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당 연정 이탈, 위태로워진 다카이치 집권

야당이 연합하면 정권교체도 가능해진 상황

자민당 후보 승산 크지만 예단 불허 일본정국

공명당 이탈, 장기적으로 자민당에 치명타

안개 정국으로 주가·국채·엔 ‘트리플 약세’ 우려

2025-10-11     한승동 에디터
일본 집권 자민당의 신임 총재 다카이치 사나에가 10일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공명당 대표 사이토 데쓰오와 회동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명당은 26년간의 협력 관계를 끝내고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했다.2025.10.10. EPA 연합뉴스

자민당과 함께 연립정권을 꾸려 온 일본 공명당이 10일 연정에서 이탈하기로 결정함으로써 15일로 예정된 임시국회 총리선출 선거에서 제1당인 자민당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재가 차기 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수도 있는 이변이 일어났다.

공명당, 자민당과의 연립 이탈 통보

공명당의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이날 다카이치 자민당 총재와의 당수회담에서 연립정권에서 이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회담 뒤 다카이치 총재는 사이토 대표로부터 “일방적으로 연립정권에서 이탈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로써 1999년 10월 오부치 게이조 정권 때 자민당과 자유당 및 공명당이 연립정권을 구성한 이후 지금까지 유지돼 온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립이 26년만에 무너졌다.

'남묘호렌게교'를 외는 일본 불교의 한 분파인 일련정종 평신도 단체인 창가학회의 정치조직인 공명당의 이탈은 자민당에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국회의원선거에서 창가학회의 지역조직들이 자민당 쪽을 지원하지 않을 경우 자민당 의원 20% 이상이 낙선할 것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응집력이 높은 종교조직를 기반으로 한 공명당과의 연립은 1990년대 초 동서냉전 붕괴와 함께 일본의 보수합동체제(1955년 체제)가 무너진 뒤에도 자민당이 장기집권을 할 수 있게 해 준 중요한 요소였다.

사이토 공명당 대표는 회담에서 최근 연립정권의 연이은 선거패배의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된 자민당의 불법적인 정치자금 조성 근절대책과 기업 및 단체의 헌금에 대한 규제강화를 요구하고, 다카이치 총재가 견지해 온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배외주의적인 재일 외국인 정책에 우려를 표명했으나 만족할 만한 답변을 듣지 못하자 연립 이탈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여당인 자민당(LDP)의 새 총재 다카이치 사나에(오른쪽)와 공명당 대표인 사이토 데쓰오가 10일 도쿄 의회에서 만나 연정 구성 등의 문제를 논의했다. 사이토 대표는 이 자리에서 연정에서 이탈하겠다는 뜻을 다카이치 총재에게 통보했다.2025.10.10.. 교도 AP 연합뉴스

주요 야당들 연합하면 정권교체도 가능

이에 따라 공명당과 연립해도 중의원과 참의원 양원 모두 과반의석 미달인 자민당이 15일의 총리선거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양원 중 총리지명 선거에서 우선권이 있는 중의원의 경우 자민당은 현재 196석으로 과반수인 233석에서 37석이 모자라며, 24석인 공명당과 합쳐도 13석이 모자란다.

공명당이 연립에서 이탈하고 주요 야당들이 연합할 경우 의석수가 자민당보다 많아져, 지금의 야당들이 구성하는 연립정권이 탄생하고 자민당이 야당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예컨대 자민당보다 48석이 적은 148석을 지닌 제2당 입헌민주당이 35석인 일본유신회와 27석인 국민민주당과 손을 잡을 경우 210석으로 자민당보다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하게 된다. 여기에 공명당이 가세하거나 다른 야당들, 예컨대 9석인 ‘레이와 신센구미’와 8석인 일본공산당, 3석인 개혁회, 6석의 무소속이 합칠 경우 과반의석을 넘기게 되고 차기 총리를 야당 대표 중의 한 사람으로 옹립할 수 있다. 오래가진 못했지만 1993년 자민당 정권 붕괴 뒤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의 7개 야당 연합정권이 수립된 드문 선례도 있다.

최악의 경우 자민당은 무라야마 도미이치(사회당) 정권(1994년 6월~1996년 1월) 때처럼 야당 대표를 전면에 세워 총리로 앉히고 배후에서 실권을 장악하는 형태로 사실상의 집권 연장을 꾀할 수도 있다.

