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교류위원회’가 풀어야 할 두 개의 리스크

K-컬처 위협하는 표준계약서·방시혁 리스크

창작자 배제된 민관 거버넌스로는 해결 난망

2025-10-13     김성수 문화평론가
김성수 문화평론가 

지난 10월 1일, 이재명 정부의 K콘텐츠 관련 정책을 현장과 밀착해서 실행할 <대중문화교류위원회>(이하 <위원회>)가 출범식을 가지며 그 첫발을 내디뎠다.

<대중문화교류위원회> 설립 의도는 ‘민간이 이끌고 행정이 지원하라’

“대중문화교류 정책의 국가적 비전을 수립하고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지속적인 확산을 통해서 문화강국을 구현하기 위한 목적을 수행”하려면 민간사업가들과 창작자들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민관이 함께 주체가 되는 거버넌스 방식의 운영이 필수라는 이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은, 20년이 넘게 정부의 기득권에 막혀 있었다. 정부는 거버넌스 대신 현장의 소리들을 선별적으로 반영하는 시스템을 고집했고, 심지어 산업과 창작을 구분해서 산업은 관리와 규제를, 창작은 지원과 보조를 하겠다는 이분법적 대응을 최근까지도 고집해 왔다. ‘진흥원’이라는 이름의 기관들은 이 무도한 고집의 산물이다. 문화예술진흥원은 2005년에 그나마 민간위원회로 바뀌었지만, 관이 위원회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오히려 실행력이 담보되지 않은 무력한 기구가 되는 것을 방치하거나 위원들의 선임을 정권의 입맛에 맞춰주며 ‘효율적’으로 관리했다.

이런 악순환을 깨기 위해 이재명 대통령은 <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로 격상시켰고, 민간위원들과 함께 문체부, 기재부, 과기부, 외교부, 법무부, 행안부, 농식품부, 산업부, 복지부, 중기부 등 10개 부서의 차관들과 대통령실 사회수석이 당연직 정부위원으로 참여하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많은 차관급 인사들이 한꺼번에 참여한 민관협력 자문위원회는 여태 존재한 적 없었다.

게다가 이재명 대통령은 민간위원들을 공동위원장 외 37명까지 둘 수 있게 배려함으로 민간위원들이 논의를 주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정부와 대통령실의 강력한 행정력을 민간에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 설계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민간위원들의 말을 경청하고 행정적으로 지원하라!” 이런 획기적인 실험을 국가 차원에서 도입한 것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진행된 적이 없기에, 만약 제대로 성과를 낸다면 새로운 거버넌스의 주목할만한 성공사례가 될 것이다.

실제는 콘텐츠 대기업 대표들이 민간위원 자리 독식

문제는 성과와 실행을 중심으로 위원장과 위원을 선임하다 보니 콘텐츠 대기업들의 대표들이 민간위원의 자리를 독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콘텐츠 업계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 중 하나가 과도한 독점에 의한 다양성의 말살인데, 민관 거버넌스 영역에서도 다양성이 실종되고 창작자들의 목소리가 독과점 회사의 대표들을 통해서 전달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대중문화교류위원회 위원 명단

물론 정부는 <위원회>와 함께 문화예술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충실히 담아내기 위한 견제 장치로 문체부 장관 직속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회를 새롭게 구성해서 운영함으로써 이런 문제들을 보완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회는 연극·뮤지컬, 클래식·국악·무용, 문학, 미술, 대중음악, 영화·영상, 게임, 웹툰·애니메이션, 출판·웹소설 등의 총 9개 분야에서 업계, 협회, 학계 전문가 약 90명으로 구성하고, 10월 중에 추천을 받아 위촉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통령실 직속 위원회, 그것도 문체부 장관이 당연직 위원장이고 차관급 정부위원만 11명이 배치된 강력한 집행체를 문체부 산하 민간자문위원회가 견제할 수 있을 것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정책에 관한 연구 사업이나 모니터링, 평가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 자문위원회가 제구실을 할 기구가 되길 원했다면 창립 순서부터 바뀌었어야 했다.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먼저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여기서 추천을 받아 민간위원을 임명하는 구조로 설계되었다면 자문위원회에 그나마 힘이 실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순서와 원칙만을 따질 때는 아니다. 대통령이 정부조직법이 완성되기도 전에 이 강력한 <위원회>를 만들고 직접 출범식까지 챙기는 것은 지금이 K-콘텐츠 산업의 중요한 분수령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대중문화사업 전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은 리더이자 적극적인 뉴미디어 콘텐츠 소비자이기도 한 대통령은,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꿈결 같은 성과들이 한여름 밤의 꿈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현장은 창작자들의 살인적 노동시간과 불합리한 계약

