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참사,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이 없다?
세월호·이태원·오송·제주항공 참사…언제나 그랬다
국민 분노 식고나면 시간끌기·증거인멸·관점흐리기
수사·기소권 가진 '대통령 직속' 특조위 구성하고
대통령기록물 등 모든 세월호 관련 정보 공개해야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세월호 진상규명을 약속했습니다. 지난 10년간 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 국가조사위원회인 특조위, 선조위, 사참위 조사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침몰 원인과 구조방기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책임자에 대한 처벌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올해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월호의 진실은 침몰 상태라는 말입니다.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에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 활동가들이 진상 규명의 과제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을 담은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다섯번째로 시민활동가 황용운 씨의 글을 게재합니다/편집자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은 없다? 무슨 말이냐고 할테지만 대한민국 참사에 대한 얘기다. 꼭 이렇다 할 결정적 증거는 항상 찾을 수 없다. 국가조사기구에 정보공개청구를 해도 그 날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편집된 자료만 있을 뿐 원본이 없다. 세월호참사 11년이 지나 12년으로 가고 있는 지금, 새로운 정부가 시작되는 시점, 이재명 대통령이 일하고 있는 사무실, 용산집무실 앞에서 ‘성역없는 한계없는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시작한 이유다.
한 번은 ‘세월호 진상규명’으로 용산집무실 앞에서 피케팅을 하고 있는데 무안공항 제주항공참사 유가족이 왔다. 작년 12/29 참사가 나고 제주항공 비행기 블랙박스를 수거해 비행기 제조사인 미국 보잉사에 보내 분석이 이루어지면 진상규명이 될 것처럼 떠들던 국토부와 언론은 어느 덧 조용해졌다. 사고 전 마지막 4분이 없는 블랙박스에 담긴 진실을 향한 걸음은 멈춘 채 시간만 유야무야 흘러가고 있다. 억울한 유가족이 거리로 나와 시민들을 향해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 다시는 우리처럼 억울함을 당하지 않게 법과 제도를 바꾸자, 호소하게 됐다고 한다. 딱 10년 넘게 내가 보아온 세월호 참사와 데칼코마니다.
대한민국에서 참사가 나면 마치 정부 대응 매뉴얼이 있는 것처럼 생각될 정도로 순서까지 똑같다. 사고 직후, 국민적 이슈가 되고, 한창 분노가 달아오르는 뜨거운 시기를 지나면, 기다렸다는 듯 (1) 시간을 끌고 (2) 증거를 없애고 (3) 관점을 흐리게 한다.
이것은, 세월호 참사 후, 기무사 수장기획 문건에도 그대로 나와 있다.
(1) 시간을 끌어라
왜? 이렇게까지 문제점을 부각시키면서 인양을 하지 않으려고 했을까? 기무사 문건을 보면, 인양에 대한 막대한 비용과 국민부담을 초래한다는 걸 인양 관련 구조 전문가 인터뷰, 언론 기고를 통해 홍보하고, 애리조나호 기념관 같은 추모공원 조성을 제시, 시간을 벌고 논점을 흐리려는 걸 알 수 있다.
(2) 증거를 없애라
대체, 세월호를 인양하면 무슨 문제가 있기에 그랬을까? 선체를 인양할 경우, 예상 논란 대비가 필요하다며, 탑승인원 숫자 차이, 침몰 이후 희생자가 상당기간 생존했다는 흔적이 발견될 것을 우려한다. 그리고 선체 하부의 긁힘, 파공 등 훼손 부분 식별 될 경우 침몰원인 논란이 생길 것을 예상한다. 결정적 증거가 발견되는 것을 우려한 것이 명확하지 않은가? 즉 증거인멸의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본다.
(3) 관점을 흐려라
세월호 선체 내부 수색은 하되, 인양은 하지 않고, 결국 수장하자고 설득하는 방안을 보면 결국 비탄에 빠져있는 유가족에게는 혼선을 주며 세월호를 바닷속에 진실과 함께 묻어버리는 절차를 차곡차곡 밟아나가고 있다.
