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한 미국…커크 암살이 건드린 '공안정국' 뇌관

사건을 좌파 책임으로 몰아가는 트럼프 정부

미국 사회 만연한 정치폭력 대다수는 우파의 범죄

그럼에도 마녀사냥식 공안정국으로 달려가는 미국

지금은 폭력의 악순환이 촉발될까 두려운 시간

“자기에게 총 쏘는 나라가 존속할 수 있을까?”

2025-09-25     김평호 저술가·전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김평호 저술가·전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지난 10일 C. 커크라는 우파 운동가가 암살당했다. 21일에는(한국시각 22일 새벽) 트럼프 대통령, 밴스 부통령을 포함한 정부 각료들, 그리고 수만 명의 추모객이 참석한 거대한 장례식이 치러졌다. 이날 S. 밀러 백악관 국내정책 담당 부실장은 추모사를 통해, 이번 사건을 포함해 향후 트럼프 정부의 대테러 정책 기조를 이렇게 말했다. "커크를 죽인 악마의 무리를 우리는 분노의 불길로 쳐부술 것이며, 폭풍의 전사가 되어 한 줌도 되지 않는 적들을 물리치고 승리할 것이다." 커크의 암살에 응징과 복수를 다짐하는 섬뜩한 발언이다.

암살 후 터져 나온 섬뜩한 발언들 — 공안정국 예고

 

사진 1. 커크의 암살을 좌파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백악관의 발언들(위 9/15일 뉴욕타임스 “백악관, 진보성향 단체들 강력 단속 예정”; 중간 9/16일 NBC “커크의 복수를 다짐하는 밀러 백악관 정책 부실장”; 아래 같은 날 ABC “좌익 극단주의가 커크의 죽음을 불러왔다고 말하는 밴스 부통령”).

트럼프 대통령은 사건이 터지자마자, 아직 알려진 것이 전혀 없음에도, ‘급진좌파’를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감옥에 잡아넣겠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부통령 밴스 역시, “최근 몇 년 사이 좌익 극단주의 조직이 성장하고 있다”면서 “그들이 커크 암살 사건에 책임이 있다”고 비난했다. 밀러 부실장은 “법무부, 국토안보부 등을 중심으로 우리 정부는 가용한 자원을 총동원,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국내 테러의 큰 부분(a vast domestic terror movement)’을 차지하는 이들 조직을 수색, 해체, 파괴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확실한 증거도 없이 테러의 좌파 책임론을 내세우는 매카시즘적 공안몰이를 예감케 한다.

미국 사회에 만연한 정치테러

암살은 용납될 수 없는 테러다. 그런데 그것이 민주주의 모범국가라는 미국 정치사의 한 부분이다. 건국 이래 250여 년, 그 사이 네 명의 대통령(링컨, 가필드, 맥킨리, 그리고 케네디)이 암살로 운명을 달리했다. 암살 기도도 적지 않았다. 루스벨트, 트루먼, 레이건, 그리고 기억도 생생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지난해 두 차례에 걸친 암살 미수 사건이 벌어졌다. 또 60년대 민권 운동가 말콤 엑스(1965), 마틴 루터 킹 목사(1968), 대선후보 로버트 케네디(1968) 등 잇단 암살은 다른 무엇보다 미국사에 큰 오점을 남긴 참혹한 테러의 기록이다.

 

사진 2. 왼쪽 커크 암살범 T. 로빈슨. 오른쪽. 사건 현장의 커크 추모 물품들(사진 로이터).

관련 자료나 연구보고에 따르면 미국 내 정치테러의 빈도는 최근 더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국제전략연구소(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약칭 CSIS)에 의하면, 1995-2016년 20여 년 사이 정치적 신념, 지지 정당의 차이로 벌어진 정부 인사, 정치인, 출마자, 당원, 그리고 당사 등에 대한 테러공격(음모 포함) 횟수는 단 두 차례였다. 그런데 2016~2024년, 약 10여 년 사이에 무려 21건으로 늘었다. 테러가 연례행사가 돼버린 것이다.

