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 놔둔 채 대법관 증원은 안 된다

대법관추천위부터 철저하게 개혁돼야

2025-10-05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역시 사법개혁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연일 사법 기득권의 저항이 이어지고 있고, 국힘과 보수 언론들은 매일같이 ‘삼권분립 훼손’이니 ‘위헌’을 내세우며 선동하고 있다. 본래 장기간 누적된 모순들이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는 없다. 엉킨 실타래를 급하게 풀려고 하면 오히려 더욱 엉키는 법이다.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잡아내고, 구체적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모습. 2025.6.5. 연합뉴스

‘제왕적 대법원장’의 자문 기구에 지나지 않는 현 대법관추천위

현재 사법개혁은 거의 대법관 증원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대법관 증원은 반드시 이뤄져야 할 과제다. 하지만 이 대법관 증원은 새로운 사법시스템 하에서 이뤄져야 한다. 만약 대법관 증원이 현재의 시스템에서 이뤄진다면, 조희대 대법원장의 입맛에 맞는 대법관이 충원될 뿐이다. 사법개혁은커녕 조희대 천하가 더욱 강화될 것이다.

현재 대법관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대법관 추천위원 중 3명이 현직 법관이고, 대법원장이 별도로 변호사 자격이 없는 3명을 위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대법관추천위원은 1. 선임대법관, 2. 법원행정처장, 3. 법무부장관, 4. 대한변호사협회장, 5. 사단법인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6. 사단법인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7. 대법관이 아닌 법관 1명, 8. 학식과 덕망이 있고 각계 전문 분야에서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서 변호사 자격을 가지지 아니한 사람 3명(1명 이상은 여성)으로 대법원장이 위촉, 임명한다(법원조직법 제41조의2 제2항). 결국 현재의 대법관추천위원회는 대법원장 1인의 의사가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이다.

그러므로 대법원장이 관여할 수 있는 여지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민간위원과 각 법률가 직역으로부터 대표성을 확보한 위원들의 참여가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프랑스의 사법위원회가 15명의 위원 중 비법관 위원이 8명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법관의 참여는 최소한 단기적으로라도 통제될 필요가 있다. 이제까지 우리나라 법관의 인사는 법관에 의해 철저하게 독점됨으로써 관료주의적 성격을 전혀 탈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회가 대법관추천위원회에 반드시 관여해야 한다

특기할 점은 현재 국회가 이 대법관추천위원회에 전혀 관여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사실이다. 민의의 대표기관으로서 민주성과 대표성을 지닌 국회의 관여가 불가능한 사실 그 자체에서 대법관추천위원회가 이미 민주적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결정적 하자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국회가 관여할 수 있어야 비로소 민주적 제도일 수 있다. 그리하여 국회가 시민사회로부터 추천을 받거나 그들과 협의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쳐 대법관추천위원의 위원을 추천하는 방식이 반드시 실행되어야만 한다.

한편, 대법관추천위원회의 회의 및 추천 절차와 관련하여 또 다른 큰 문제점은 모든 것이 비공개로 이루어진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비공개제도는 추천위원회의 존재 자체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으로서 대법원의 민주성뿐 아니라 그 책무성 또한 위태롭게 만드는 악법 중의 악법이다. 당연히 관련 회의와 추천 절차를 모두 공개돼야 한다. 비공개의 가능성 자체를 없애 버릴 때 민주주의에 부합되는 대법관후보추천의 절차가 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도 추천위원회의 구성이 각계의 대표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는 만큼 이들이 회의에 앞서 혹은 표결에 임하기 전에 자신의 소속 집단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적 및 제도적인 가능성을 충분히 제공해야 할 것이다.

특히 현재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규칙 제2조에 의해 이 추천위원회는 단지 “대법원장의 자문에 응하여” 후보자를 추천하는 역할로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현재의 대법관추천위원회는 고작 실질적 임명권자인 대법원장에 대한 자문기관으로서의 기능으로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대법관추천위원회는 피추천인에 대한 조사나 분석은 물론 제출된 자료에 대한 진위의 판단이나 그 평가에 필요한 정보를 확보할 수도 없는 기구에 지나지 않았다. 당연히 이 규칙 제2조의 ‘자문의 역할’은 삭제되어야 하며, 반드시 독자적으로 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대법관추천위원회는 지금처럼 단 한 차례의 회의로 끝낼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의 회의 과정을 통해 각계의 의견을 충분하게 수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의 대법관임명 시스템이 짧게는 몇 달, 길게는 1년 넘게 이루어지는 것은 대법관이라는 최고 국가사법기관의 구성원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합의를 충분히 도출함으로써 그 법판단의 권위를 확보하는 한편 사법기관의 운영이 보다 민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모하고자 하는 데에 그 까닭이 있다.

개혁에는 어려운 과정이 따른다. 우리 사회에 장기간 뿌리박고 힘을 확장해온 기득권 세력은 순순히 청산되지 않는다. 윤석열 내란을 물리친 국민들의 힘을 집결시켜 이번 기회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뤄내야만 한다. 민주주의로 가는 이 장엄한 도정에서 사법개혁이야말로 핵심적인 과제이다. 정확한 문제 인식과 해결방안의 구사로써 반드시 사법개혁을 완성하는 일은 시대가 우리에게 부여한 엄숙한 책무다.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