으켜 당시 대통령이던 보수파 아흐마디네자드의 대항마가 됐으나 패배해 2011년부터 지금까지 가택연금 상태에 놓여 있다.
무사비는 “이란과 이란인들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반정부 시위의 구호인 “여성, 생명, 자유”가 “밝은 미래의 씨앗, 빈곤, 굴욕, 차별로부터 자유롭게 해 줄 해방의 씨앗”이 될 것이라며 개혁의 핵심가치로 삼겠다는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