올해의 굵직한 사건들만 추려도, 뉴멕시코주 공화당사 방화(3월), 펜실베니아 주지사와 가족이 잠든 시간에 벌어진 지사 관저 방화(4월), 미네소타 민주당 주의회 하원의원 부부(사망), 상원의원 부부(부상)에 대한 공격이 같은 날, 같은 범인에 의해 저질러졌고(6월), 텍사스 이민국 요원 피격(7월), 질병예방 관리센터 본부 건물 총격 사태(8월) 등 등. 이번 커크의 암살은 이처럼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는 정치테러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범인 대다수는 우파, 원인은 중층적

 

사진 3. 테러범(들)의 이념성향(좌, 우, 이슬람, 기타) 기준으로 정리한 통계 그래프(출처: 이코노미스트 9월 10일). 1990년부터 2025년까지, 35년간의 자료. 그래프 왼쪽 아래에 표시된 The Prosecution Project(약칭 tPP)는 통계자료의 원출처로 약 250여 명의 조사전문가가 참여하는 테러 사건 관련 개방형 데이터 센터임.

그렇다면 테러는 누가 왜 저지르는가? 사진 3의 그래프에 첫 번째 답이 있다. 그래프는 1990년부터 올해까지 테러범(들)의 이념성향을 기준으로 통계를 뽑은 것이다. 이념성향을 특정할 수 없는 경우와 이슬람을 제외하고, 법정에서 중범죄(felony) 유죄판결을 받은 테러 사건의 절대다수는 우파에 의한—그래프에 붉은색으로 표시. 검은색은 좌파—범죄다. 이는 다른 많은 연구단체와 전문가들은 물론, 트럼프 법무부까지도 공통으로 인정하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증가하는 정치테러의 원인으로 ①지지자들의 극단적 양극화, 2. 상대 정당을 사회 파괴적 존재로 간주하는 적개심,  ②이를 부추기는 정치인들의 선동적, 자극적 발언, ③상대에 대한 분노와 정치음모론을 증폭·전파하는 소셜 미디어, ④정치적 목표달성을 위한 테러를 용인하는 태도의 증가(예: 시카고 대학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유권자 중 15%(민주당 지지자 중 10%, 무당파 중 15%, 공화당 지지자 중 19%) 정도의 미국민이 이에 동의) 등을 들고 있다. 정치인, 정당은 물론, 유권자들까지도 폭력성을 이미 내장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외에도 총기 탈규제로 인한 무기의 범람, 경제적 불안정 같은 사회·심리적 분위기도 테러가 늘어나는 큰 요인으로 꼽았다. 또 인구사회학적 변동(예: 백인의 소수집단화. 18세 이하 세대에서 백인은 이미 소수 집단)에 대한 불안 또는 불만이 백인인종주의자가 테러를 벌이는 주요 배경 중 하나라고 지적하고 있다.

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 없이 공안정국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요약하면, 미국 사회에 테러는 만연해 있고, 범죄자의 다수는 우파이며, 원인은 매우 중층적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극우와 정치폭력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그에 기초한 대안을 수립하는 것이다. 정치의 양극화(공화당과 민주당, 그리고 양당 지지층 간의 적대성) 문제, 소셜 미디어의 역기능, 사회안전망 강화, 총기 규제 역시 짚어야 할 과제다. 또 미국의 원죄라고까지 불리는 뿌리 깊은 인종주의도 정부와 정치권이 직시해야 할 문제다. 사실과 상식에 부합하는 제안이다.

 

사진 4. 커크 암살 사태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은 대책의 하나(9월 18일, 소셜 미디어 포스팅).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이처럼 난삽한 테러 문제를 극도로 단순화한다. “애국 시민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나는 우리 사회에 재앙을 불러오는 위험하고 극단적인 좌익 안티파를 테러조직으로 선포합니다. 또 이들을 지원하는 자들도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방식을 동원, 철저하게 수사하겠습니다.”(사진 4 참조) 줄이면, 좌파가 미국 사회 정치폭력의 원인이다. 이들을 발본색원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간단명료하다.

