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화된 대법관 구성은 민주주의와 배치

대법 ‘외적 획일성’이 사법부 ‘내적 획일성’으로

대법관 경력의 다양화, 국민주권 구현에 부응

2025-06-02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조희대 사법망동’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던 법원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결정적으로 무너뜨렸다. 그 뒤 우리 사회에서 사법개혁의 요구들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그 중에서도 대법관 증원과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는 핵심 의제로 부상하였다. 이에 부응하여 민주당은 비법조인도 대법관에 임명할 수 있는 사법개혁안을 발의했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이 법안을 ‘김어준 대법관’식으로 몰아붙이면서 민주당은 해당 법안 발의를 철회하기에 이르렀다.

법관순혈주의와 서울대 출신으로 획일화된 대법관 구성

대법관에는 반드시 ‘비법조인’도 임명되어야 한다(‘법조인’이란 통상 변호사 자격을 가진 사람을 지칭한다). 현재 대법관 14명은 모두 판사 출신이고, 그중 12명은 서울대 출신이다. 법무부가 2015년에 발표한 '역대 대법관 구성 분석' 보고서에 의하면 1948년부터 2015년까지 재임한 총 142명의 대법관 가운데 서울대 출신은 102명(71.8%), 법원 경력이 있는 법관 출신은 124명(87.3%)으로 압도적 다수였다. 이처럼 대법원은 서울대를 졸업한 고위직 법관 출신의 50대 남성 위주로 구성된 ‘외적 획일성’을 드러내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대법원 구성의 ‘외적 획일성’이 사법부 전체의 ‘내적 획일성’과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10여 단계로 이루어진 위계 구조를 지니는 법관 사회에서 법관들은 승진을 위해 직속 상급법관을 비롯하여 법관의 고과를 평가하는 소속 법원장, 특히 제왕적 인사권을 행사하는 대법원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인사권과 발탁승진인사를 전제로 하는 인사 시스템은 결국 법관들로 하여금 철저하게 대법원의 판례와 법원행정처의 지침에 순응하게 만든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모습. 2025.5.14 연합뉴스

이처럼 유사한 가치관과 출신 배경을 지닌 대법관들로 구성된 대법원은 다양하고 급변하는 현대 사회의 지침 역할을 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보수 성향의 대법관이 다수를 점해온 대법원은 결정적인 상황에서 권력과 자본에 유리한 판결들을 내려왔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의견을 반영하지 못하였으며, 특히 사회적 약자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더구나 법관순혈주의 및 특정 대학 중심의 대법원 구성은 법관 사회에서 선후배 관계를 공고하게 만들면서 전관예우의 폐해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철저한 획일성으로 구조화한 대법원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미국 역대 연방대법원의 대법관이나 대법원장으로 임명된 자들 중 법관경력자는 2/3 수준이다. 나머지 1/3은 ‘비법조인’인 법학교수와 정치인을 비롯하여 인권변호사, 검사 등 다양한 직업적 배경을 갖고 있다. 대법관 지명 당시 연방상원의원이었던 사람이 6명, 연방하원의원이었던 사람은 1명이며, 연방상원의원을 거쳤던 사람이 6명, 주지사 경력자는 3명이고, 연방대통령을 역임한 대법관도 1명이 있다.

영국의 대법관은 순수 법관 생활만 해 온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대학교수 등 다채로운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일본은 헌법에서 최고재판소 재판관에 대한 내각의 임명권만 명시하고 있을 뿐 그 자격이나 인원에 대한 규정은 별도로 두고 있지 않다. 대신 재판소법이 최고재판소 재판관 14명 중에서 10명은 적어도 재판관, 변호사, 검찰관, 법학교수와 같이 전통적인 법률가로 구성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법령상 4명의 재판관은 법률가 자격이 없더라도 학식이 높기만 하면 임명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일본 최고재판소는 그 재판관 임명에서 일종의 ‘직역할당제’가 시행되고 있다. 일본에서 법률가 자격을 지니지 않은 재판관은 ‘학식경험자’라고 칭해지는데, 일본 최고재판소는 통상 법관 출신 5, 6명, 변호사 출신 4, 5명, 학식경험자 출신 4, 5명으로 구성되고 있다.

특수집단만으로 구성된 대법원은 민주주의와 헌법 정신과 배치

사법부는 대표자(representatives)가 아니며, 민주적 정당성에 있어 가장 취약하다. 우리 헌법의 기본 원리인 민주주의 원리는 대법원의 인적 구성이 궁극적으로 국민의 의사에 기반을 둘 것을 요구한다. 이는 법원이 국민으로부터 동떨어져 스스로 조직되거나 특수한 집단 또는 이해관계인만이 관여하여 조직, 구성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법원은 다원적 이해관계의 비중과 의미가 재판과정에서 무시되지 않고 온전히 평가되어 균형 잡힌 재판이 될 수 있도록 각기 상이한 경험과 가치관을 가진 다양한 전문가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사법부의 결정은 흔히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인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법규범과 사건을 이해하고 판단을 내리는 재판과정 자체가 이미 법관의 전인격이 투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주관성이나 의지적 요소가 뒤섞이는 것은 불가피하다. 또한 법관 개인으로서는 인식론적 한계로 인해 사건에 대하여 불확실성이 수반하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특히 더 이상의 상소가 인정되지 않으며 그 재판을 통해 개별 사건의 해결을 넘어 법공동체의 법해석의 통일성을 확보해야 하는 대법원은 편파성 혹은 파당성을 초래하지 않도록 그 구성원들이 사회의 다원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마땅하다.

법관순혈주의와 특정대학 출신으로 획일화된 대법원은 위험하다

유럽사법부협의회(ENCJ)는 유럽에서 법관의 인사 특히 임명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는 가장 보편적인 기구인 사법위원회에 민간위원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유럽사법부협의회는 민간위원들이 “시민들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방어하는 사법부의 역할을 강화하며 사법부에 보다 많은 정당성을 부여하며 사법부 내에 실질적으로 존재하거나 혹은 존재한다고 인식되고 있는 이기심이나 자기보호심리, 또는 자기지시성(self-referencing) 등을 피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그 존재의미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뿐만 아니라 민간위원들이 가지고 있는 법외의 분야에 관한 전문지식이나 경력은 사법부에 대한 선순환이 될 수 있음을 천명하였다.

법관순혈주의와 특정대학 중심으로 획일화한 대법원은 위험하다. 이는 최근 ‘조희대 사법망동’으로 분명하게 드러났다. 획일화한 대법관 구성은 다양화하는 현대 사회에 부응할 수 없다. 무엇보다 국민주권의 민주주의 원리와 배치된다. 이제 대법원은 그 인적 구성을 다양화함으로써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시각들이 그 재판과정에서 상호 경쟁, 보완함으로써 획일성에서 비롯되는 편견이나 독단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국민과 국가를 위한 공정하고 질 높은 재판을 수행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주권의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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