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윤리를 증발시킨 핵무기

2023-01-22     박충구 칼럼
박충구/ 전 감신대 교수ㆍ 생명과 평화윤리 연구자

1. 약소국 내세워 대리전 벌이는 핵보유국

1945년 이후, 강대국들은 사실상 전면전 전쟁을 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갈등 해결을 위해 전쟁을 회피하고 타협의 길을 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일러 컬럼비아 대학 교수인 저비스(Peter Jervis)는 ‘핵평화(nuclear peace)’ 상태라고 일컬었다. 강대국들이 전쟁을 회피하는 이유는 핵을 개발한 당사자로서 핵무기의 끔찍한 위력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직접적인 전쟁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전쟁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남의 나라 땅에서의 전쟁을 조장, 지원, 후견하기도 한다.

1950년 한국 전쟁에서 미국을 축으로 하는 유엔군과 중국은 남과 북의 병사들을 앞세우고 피 터지는 혈육 간의 전쟁을 지원했다. 1955년부터 75년까지 베트남 전쟁 배후에도 이들이 있었고, 1990년에는 걸프만 전쟁, 2001~2014년에는 아프간 전쟁, 2003~2011년에는 이라크 전쟁이 있었다. 그리고 2014년부터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러시아 영토 밖에서 미국과 EU가 배후에서 지원하고 있는 전쟁이다. 핵으로 무장한 강대국들이 직접적인 당사자 간의 전쟁은 회피하면서 여러 지역에서 대리전 성격의 전쟁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전쟁을 통해 강대국은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며 지배력을 확장하려는 치밀한 계산을 하고 있다. 여러 전쟁터에서 자국에서 개발하고 생산한 재래식 무기를 비롯한 군수물자를 소모하여 자국의 군수산업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낡은 재래식 무기들을 처리하는 기회로 삼기도 한다. 동시에 실제 상황이 벌어진 전쟁터를 모니터링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실전 군사 경험을 배우고 익힌다. 자국의 영토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전쟁은 자국의 군수물자 재고를 처리하고, 전략산업을 육성할 기회가 될 뿐만이 아니라 새로 개발한 무기를 실전에서 실험하는 기회로 삼기도 한다.

강대국과는 달리 자국의 영토 안에서 실제로 전쟁을 치르는 나라들은 그야말로 참혹함 그 자체를 경험하게 된다. 한국전쟁은 유구한 역사를 품고 있었던 한반도를 초토화했을 뿐 아니라, 무려 150만 명의 사망자를 냈다. 부상자와 행방불명자를 포함하면 생명 손실은 근 400만에 달했다. 이 뿐만이 아니라 휴전 상태가 후속으로 이어져 극단의 대립으로 인한 분단 비용을 치르고 있으며, 이산가족의 비인도적인 고통과 더불어 몇 대에 걸쳐 상대를 위협하는 전쟁 공포를 겪어야 했다. 그 결과가 북한의 핵 개발이다. 이스라엘이나 북한과 같은 약소국이 핵을 개발한 이유는 핵공격이나 핵전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핵을 보유함으로써 외부의 위협을 차단해 핵평화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어떤 악과도 비교 불가능한 거대한 악, 핵전쟁

미국이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한 핵폭탄(Little Boy, TNT 15kt)은 일순간에 6만 6000명을 살해하고 6만 9000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히로시마 도시 총인구의 55%가 피해를 입었고, 사망자의 60%가 핵이 폭발하며 발생한 고열에 타 죽었다. 1차 원폭 투하 후 즉각적인 일본의 항복 반응이 없자 미국은 일본 군수산업이 자리 잡고 있던 고쿠라를 2차 공격 목표로 잡았으나 그 지역에 구름이 끼는 등 일기가 나빠 공격 지점을 나가사키로 변경하고 두 번째 핵폭탄(Fat Man, TNT 21kt)을 투하했다. 그 결과 일시에 3만 9000명을 살해하고 2만 5000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언덕이 많은 나가사키에서는 사망자의 95%가 핵폭탄 폭발로 인한 고열에 타 죽었다.