세월호에 군대 기무사가 관여된 것도 이상하지만, 참사 때마다 반복되는 패턴이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로 책임지고 완수하겠다는 약속처럼 이재명 정부에서 샅샅이 다 밝혀내 더이상 반복되지 않게 했으면 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김관진이 ‘국가안보상 이유로 공개하지 못하는 부분’ 이 있다고 했다. 수사나 기소, 즉 강제성의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던 국가조사위원회에서 아무리 힘껏 조사를 했어도 국가안보상의 이유로 공개하지 못하는 부분에는 접근 할 수 없었다.
앞선 내용을 잘 정리한 영화가 작년 11월 21일에 개봉됐다. 세월호 진상규명 다큐멘터리 <침몰10년, 제로썸>이다. 공개된 반쪽짜리 자료와 지난 10년간 박근혜, 문재인 정권을 지나며 국가조사위원회인 세월호특조위, 선조위와 사참위를 진행한 상임위원 조사위원 전문가 등을 만나 조각조각 퍼즐을 90분 영화로 담아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 종료된 진상규명 기구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의 조사 결과는 ‘사고원인 모름’, ‘구조를 방기한 것은 사실이나 그 이유는 모름’이다.
사참위가 한창 조사하던 시간에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느닷없이 세월호 참사에 한점 의혹도 없게 하겠다며 검찰특별수사단을 만들어 수사를 했지만 결국 책임자들 전체를 무혐의 처리했다. 이것 또한 위에 언급한 매뉴얼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1년2개월간 수사를 한다며 시간을 지체한 후, 결국은 모든 혐의를 무혐의 처리한 것도 모자라 대부분의 경우 일사부재리의 원칙이라며 향후 수사의 길도 막아버렸다. 그런가 하면 윤석열 정부 들어 해수부 산하 목포해양안전심판원(해심원)이 느닷없이 12.3 비상계엄 직전, 무려 10년 넘게 미뤄왔던 세월호 침몰원인을 갑자기 이른바 ‘내인설’로 결론 내려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는 노골적으로 방해했고, 문재인 정부는 ‘세월호 진상규명’ 대신 ‘생명 안전’이란 말로 물타기 했으며, 윤석열은 문재인 검찰총장 때 책임자들 전체 무혐의 처리했고, 대통령 돼서는 세월호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 ‘국민주권정부’ 이재명 정부가 응답할 차례다. 11년이 지나도록 앞서, 세 번의 국가조사기구가 운영됐음에도 세월호 침몰원인 조차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재명 대통령은 6/4 대통령 취임식에서, 7/3 대통령의 30일 기자간담회에서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약속했다. 또한 ‘더는 유가족이 거리에서 울부짖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재명 정부는 면밀히 들여다보고, 구체적인 질문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반드시 세월호 침몰원인과 구조 방기 이유를 규명함으로써 주권자인 국민의 숙원을 해결해주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아래는 구체적인 요구사항이다.
첫째, 기존 국가조사기구를 답습하는 민간조사기구가 아닌 ‘수사권 기소권’이 있는 특조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구성해야 한다. 권한 없는 국가조사기구는 한계가 뚜렷하다. 예산은 예산대로 쓰고 11년이 넘도록 세월호 침몰원인과 구조방기 이유를 지금도 모른다. 제대로 된 권한을 갖춘 대통령 직속기구 필요성이 절실하다.
둘째, 대통령기록물 포함, 모든 세월호 관련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진상규명의 시작은 투명한 정보공개부터다. 특히, 현장지휘 고정익 703호기의 교신 내용과 원본영상을 공개하라. 해군 레이다 영상 또한 공개해 당시 해역의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있도록 하라.
셋째, 이로 인해 드러난 범죄에 대해서는 적확한 책임자 처벌로 귀결되도록 해야 한다. 성역없는, 한계없는 세월호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유가족과 시민들은 어김없이 오늘도 용산집무실 앞에서 피켓을 든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에 공동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