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의 밤'에 대통령실 기자들은 어디서 뭘 했나
[언론복기의 시간③] 내란 낌새조차 몰랐다니…
기자실에 앉아 받아쓰기 준비만 하고 있었나
40년전 청와대 출입기자 풍자와 달라진 것 없어
권력에 감시·비판 질문 않고 침묵… 애완견 노릇
민주당 정권 때만 보여준 효능감, 새 정부에선?
윤석열 내란 사태는 한국의 극우 기득권 집단의 극악하고 위험한 민낯을 보여준 사건이다. 동시에 언론이 대통령 권력의 검증~감시~비판을 부실하게 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증명한 사건이기도 했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헌법 질서와 민주주의가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언론이 바로 서야 민주주의가 바로 선다는 말을 절감케 한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대통령실에서 벌어졌을 긴박한 상황을 생각하다 보면 그 범죄의 현장에 아주 가까이 있었을 목격자 또는 감시자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바로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이다. 각 언론사에서 ‘에이스 기자’로 뽑혀 권력의 심장부를 취재하도록 되어있는, 100명이 넘는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은 그날밤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역모와 반란은 쥐도 새도 모르게 모의되고 전광석화처럼 실행된다. 12.3 비상계엄도 철저한 보안 속에 은밀히 진행되었을 것이다. 윤석열 내란 수괴와 가담자들은 기자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함구하고 기자 접근을 막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실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수많은 기자들이 이 어마어마한 내란 사태의 낌새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은 한심하고도 통탄할 일이다. 출입기자들은 기자실에 앉아 받아쓰기 준비만 하고 있었던 것인가?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은 다른 출입처에 비해 대통령실에 더 많은 취재 제한과 어려움이 있다고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대통령실 참모들이 만나주지 않거나 국가안보를 이유로 취재에 응하지 않는 일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변명을 국민들이 납득할 지는 모르겠다. 취재 어려움 때문에 나라를 통째 흔들 내란 작당질조차 깜깜할 정도라면 ‘출입기자제도’는 왜 있어야 하는가, 라고 국민들은 물을 것이다.
‘윤석열 비상계엄 선포설’은 1년 여전부터 민주당에서 계속 제기해왔다. 황당한 음모론이라고 하기에는 민주당의 경고가 너무나도 단호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국정의 거의 모든 분야는 위기로 치달았고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의혹은 폭발 직전의 활화산처럼 끓어올랐다. 윤석열 정권의 정치적 무능·국정운영 실패에 분노한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 100차례가 넘는 정권 규탄 집회를 이어왔다. 윤석열의 학교 선후배 출신이 군과 안보 최고 책임자로 채워진 점도 이 정부의 무모한 비상계엄 가능성에 기름을 부었다. ‘유능한’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은 이런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청맹과니처럼 안이하게 판단해 끝내 국민들이 우려하던 비상계엄에 대한 경고를 하지 않았다. 경고는커녕 윤석열의 애완견 노릇을 즐기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이 보여온 전력(前歷)을 봐도 그렇다. 대표적인 사례만 들어본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초기 이른바 ‘바이든-날리면’의 코미디가 벌어졌을 때 극히 일부를 빼고 대부분의 출입기자들은 조용했다. 이 코미디극으로 MBC기자가 대통령 전용기 탑승명단에서 배제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비판적 언론의 기자들이 윤석열-김건희를 비판하다 압수수색·고소고발 당하거나 기자실에서 쫓겨나도 침묵을 지켰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이 단 한 번이라도 비판적 입장문이나 성명문을 발표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은 대통령 권력이 언론을 탄압하는데도 점잖게 침묵을 지킬 만큼 고고(孤高)한 존재들인가?
기자들은 억울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국민들이 기억하는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의 전형적인(stereotyped) 모습 몇 가지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제대로 질문하지 못하는 기자들, ‘외람되지만’이라며 윤석열 앞에서 쩔쩔매던 기자들, 대통령 순방 전용기에서 윤석열-김건희 부부와 ‘셀카놀이’하며 즐거워하던 기자들, 윤석열이 끓여준 김치찌개를 받아먹으며 행복해하던 기자들의 모습이다.