1945년 이후 미국과 소련이 앞장서서 개발한 현대 핵무기의 위력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보다 수백, 수천 배 강력해져 그 위력이 상상을 불허할 정도다. 1메가톤급 핵무기 하나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700배 위력을 가진다. 이것이 서울 상공에서 폭발할 경우 일시에 약 159만 명이 사망하고 472만 명이 부상을 입게 될 것이며, 서울 전역에 복구가 불가능한 재난을 입게 될 것으로 추정된다. 만일 1메가톤의 핵무기를 8개의 소형 탄두로 나눌 경우 그 피해는 곱절에 이른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구소련이 1961년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50메가톤급 핵폭탄이 가장 용량이 크다.

핵무기는 그 가공할 파괴력으로 인류사회가 그나마 지켜오던 전쟁의 윤리를 무력화시켰다. 핵전쟁의 특징은 전쟁 당사자 간에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고, 승리도 얻을 수 없으며, 피차 공멸을 불러올 뿐이기 때문에 어느 도덕 이론을 동원한다고 할지라도 전쟁의 정당성을 합리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 과거에는 외교 등 합리적 수단으로는 억제할 수 없는 악을 제거하고 정의를 되찾기 위한 수단으로 전쟁의 정당성을 용인하는 윤리적 판단이 가능했다. 그러나, 오늘날 핵폭탄을 사용하는 행위 자체가 제거해야 할 악보다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거대한 악이므로 전쟁이 악을 제거하는 선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또한 과거에는 불가피하게 전쟁을 수행할 경우에도 전투요원과 비전투요원을 구별하여 살상해야 한다는 인도적이며 차별적인 규범을 적용하여 전쟁 중에라도 민간인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생명 경외의 의무가 있었으나 핵무기는 전투요원과 비전투요원을 가리지 않고 무참한 대량 살상을 불러오기 때문에 차별의 원칙이 무력화된다. 핵무기를 사용하는 전쟁은 이처럼 전쟁의 목적과 수단 자체에서 윤리규범이 성립하지 않으므로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도덕적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여기에 더해 핵전쟁은 과거의 경우처럼 상당한 기간에 걸쳐 치르는 전쟁의 양상과 전혀 다르다. 핵무기를 동원한 전쟁은 길어야 하루, 짧으면 단 몇 시간 만에 상황이 종료되는 극 단기간의 비극적 전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3. 40년 전에 내려진 결론도 모르는 철부지 대통령

미국 가톨릭교회는 감독협의회 이름으로 핵전쟁의 위협에 대한 깊은 연구를 거친 후 1983년에 ‘평화의 도전’이라는 백서를 발표했고, 연합감리교회도 1986년에 ‘창조세계 방어’라는 백서를 냈다. 두 문서 공히 핵전쟁을 전쟁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지구의 전체 생명계를 종식시킬 위협과 악으로 규정하고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핵전쟁의 본질에 관하여 레이건(Ronald W. Reagan)과 고르바죠프(Mikhail Gorbachev)는 1985년 11월 공동선언문을 통하여 “누구도 이길 수 없고,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전쟁이라고 명료하게 지적한 바 있다. 이미 40여년 전에 내려진 결론이다.

최근, 이런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핵전쟁을 준비하라느니, 1000배의 보복을 준비하라는 그의 공적인 발언은 오늘의 핵 대치상황에 대하여 기초적 인식이나 상식도 없고, 그 위험의 정도를 인지할 능력조차 결핍한 정신상태에서 나온 것이라 여겨진다. 핵전쟁이 벌어지면 전쟁 당사국만이 아니라 인류문명 그 자체가 초토화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철부지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핵전쟁이 일어날 경우 단 몇 시간 만에 가공할 비극, 인류사의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아랑곳 하지 않는 발언이다. 온 세계가 가로막아 그의 뜻대로 될 리가 만무하지만, 전작권도 없는 나라에서 대통령이라는 이가 핵전쟁을 준비하라니, 이 얼마나 철부지하고 어리석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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