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이란과 '저항의 축' 집요하게 공격한 까닭
‘이스라엘 통합국가’ 건설하려는 미국과 이스라엘
하마스 기습으로 중단된 ‘아브라함 협정’ 완수 목표
이스라엘-아랍간 적대 봉합하려는 ‘아브라함 협정’
아브라함 협정의 ‘빅 이벤트’ 이스라엘-사우디 수교
그 파기가 하마스의 10월 7일 ‘거사’ 감행 이유
이란과 그 ‘저항의 축’ 파괴의 신호탄 하마스 공격
서방 제국주의 정치권력 게임의 희생-닮은꼴 한반도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실질적으로 통치하던 이슬람 무장조직 하마스 대원들이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한 것은 2023년 10월 7일이었다. 지난 13일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과 이란의 반격으로 전쟁상태에 돌입한 지금 이스라엘-이란 사태의 출발점이다.
하마스가 10월 7일 ‘거사’를 감행한 이유
1천 2백여 명이 살해당한 사건의 충격 때문인지 당시엔 별로 주목받진 못했으나, 그날 외신은 그 주의 주말에 미국의 주선으로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가 국교를 수립하기로 예정돼 있었다는 사실을 전했다. 10월 7일이 토요일이었으므로, 그 주 주말이면 바로 그날이거나 다음날인 10월 8일 일요일이었다. 예정됐던 그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국교 정상화는 하마스의 기습공격 참극이 몰고 온 엄청난 파장 속에 물거품이 됐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국교 정상화는 미국이 그 전부터 공들여 온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국들 간의 ‘화해’ 및 국교 정상화 작업들에서 그 정점을 찍는 ‘빅 이벤트’였다. 하마스는 바로 그것을 노렸다. 그것을 어떻게든 무산시키려 했고, 공격과 보복공격의 쌍방 유혈 참극이 뻔히 예고된 기습공격을 감행함으로써 그들 자신 엄청난 손실을 각오하고 그 목적을 달성했다. 아마도 자신들의 해체까지도 감수해야 할지 모를 처참한 보복공격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마스는 기습공격을 감행했고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교 정상화는 저지당했다. 적어도 그 점만 본다면 그들의 ‘거사’는 ‘성공’했다.
이스라엘-아랍간 적대 봉합하려는 ‘아브라함 협정’
그 3년 전인 2020년 9월 15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바레인 정상들이 국교 정상화 협정에 서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1기 정권)은 백악관 ‘트루먼 발코니’에서 정교하게 연출된 그날 행사의 주최자였다. 그 협정을 ‘아브라함 협정’이라고 했다. 이는 견원지간인 이스라엘과 중동의 주변 아랍국가들이 외교관계 수립을 통해 적대관계를 해소하게 하려는 것으로,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예언자 아브라함에 대한 공통된 믿음을 강조하기 위해 ‘아브라함 협정’으로 불렀다. 기획, 추진 주체는 미국이었다.
UAE와 바레인은 아랍국가들 중에서 1979년 이집트, 그리고 1994년 요르단에 이어 이스라엘과 국교를 맺은 세 번째, 네 번째 국가가 됐다.
그 시작은 1978년 9월 이스라엘-이집트가 합의한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협정이었다. 메나햄 베긴 이스라엘 총리와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 그 다음해 3월 워싱턴 백악관에서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협정에 공식적으로 서명했다.
사다트와 베긴은 그 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지만, 2년 뒤인 1981년 10월 6일 제4차 중동전쟁 개전일에 승전 기념 열병식을 관람하던 사다트는 그 행사에 숨어 든 아랍 근본주의 과격파 행동대원들의 집중사격을 받고 숨졌다. 사다트는 평소 자신의 ‘암살’을 예견하고 있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오래 살아오던 땅에서 졸지에 피억압 소수자가 되거나 거기서 쫓겨나 난민 처지가 된 팔레스타인 민족해방과 이스라엘 축출이라는 ‘아랍 대의’의 중심에 섰던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국가로 승인하고 수교한 것은 아랍 근본주의세력에겐 용납할 수 없는 ‘배신’이었다. 그것은 팔레스타인을 버리는 짓이었고, 아랍의 땅 한복판에 팔레스타인 흡수 통합으로 유대인국가를 확장하려는 서방의 음모에 굴복하는 것으로 그들은 받아들였다. 오스만 이슬람제국의 ‘영광’을 기억하는 그들이 ‘지하드’(성전)를 벌인 이유다.