이 정도면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이 ‘취재의 어려움과 제도·관행적 제한’ 때문에 12.3 비상계엄을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는 말은 변명에 불과하다고 욕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어쩌면 기자들은 윤석열 대통령실에서 벌어지는 일에 큰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대통령실(과거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문제는 유래가 깊다. 권력 감시를 위해 권력의 심장부에 뛰어든 유능한 기자들이 결국 출세를 향해 권력의 품에 안겼다는 비판은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유행하던 레퍼토리다. 이명박 정부 때에는 권력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는 청와대 출입기자단을 해체하라는 요구가 미디어 비평지에 등장했다.(미디어스 2008년 3월9일 ‘청와대 출입기자단을 해체하라’ 기사)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아예 대통령 앞에서 ‘무장을 해제한 채’ 두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훈시를 듣는 듯한 출입기자들의 모습이 유명해졌다. 언론계 선배인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은 이런 후배 기자들을 향해 “질문하지 않는 청와대 기자들의 반윤리적 행위” “청와대가 질문받지 않으면 기자회견에 나가지 않겠다고 기자들이 성명을 쓰든지 아니면 기자이길 포기해야 한다”고 쓴소리로 비판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가입해 있는 언론노조마저도 “(단 하나의 질문도 하지 않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기자인지 방청객인지 모르겠다”고 비난할 정도였다.
전두환 정권 시절 ‘보도지침' 폭로로 고초를 겪었던 김주언 기자는 전두환 정권이 끝난 뒤인 1988년 기자협회보에 ‘청와대 출입기자의 현주소’라는 제목의 칼럼을 연재했다. 그는 언론이 “권력의 시녀가 되어 시민의 외면을 받았고 언론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쳤다”면서 칼럼에서 기자의 이름을 여섯가지 한자어로 분류해 불렀다. 첫째, ‘技者’(보도자료를 베껴쓰는 기술자), 둘째, ‘旗者’(깃발을 들고 다니는 자), 셋째, ‘飢者’(배고픈 자), 넷째, ‘奇者’(이상한 자), 다섯째, ‘妓者’(기생같은 자), 여섯째, ‘棄者’(세상도 포기한 자) 등이다. 김주언 기자는 이를 “당시의 절망감이 그대로 표출된 글”이라고 덧붙였다. (기자협회보, 2024년 8월7일 ‘청와대 출입기자 현주소 연재로 권언유착 파헤치다’ 칼럼)
2024년 12월3일 밤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들은 윤석열이 내란을 모의하던 수많은 날, 어디서 무엇을 하였는가? 윤석열 정권을 홍보하는 보도자료를 베껴쓰고(技者), 기득권 세력의 깃발을 들고 다니고(旗者), 배고파 김치찌개를 얻어먹으러 다니고(飢者),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이상한 주술 행위에 공감하고(奇者), 김건희의 외모를 추켜세우고(妓者),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포기한 윤석열 내란에 동조하고(棄者) 있지는 않았는가? 거의 40여년 전 풍자한 청와대 출입기자의 여러 이름들과 지금 기자의 이름은 어찌 이리 비슷한가?
국민들은 정부에게도, 정치인에게도 효능감을 원한다. 국민을 위해 일 잘하는 정부와 정치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효능감은 무엇인가? 권력을 제대로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상식적인 국민들이 기대하는 언론 본래의 책무이자 사명이다. 12.3 내란 사태에서 드러난, 효능감 떨어지는 대통령실 출입기자단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만약 민주당 출신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당선되어 새 정부가 출범하면 이 효능감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높다. 기자들은 과거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등의 민주당 출신 대통령들에게는 주저 없이, 여한 없이 감시와 비판의 칼을 들이대 왔으니 말이다. 바라건대, 윤석열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이 이번 12.3 내란사태에 관해 한 조각 반성문은 쓰고 난 뒤 그 효능감을 되살려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