대통령의 지침을 기초로 앞으로 실행방안이 나오고 집행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외면한 진단과 좌파를 겨냥한 강경책으로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그렇다면 정부가 내세우는 좌파 책임론은 실상 정치적 반대파와 시민사회를 겁박, 정부에 대한 비판·비난을 차단하려는 작업에 가깝다. 전형적 공안정국-마녀사냥이다. 놀라운 것은 침묵의 효과를 노린 사냥이 이미 약간의 성과를 거둔 듯하다는 점이다. 커크 암살 관련 발언을 빌미로, 워싱턴포스트에서, MSNBC에서 칼럼니스트와 진행자가 잘려나갔다. ABC TV는 프로그램과 진행자를 무기한 중단시켰다가 쏟아지는 비난 여론에 다시 복귀시켰다. 앞으로 트럼프 정부는 점찍어 놓은 조직과 지원단체를 손보는 것부터(부통령 밴스는 포드재단, G. 소로스의 오픈 소사이어티 재단 등을 거명한 바 있다) 상상 그 이상의 일을 벌일 것이다.

점점 더 무서워지는 우파들의 적나라한 발언들

두려운 것은 이런 조치가 폭력의 악순환을 촉발하지 않을까, 또 일부는 그런 상황을 오히려 유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점이다. "좌파들은 들어라, 또다시 총을 쏜다면 내전이다"(배우 J. 우드), "좌파는 살인집단(party of murder)"(E. 머스크), "좌파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자"(S. 배넌 트럼프 1기 정치전략 수석참모), "차제에 지지 정당에 맞춰 미국을 가르자(national divorce)"(M. 그린 공화당 하원의원) 등의 적나라한 발언들은, 극우 대중조직은 물론, 트럼프 정부, 공화당 정치권 등이 더 무서운 방도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 5. 위, ‘법무부, 국내 테러리즘 연구 관련 자료 홈페이지에서 삭제’(가디언 9월 17일 기사); 중간, 법무부가 자료를 삭제하면서 게시한 해명문. 아래, 법무부가 삭제한 해당 보고서 1쪽.

지난 13일에서 14일 사이—정확한 시점은 모름—미 법무부는 국내 테러리즘 관련 연구자료를 홈페이지에서 삭제했다(사진 5 참조).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맞춰 홈페이지를 정비 중”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자료는 ‘사법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Justice, 약칭 NIJ)의 국내 테러리즘 연구가 말해주는 것’이라는 제목의 2024년 6월 논문이다. 논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1990년 이래 지금까지 우익 극단주의자들이 벌인 정치적 살인사건은 총 227건에 희생자는 520명. 반면, 좌파 또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경우는 총 42건에 희생자는 78명.” 법무부가 자신의 산하기관이 발행한 논문을 삭제한 이유는 뻔하다. 좌파가 문제라는 백악관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폭력의 정치 속 퇴행 거듭하는 트럼프 미국

합법적일 뿐 국가는 근본적으로 폭력조직이다. 트럼프 정권처럼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조직은 최근 미국사에서 처음일 것이다. R. 페이프 교수는(시카고대학교 정치학과) 지난해 말 포린어페어즈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은 ‘폭력의 정치가 널리 대중화한(violent populism) 사회’라면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전면적 내전까지는 아닐지라도, 폭동(riots), 소수자에 대한 공격, 심지어 암살이 이어지는 격렬한 대립의 시대(era of intense deadly conflict)로 접어들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그의 음울한 예측을 입증하듯 25년 9월 10일, C. 커크라는 우파운동가가 총격으로 쓰러졌다.

반이민 광풍에 좌파의 테러책임론을 부추기는 신매카시즘까지, 지금 트럼프 미국은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동맹 갈취, 관세전쟁을 일삼으면서 외부로부터는 신뢰를 잃고 고립돼가고 있으며, 내부적으로는 폭력적 갈등과 반목을 조장하면서 스스로의 역량을 소진하고 있다. “자기에게 총을 쏘는 나라가 존속할 수는 없다.” 테러와 죽음을 이웃에서 목격한 한 시민의 울분에 찬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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