아브라함 협정의 ‘빅 이벤트’ 이스라엘-사우디 수교
2020년 10월 23일에는 이스라엘과 수단이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미국은 수단을 테러 지원국 목록에서 빼 주고 12억 달러 대출까지 제공했다. 그해 12월 22일에는 모로코와 이스라엘이 아브라함 협정에 서명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주권을 인정하는 대가로 모로코는 서사하라에 대한 모로코의 주권을 미국으로부터 보장받았다. 모두 트럼프 1기 정권 때의 일이다.
2023년 10월 첫째 주 주말에 예정돼 있던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교 정상화 합의는 그 대미를 장식할 ‘빅 이벤트’였다. 아랍 중심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국교 정상화는 미국이 주도해 온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 이슬람국들 간의 ‘화해’, 곧 적대관계 해소를 통한 중동질서 재편의 핵심 이벤트였다.
문제는 팔레스타인이었다. 그렇게 되면 팔레스타인 민족해방과 이스라엘 축출이라는 ‘아랍의 대의’는 사실상 종언을 고하게 된다. 사우디아라비아마저 ‘아브라함 협정’에 가담해 버리면, ‘팔레스타인 해방’ ‘팔레스타인 독립’의 꿈, 나아가 급진주의세력이 꿈꾼 ‘이스라엘 축출’의 꿈은 영원히 물건너 가버리게 될 것이라고 하마스는 판단했다. 그것은 곧 가자지구의 실질적 통치권력인 하마스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마스가 10월 7일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한 것은 바로 그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간 ‘아브라함 협정’ 체결을 무산시키기 위해서였다.
사다트 암살과 하마스 기습공격의 조응관계
1978년의 캠프 데이비드 협정과 1979년 당시 ‘아랍 대의’의 중심국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아브라함 협정’은 사다트 암살이라는 참극을 불렀다. ‘팔레스타인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없이 그것을 덮어 눌러 이스라엘과 아랍세계를 ‘봉합’하려는 서방(미국)의 기획, 그 위험한 도박의 대가였다고도 할 수 있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도 그런 관점에서 살펴볼 여지가 있다. 하마스에게 아랍의 ‘형님’국가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손잡는 것은 이집트-이스라엘의 아브라함 협정만큼이나 위험한 ‘배신’으로 비쳤을 수 있다.
이란과 그 ‘저항의 축’ 파괴의 신호탄 하마스 공격
2023년 10월 7일 이후 진행된 이스라엘의 집요한 가자지구 무차별 공격의 제1차적 목적은 아마도 이스라엘-사우디 수교를 무산시킨 하마스 조직을 무너뜨리는 것이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무력공격은 그런 하마스에 대한 ‘응징’이자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그리고 시리아의 알 아사드 정부 등 이란의 지원을 받던 반이스라엘 협력세력 ‘저항의 축’을 제거하기 위한 장기전의 시작을 알리는 서전이었다.
‘아브라함 협정’의 완성을 위해서는 그런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이스라엘과 미국은 판단했을 것이다. 무자비한 공격으로 하마스를 와해상태로 몰아간 이스라엘은 그 다음 단계로 차례차례 헤즈볼라와 시리아, 후티 반군 공략에 나섰다. 이스라엘 군과 모사드 등 첩보기관들은 ‘핀 포인트’ 폭격 등으로 집요하게 그들 조직의 수장들을 비롯한 요인들을 암살하고 기지를 파괴했다. 지난해 12월 알 아사드의 모스크바 망명으로 ‘저항의 축’은 궤멸상태에 빠졌다. 장기간에 걸친 첩보요원들의 이란 침투공작과 2024년의 두 차례 공습 및 미사일 공격을 통해 이란 방공망 일부를 이미 무너뜨린 이스라엘은 2025년 6월 13일 이후의 연이은 대규모 공격으로 오랜 기간 계획해온 이란 핵 농축시설과 혁명수비대 조직 파괴까지 상당부분 그 목적한 바를 달성했다.
