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연구 본업보다 공문처리에 바쁜 교사…언제까지

학교 당 공문 연간 1.3만 건…처리는 교사 몫

핀란드 교사 행정업무 비중 6%, 한국은 25%

식민·독재시대 국가·권위주의 교육행정의 유산

학습 연구·강의 설계 전념하게 행정업무 줄여야

유급 안식년, 유급 퇴직 준비기 요청 검토해야

2025-08-21     하성환 시민기자
20일 오전 경기 수원시 매산초등학교 3학년 1반 교실에서 개학을 맞은 선생님과 아이들이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2025.8.20. 연합뉴스

교육부 등에서 8월 18일에 공문을 내려보내고 8월 22일까지 보고하라고 하면 과연 교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문 보내고 당일 보고하라는 경우도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교사의 업무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참으로 헷갈리는 오늘의 교육 현실입니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가르칠 교수-학습자료를 연구하고 준비하는 직업인입니다. 좀 더 나아가면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 내면을 보살피는 상담자이기도 합니다.

 

핀란드는 자타가 공인하는 교육 선진국이다. 학교에 대한 행정감사와 장학활동이 없는 나라다. 그만큼 교사의 자율성을 극도로 존중한다. 공문 생산과 공문 보고로 상징되는 권위주의 교육행정과는 거리가 멀다. 핀란드 교육혁명 책 표지. (출처 : 살림터)

핀란드를 비롯해 북유럽 교육 선진국에서 교사는 가르치고 연구하는 본업에만 충실합니다. 핀란드는 교사가 1년에 처리하는 공문 건수가 5건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 거의 공문을 취급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학교당 1년에 1만 2000~1만3000건의 공문을 처리합니다. 학교가 가히 공문을 접수하고 생산하는 공장 같습니다. 2010년대나 2020년대나 공문 건수에서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학교마다 교사 정원이 다르지만 대략 한 학교당 50명 교사가 상근한다고 가정하면, 1년에 교사 1명이 200건이 넘는 공문을 처리하는 셈입니다. 가히 공문 폭탄이자 과도한 행정업무가 아닐 수 없습니다.

행정업무에 쏟는 시간이 핀란드 교사는 주당 1.3시간 정도로, 행정업무가 차지하는 비중은 교사 전체 업무 중 6% 수준입니다. 이는 교육 선진국답게 OECD 최저 수준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교사 1인당 행정업무에 쏟는 시간이 주당 6시간으로 전체 업무 가운데 25%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높습니다. 거꾸로 핀란드 교장이 행정업무를 수행하는 비율은 48%로 OECD 평균 41%보다 많은데, 우리나라 교장은 35%로 평균보다 낮습니다. 요컨대 핀란드와 한국은 평교사와 교장의 행정업무 부담이 정반대입니다. 실제로 핀란드 교사들은 전체 업무 시간의 80% 이상을 본업에만 전념하도록 교육환경이 정비돼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사는 1인 3역을 감당합니다. 수업 연구는 기본이고 틈나는 대로 상담을 시도합니다. 거기다 매일 쏟아지는 공문더미로 업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교육부-교육청(교육지원청)에서 매일 쏟아내는 공문을 읽기에도 벅찰 지경입니다. 제 경험상 지시 또는 보고 공문이 아닌 협조공문은 클릭한 뒤 대충 읽거나 지나쳤던 기억이 많습니다. 이게 대한민국 교사가 처한 근무 환경이자 열악한 노동 현실입니다.

학교당 전문상담사는 단 1명뿐이니 아이들 심리상태도 담임교사의 주된 업무 영역입니다. 물론 자신이 가르쳐야 할 교과목에 대한 교수-학습자료를 연구하고 준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상입니다. 1인 3역, 가히 초인에게 요구하는 수준입니다. 이 모든 게 식민지배 시절 일제가 남긴 국가주의 교육행정의 잔재이자, 해방 이후 독재 시절 권위주의 교육행정의 유산입니다. 잘못된 교육행정 관행을 청산하지 못한 채 무려 120년 넘게 우리 교육은 속으로 병들어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당시 훈장 수여를 거부한 사례 및 재수훈 여부를 검토하라는 'VIP' 지시 내용을 담은 공문(위 사진)과 사례 조사 엑셀 파일. (포상업무 담당교사 장** 선생님 제공)

