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삭빠른 재벌…내란 후 검사 출신 사외이사 확 줄여
검사 출신 대거 정리…30대 그룹서 달랑 2명
전직 관료 출신 떠난 자리 재계 인사로 채워
대통령실 출신 한 명도 없어…국세청이 최다
삼성 올해 검찰 출신 사외이사 선임하지 않아
롯데는 관료 출신을 재계 인사로 대거 물갈이
재벌기업들은 3년 전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 앞다퉈 검찰 출신을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검사들은 법률 지식 외에는 어떤 분야에서도 전문성이 없다. 이런 점에서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그런데도 재벌기업들이 전직 검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한 이유는 뻔했다. 검찰 출신이 윤석열 정부 요직을 차지하다 보니 이들의 인맥을 활용해 로비를 벌이겠다는 속셈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과 내란 사태 이후 재벌기업 내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검찰 출신 신규 사외이사가 지난해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이다. 윤석열 파면으로 검찰 출신 사외이사의 쓸모가 없어지자 대거 정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는 27일 자산순위 30대 그룹에서 올해 1분기 보고서를 제출한 239개 사의 사외이사 876명의 출신 분포를 분석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작년에는 신규 사외이사 중 11명(16.4%)이 전직 검찰 인사였으나 올해는 3명(7.7%·중복 선임 고려하면 실제로는 2명)에 그쳤다는 점이다. 전직 관료 출신이 대체적으로 줄었으나 검찰 출신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이들이 떠난 자리는 재계 출신 사외이사들이 채웠다.
올해 신규 사외이사는 총 152명이다. 이 중 전직 관료 인사는 39명(25.7%)으로 지난해 215명 중 66명(30.7%)에 비해 5%포인트 감소했다. 전직 관료 중에 검사는 3명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이 중 1명은 두 기업에서 동시에 선임됐다. 따라서 실제 검사 출신은 NH투자증권의 오광수 전 검사장과 SK디앤디·카카오게임즈의 노정연 전 검사장 2명뿐이다.
대통령실 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 이에 비해 국세청(8명), 사법부(6명), 기획재정부(5명) 순으로 관료 출신 사외이사가 많았다. 기재부 출신은 지난해 7.6%에서 12.8%로 비중이 높아졌다. 재계 출신 사외이사가 큰 폭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215명 중 38명(17.7%)이었으나 올해는 152명 중 52명(34.2%)으로 늘었다. 반면 학계 출신은 지난해 68명(31.6%)에서 올해는 35명(23.0%)으로 8.6%포인트 감소했다.
관료 출신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CJ그룹이다. 올해 9개 계열사에서 신규 선임된 사외이사 7명 중 6명(85.7%)이 관료 출신이다. 지난해(6명 중 5명)에 이어 올해도 관료 출신을 중용했다. 전체 사외이사 28명 중 19명(67.9%)이 관료 출신이다. 신세계그룹과 두산그룹은 각각 5명의 신규 사외이사를 영입했는데, 이 중 3명이 관료 출신이었다. 전체 사외이사 기준으로 신세계는 20명 중 13명, 두산은 25명 중 10명이 관료 출신으로 구성됐다.
삼성은 올해 신규 사외이사 9명 중 5명이 전직 관료였는데 이 중 3명이 기재부 출신이다. 이호승 전 청와대 정책실장(삼성바이오로직스), 구윤철 전 국무조정실장(삼성생명), 김상규 전 감사원 감사위원(삼성중공업)이다. 삼성은 16개 계열사 63명의 사외이사 중 절반이 넘는 32명이 관료 출신인데, 올해는 검찰 출신을 단 한 명도 추가 선임하지 않았다. 한화그룹은 10명의 신규 사외이사 중 4명이 관료 출신이다. 그룹 전체로는 12개 계열사 45명 중 14명(31.1%)이 관료 출신 인사들이다.
신규 사외이사 구성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곳은 롯데그룹이다. 총 16개 계열사 63명의 사외이사 중에 16명이 신규 인사인데, 이 중 14명이 재계 출신이다. 작년에는 신규 26명 중 2명만 재계 출신이었고, 11명이 전직 관료였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백복인 전 KT&G 대표(롯데렌탈), 조웅기 전 미래에셋증권 부회장(호텔롯데), CJ제일제당 마케팅 부문장 및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를 역임한 손은경씨(롯데웰푸드) 등이 있다.
올해는 여성 사외이사 비중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올해 신규 152명 중에서 28명(18.4%)이 여성이다. 이에 따라 전체 사외이사 876명 중 192명(21.9%)이 여성으로 채워졌다. 리더스인덱스는 “개정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 3년 새 여성 사외이사가 54.8% 증가한 것으로 조사 이래 최고치”라며 “작년과 비교해도 여성 사외이사가 47명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여성 사외이사 비율은 2022년 15.4%, 2023년 18.5%, 지난해 20.3%로 꾸준히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