‘이스라엘 통합국가’ 건설이 미국과 이스라엘 목표
이런 일련의 사태들을 통해 드러난 이스라엘과 미국의 의도는 명확해 보인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흡수통합과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 골란고원까지 아우르는 이스라엘 통합국가 건설이다. 하마스와 헤즈볼라, 시리아, 후티 반군에 대한 집요하고 무자비한 공격은 그것을 위한 방해물 제거 차원에서 밀어붙인 이스라엘-미국 합동작전이었다. 조 바이든 민주당 정권은 그런 식의 일방적 밀어붙이기가 초래할 부작용을 걱정해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전제한 ‘2개의 국가’ 해법 가능성에도 미련을 갖고 있었으나, 트럼프 정권은 그런 미련을 완전히 버리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흡수통합 쪽을 택했다.
이와 관련한 미국의 구상은 트럼프의 '리비에라' 건설 발언을 전한 지난 2월 6일 <BBC> 보도를 통해서도 그 단면이 드러났다. 트럼프는 2월 4일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난 뒤, 장차 가자지구를 재개발해 “중동의 리비에라(휴양지)”로 만들겠다고 했다. 그 발언은 그곳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이집트, 요르단으로 영구적으로 이주시키겠다는 언급 뒤에 나온 것이었다. 네타냐후도 트럼프의 그런 발언이 “주목할 가치가 있다”며 “중동을 재편하고 평화를 이룩할 수 있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골치 아픈 팔레스타인을 이스라엘 땅 바깥으로 아예 '파내 버리거나',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이스라엘이 통합 관리하는 대규모 관광 휴양지 또는 투자 재개발지 노동력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유럽의 실패'를 팔레스타인에 전가한 이스라엘 건국
2천여 년 전 고대 유대국가 멸망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 땅에 불러들이는 유대국가 재건 구상을 구체화한 것은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제국에 맞서 싸운 영국이었다.(1917년 벨푸어 선언) 해체된 오스만제국 땅 팔레스타인을 위임통치하던 영국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수천년 살아 온 그 땅의 56%를 유대인 국가 건설에 떼어 주었고, '팔레스타인 문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 '이스라엘과 아랍문제'는 그렇게 시작됐다. 나치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포그롬)에 대한 기독교세계 유럽의 '원죄 의식'과도 얽혀 있는 1948년의 이스라엘 건국은 결국 '유럽의 문제' '유럽역사의 실패'를 팔레스타인과 아랍세계에 전가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영국의 역할을 지금은 '대영제국'을 승계한 미국이 대신하고 있다.
서방 제국주의 정치권력 게임의 희생
이스라엘 건국이 2천 년 전에 그 땅에서 살았던 유대인들의 정당한 권리회복이란 주장은 중근동과 지중해 일대 땅을 로마가 지배했으니 그 땅은 모두 이탈리아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 만큼이나 황당한 얘기다. 누대에 걸쳐 그 땅에 살아 온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그런 주장의 일방적 피해자가 돼야 할 아무런 필연적 이유가 없었다. 그것은 서방 제국주의 정치권력 게임의 일방적 횡포에 가깝다.
닮은 꼴인 한반도의 분할 지배
제국주의 일본 패전 뒤 동아시아를 지배한 미국이 한반도 주민들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반반도를 38선으로 가르고 당시 소련과 분할 점령한 뒤, 냉전의 시작과 함께 전범국인 일본을 최대의 동맹국으로 변신시켜 그 피해자인 한반도를 분할 통치하는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재고해 볼 여지가 있다. 가해국 일본이 아니라 일본에 강점당했던 피해자 한반도가 패전국 일본의 무장해제를 이유로 분단당한 채 지금까지도 동족대결을 지속하면서 기력을 소모해야 할 아무런 필연적 이유도 없었다.
문제 ’해결‘이 아닌 ’봉합‘
트럼프는 결속력 강화와 장기 저항 등 반사적 역효과를 부를 수 있는 이란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의 부작용을 우려해 협상을 벌이며 이란의 투항을 좀 더 기다려보자고 했으나, 연립정권 붕괴 위기에 직면한 네타냐후는 더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과 이란이 지원한 ’저항의 축‘을 제거하거나 약화시키고 그들의 뜻대로 ’이스라엘 통합국가‘를 건설할 수 있을까?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해도 '팔레스타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강압에 짓눌린 그 문제는 한동안 잠잠하게 잠복할지 몰라도 언젠가는 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로 터져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