대다수 창작자들은 살인적인 노동시간에 시달리고 있고, 불합리한 계약의 피해자 신세다. 빛나는 아이디어는 너무도 손쉽게 도둑맞고 있는데 자본은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지 않는다. 막대한 부를 독점한 자들은 심지어 ‘창작자 없는 콘텐츠 산업’을 꿈꾸기까지 하는 상황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시급히 상식과 기본을 바로 세우고 과정과 기회를 공정하게 다듬어야만 한다. 실패해도 계속해서 도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다양하게 만들어 창작자들이 불쏘시개로 끝나는 일을 막아 내고 동시에 시장도 확장하고 유통도 정비하고 생태계까지 재생시켜야 한다. 물론 구체적 성과는 기본이다. 이 모든 일을 임기 내에 해 내야만 하는 것이다.

<위원회>의 성공을 위해 반드시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두 가지 리스크가 있다. 그 첫 번째는 표준계약서 리스크다. 지금 콘텐츠 산업 전반에는 잘못된 계약에 의한 피해자들이 너무 많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된 표준계약서라는 대안은 오히려 합법적으로 창작자들을 옭아매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모든 엔터 사업은, 창작자들과 그들이 만들었거나 만들어 낼 콘텐츠들을 팔아서 투자를 받고 매출을 올리는 사업인데, 투자금과 매출을 관리하는 주체는 회사나 플랫폼이다. 이들이 돈에 대한 모든 결정권을 갖고 있으니 계약에 있어 무조건 갑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에서 부당한 계약을 강요당하는 창작자들은 아무리 많은 성공사례를 만들더라도 사장될 수밖에 없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뉴진스다.

회사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K-POP 아이돌들의 계약서

혹자는 그보다 더 끔찍한 계약을 강요당하고 있는 웹툰 작가들이나 방송콘텐츠 작가들도 부지기수인데 왜 뉴진스를 사례로 삼느냐고 비난한다. 하지만, 뉴진스조차도 보호받을 수 없는데 누가 보호받을 수 있는가를 오히려 되묻고 싶다. 뉴진스 프로젝트가 아니라면, 런칭한 걸그룹마다 모조리 말아먹다시피 한 회사에 200억 넘는 투자금을 쾌척할 자본가는 없다. 그 막대한 투자금도 1년 반 만에 모두 회수해내고 2년 차에 바로 흑자로 돌아서게 한 주체 역시 창작자들인 뉴진스 멤버들과 그들의 팀이다. 이들이 갑자기 감사를 받고, 대표 자리를 빼앗기고, 협업해 온 아티스트들과의 관계까지 단절 당하는 일을 감수해야 한다면 그것은 계약이 아니다. 이는 명백한 갑질이다. 부부 사이라도 법원까지 가면 신의가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된 것으로 보는 것이 상식인데, 아직도 법원은 조정이란 이름으로 뉴진스 멤버들이 회사로 복귀할 것을 타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뉴진스는 10월 30일 계약해지무효 소송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K-POP 아이돌들에게 제시되고 있는 표준전속계약서는, 2009년에 기초한 낡은 얼개를 부분적으로 보완을 하며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7년이란 유달리 긴 계약기간을 비롯해서 회사 측이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 조항들이 추상적으로 기재되어 있는 반면, 창작자들의 의무 조항은 부속합의서 등을 통해 얼마든지 촘촘히 규제할 수 있는 문서다.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서로 동등한 위치일 수 없는 회사와 창작자를, 동등한 상태에서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의해서 계약이 성사되는 것을 전제로 작성되기에 막대한 자본과 인적 네트워크를 가진 회사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2018년 민주당은 이런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지만, 오히려 부속합의서를 선택적으로 두게 하는 일종의 개악을 허락하고 말았다. 24년 개정된 웹툰업계의 표준계약서도 작가 노조의 주장이 많이 받아들여졌지만, 현장에서는 본질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무력한 계약서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역시 마찬가지 이유 때문이다. 언제든 계약서를 들이밀며 법률팀과 대형 로펌까지 동원하는 회사에 개인들이 어떻게 승리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시스템을 놔두고 한국식 코첼라 축제가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