실제로 교육지원청에서 8월 18일 자로 ‘정부포상 미동의 사례’를 보고하라는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윤석열 정권 시절, 윤석열이 주는 훈포장을 거부한 사례가 발단이었습니다. '빛의 혁명'으로 탄생한 이재명 국민주권 정부가 그 상처를 회복해 주려는 좋은 취지인 듯합니다. 실제로 7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정부 훈포장 거부 사례를 전수조사하고 재수훈 여부를 검토하라"고 지시한 취지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고할 내용을 살펴보면 이게 과연 교사가 할 업무인지 의아할 정도입니다. 교육 행정사를 증원하거나 교육청(또는 교육지원청) 인사 담당 관련 공무원을 증원해 처리할 행정업무를 학교 현장으로 내려보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관행처럼 교사를 말단 행정요원 정도로 생각한 국가주의(권위주의) 교육행정의 폐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일선 교사에게 엑셀 파일로 일일이 해당 항목을 조사하고 기록해 보고하도록 하는 것은 교육에 대한 몰이해이자 교육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망각한 교육행정입니다. 다시 말해 수직적인 위계질서 속에서 과거 관행처럼 해왔던 권위주의 교육행정일 뿐입니다. AI 등 지식 기술혁명으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대한민국의 교육행정은 핀란드처럼 교사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교육행정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 길이 국민이 주인인 국민 주권 정부다운 모습이고 교사를 교육의 주체로 존중하는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교육기본법 제2조(교육이념)에 교육의 목적을 민주시민을 육성하는 데에 있음을 명문화하고 있다. 하성환 시민기자

교사는 오로지 교수 학습 자료 수집과 연구, 그리고 강의 설계에 충실해야 합니다. 시민성을 갖춘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학생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지 그것을 고민하는 존재여야 합니다. 그것이 교육기본법 제2조에 명문화된 교육의 목적에 부합하는 교육 활동의 지향점이자 교사의 존재 이유입니다. 교육청(교육지원청)과 교육부는 그러한 교사의 교육 활동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 지원 기구로 머물러야 마땅합니다. 핀란드처럼 말이지요. 결코 위에서 지시하고 보고를 종용하는 권위주의 행정의 관행에 몸담을 일이 아닙니다.

교수 학습자료를 연구하고, 강의할 내용을 어떻게 설계할지 강의를 구상하는 것만으로도 교사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교육 행정 공무원들이 해야 할 행정업무조차 교사에게 보고하도록 지시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교육계 과거사 청산이 안 된 탓입니다.

이제 21세기 초중고 시민교육을 강화하고 미래 교육을 생각하는 이재명 국민주권 정부에선 달라져야 합니다. 교사는 오직 교수 학습자료를 연구하고 강의하는 본업에만 전념하도록 교육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미래 교육을 선도할 서울시 교육청이 취할 진보적인 교육행정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시민교육 강화를 요구하는 민원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 재직 때 새벽 4시 33분에 답장을 보낸 문자. (김원태 학교시민교육교원노동조합 집행위원장 제공)

이재명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성남시장 시절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놀랍습니다. 행정가로서 행정 수요의 주체인 시민들 작은 목소리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귀담아듣고자 한 까닭이랍니다. 바로 좋은 행정을 펼치려는 행정가다운 면모입니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주권 정부라면 현장 교사의 목소리를 듣고자 해야 합니다. 현장 교사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오랜 관행처럼 계속돼 온 훈포장이나 기념품이 아닙니다. 그런 형식보다 오랜 시간 학교 일상에 지치고 교육 활동으로 소진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기 위한 유급 안식년을 희망합니다. 퇴직을 앞둔 교사라면 군인이나 일반행정직 공무원처럼 1년 동안 유급 퇴직 준비기를 보장해 주는 걸 열망합니다.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으려는 이재명 정부인 만큼 진정으로 국민 주권 정부로 발돋움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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