결국 자민당 후보가 이기겠지만 예단 불허

이처럼 단순계산상으로는 야당으로의 정권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서 그렇게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우익 성향의 일본유신회나 국민민주당이 리버럴 중도좌파인 입헌민주당과 손잡고 정권교체에 나설 가능성은 현재로선 거의 무망해 보인다. 아즈미 준 입헌민주당 간사장이 국민민주당을 향해 “다마키 유이치로 (국민민주당) 대표를 (야당 단일 후보로) 내세우면 우리로서도 유력 후보가 될 수 있다고 본다”는 말을 했지만, 입헌민주당과 사이가 좋지 않은 국민민주당은 그 말을 다른 계산을 깔고 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불쾌감을 토로했다고 한다.

15일 선거에서 과반수 의석 확보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1, 2위 득표자를 놓고 결선투표를 해야 하며, 그때는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더라도 다수 득표자가 총리가 된다. 자민당을 뺀 야당들이 단합해 정권을 교체하기로 합의한다면 불가능하진 않으나, 여러 사정으로 보건대 196석을 지닌 자민당 쪽 후보(다카이치)가 다수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보는 게 더 현실적이다.

하지만 공명당이 자민당과의 연립에서 이탈하기로 결정한 데에는 공명당 자체 사정도 있지만, 공명당에게 연립 이탈을 선택하게 만든 최근의 일본사회의 변화, 특히 자민당에 대한 민심이반이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일본정치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예단할 수 없게 하는 면이 있다.

 

일본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가 10일 도쿄 국회에서 일본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신임 총재 다카이치 사나에와 회동한 뒤 기자들에게 얘기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사이토 대표는 공명당이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이탈하겠다는 뜻을 통보했다. 2025.10.10. 교도 AP 연합뉴스

공명당이 연립 이탈 결정을 내린 이유

공명당은 지난해 10월의 중의원선거, 올해 6월의 도쿄도 의회선거, 7월의 참의원선거에서 자민당과 함께 연전연패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공명당은 연립정권 연패의 결정적 원인이 아베 정권 시절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불법 정치자금 조성과 자민당의 무대책에 있다고 보고, 자민당이 확실한 근절책을 제시하지 않는 한 연정에 계속 참여해선 안 된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참의원선거 뒤 공명당은 총평가에서 당이 “존망의 위기”에 처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자민당에 확실한 대책을 요구했다. 그러나 자민당은 바뀌지 않았다.

다카이치는 이번 총재선거 승리에 결정적인 공을 세운 아베의 정치적 동맹자 아소 다로 전 총리를 부총재 자리에 앉히고, 예전 아베파 간부로 불법 정치자금 조성에 직접 관여했던 하기우다 고이치 전 문부과학상·경제산업상을 자민당 간사장에 기용하는 등의 논공행상 인사로 공명당의 화를 돋우었다.

게다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고집하면서 외국인에 대해 배외주의적인 발언을 해 온 다카이치 자민당 총재의 극우 성향 노선에도 공명당은 거부감을 보여 왔다.

사이토 공명당 대표는 다카이치와의 회담 뒤 “(자민당의) 개혁이 실현 불가능하다면 총리 지명에서 도저히 다카이치라고 (투표지에) 써 넣을 수 없다. 공명당 대표인 사이토 데쓰오(자신)에게 표를 던지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까지 수십년 자민당과 연립해 온 마당에 자민당에 적대할 수는 없다며 예산안이나 법률, 정책 등에서 찬성해야 할 것은 찬성하겠다고도 했다. 한마디로 총리 지명 선거에서 다카이치에게 표를 줄 순 없지만 정책협조는 할 수 있다는 얘기기다. 2차 결선투표에서도 공명당 의원들이 상위 1, 2위 득표자가 아닌 사이토 대표 이름을 써 넣으면 무효표 처리가 된다.

더욱 불안정해질 자민당의 앞날

하지만 그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이고, 공명당의 연정 이탈이 장기적으로 자민당에게 가할 타격의 정도를 생각하면, 설사 다카이치가 2차 결선투표에서 다수표를 얻어 총리가 된다 하더라도, 또 다른 연립정권 또는 야당들과의 정책협조를 통해 정권을 이어갈 자민당의 앞날이 순탄할 것 같지 않다.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일본 주식, 국채, 엔이 모두 약세화하는 ‘트리플 약세’를 경계하는 소리들이 커가고 있다고 <일본경제신문>(10월 11일)은 썼다. 다카이치가 자신이 모델로 삼아 온 마거릿 대처가 되고 싶어하겠지만 취임 45일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난 리즈 트러스가 될 수도 있다는 해외 투자자들의 얘기를 실은 것도 이 신문이다.

자민당의 새 총재에 극우 성향의 다카이치가 선출되자 공명당이 떨어져 나갈 것이라며, “자민당의 붕괴를 재촉할 뿐”이라고 했던 제럴드 커티스 컬럼비아대 교수의 얘기가 더 그럴듯하게 들리는 형국이 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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