K-콘텐츠 산업 전반을 고사시키는 방시혁 리스크

두 번째로 해결해야 할 리스크는 한마디로 ‘방시혁 리스크’라고 불리는 주식 부정거래 리스크이다. 한국 엔터 회사들, 특히 게임회사들과 관련된 심각한 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중독성 질병은 결국 창작을 통해서 돈을 버는 방법을 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K-콘텐츠 산업 전반을 고사시키는 가장 심각한 리스크 중 하나다.

이미 2007년 팬텀엔터테인먼트의 우회 상장을 통한 시장 교란 행위는, 결국에는 철퇴를 맞긴 했지만 180억의 차익을 남기는 신박한 돈벌이 기술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주식 시장의 큰손들은 엔터 회사의 상장을 통한 대박을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이런 흐름은 게임회사 등 콘텐츠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였고, 지금은 엔터 회사의 상장이나 인수·합병을 둘러싼 작전세력의 존재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다. <위원회> 공동위원장이 대주주인 JYP엔터 역시 2013년 전환사채까지 동원한 제이튠엔터와의 합병이란 신기술로 잭폿을 터뜨린 바 있기에 그 유혹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하기 어렵다.

게다가 금융당국의 고발로 경찰이 수사하고 있는 방시혁의 기술은 이런 과거의 기술들을 고도화해서 합법적으로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상장하지 않겠다고 기존의 주주들을 속여서 본인의 펀드와 다름없는 사모펀드에 헐값에 주식을 매각하게 한 뒤 상장을 시행, 1조 2000억의 차익을 남긴 사기성 부당거래 혐의이다. 이런 행위는 첫째, 보호 예수 기간 중 편법적인 대주주 지분 대량 매도를 진행하여 상장에 참여한 주주들에게 엄청난 손해를 끼친 범죄이며, 둘째, 기존 주주들에게는 “상장을 하지 않는다”는 허위정보를 제공하여 주식을 펀드에 매도하게 해 이득을 극대화한 범죄다. 이와 관련 스톡 옵션을 가진 창업 초기 임직원들의 주식을 빼앗기 위해 부당 해고도 진행했다는 의혹과 본인이 사모펀드 등과 주식 매각 수익의 30%를 받기로 한 계약을 공시하지 않은 의혹도, 사실이라면 역시 범죄적 행위다.

엔터 회사가 아이돌 육성 보다 주식 부정거래에 열중하는 풍토

참고로 하이브의 연간 매출이 2조 2000억 수준인데, 하이브 소속 모든 아티스트들이 벌어들인 총액일 뿐이고 순수익은 1000억대 안팎이다. 사기성 주식거래로 거둔 4000억의 매출(?)은 세금 제외하고 순수익만 1900억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쉽게 엄청난 이득을 챙길 수 있으면 회사와 오너는 과연 아이돌 육성에 힘을 쏟게 될까?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내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범죄를 제대로 응징하지 않으면 다른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상장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해서 주식시장에서의 자금 조달을 어렵게 만들 뿐 아니라, 한국의 자본 시장 전반의 신뢰도를 떨어뜨려 투자를 위축시키게 된다. 대통령이 “주식으로 장난치면 패가망신하게 만들겠다”라는 대국민 선언을 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해당 피의자가 의장으로 있는 기업 대표가 대중문화교류위원회 민간위원으로 위촉되었다는 사실은 글로벌 시장에, 또 국민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을까? 게다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굿즈 콜라보를 한다면서 여론몰이를 하는 상황까지 겹치니 시장의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모순적 상황은 사상 유례없는 강력한 기구까지 출범시킨 이재명 대통령의 노력까지 폄하하게 만드는 딜레마인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유홍준 관장과 방시혁. 굿즈 제작 콜라보 발표 후 비판이 쏟아지자 이 사진은 사라졌다.

<위원회>는 콘텐츠 관련 대기업들의 대관 업무를 효율화시키는 기구로 활용되어선 안 된다. 그런 시도조차 용납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 지금 당장 이 두 가지 리스크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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