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판결과 기울어진 사법부 운동장

2025-05-16     신주철·김민웅 전 교수

성추행 혐의로 1심 재판에서 징역형 1년 선고를 받았던 정철승 변호사에 대한 2심 재판(21일)을 앞두고 재판의 과정과 내용에 여러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지난 12일 시민변호인단을 결성하고 그의 무죄를 주장하는 글을 보내왔다. 이 글들은 정 변호사의 유무죄 판단을 떠나 사법부의 판결에 대한 비평적 성격의 글이라는 점에서 최근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높은 현실에서 주목할 만한 논점들을 제기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에 신주철 전 한국외대 교수와 김민웅 전 경희대 교수의 글을 함께 싣는다.(편집자 주) 

 

5월 12일 발족식을 한 '정철승 변호사 무죄판결을 위한 시민변호인단'.

                     <기울어진 사법부 운동장을 질타하다>

                                                                    신주철 (전 한국외대 교수)

정철승 변호사는 성추행 혐의로 피소되어 작년 10월 1심에서 징역 1년의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이 사건은 대한변협 감사였던 정철승 변호사가 대한변협 소속의 한 남성 변호사와 함께 서울 시내 와인바의 오픈 테이블에서 업무상 만났던 여성 변호사의 고소로 시작되었다. 그들은 와인바에서 1시간 남짓 웃으며 대화하고 자연스럽게 자리를 마무리하였는데 사흘이 지나면서 여성 변호사가 정철승 변호사의 성추행을 주장하였고 몇 달 후에는 고소했다. 정철승 변호사가 가슴을 손가락으로 찌르고, 손을 주무르고, 헤어질 때 등을 더듬었으며 허리를 팔로 감쌌다는 것이다. 

1심 재판에서 정철승 변호사는 고소인의 주장을 전면 부인하는 가운데 이 사건에 대한 CCTV가 확보되었고, 대법원 특별감정인 출신의 영상분석전문가는 영상 속에서 성추행을 확인할 수 없다는 소견을 냈다. 실제로 CCTV영상을 보면, 고소인이 반복적으로 웃으며 대화를 이어갔고, 성폭력피해자의 전형적 반응과는 명백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신체적 거부나 불쾌감 표현 등은 일절 하지 않았음이 확인된다. (CCTV 영상)

그럼에도 재판부는 “성인지 감수성에 따른 경험칙상 유죄”라는 모호한 문장을 인용하며 판결을 내렸다. 이로 인해 ‘무죄추정의 원칙’과 ‘증거재판주의’가 붕괴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시민사회는 정철승 변호사가 평소 장애인, 탈북민, 세월호 유가족 등 사회적 약자와 억울한 이들을 대변하는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던 점을 주목하였다. 공인의 위치에서 사법 정의를 지키는 역할을 자임해 왔던 정철승 변호사에게 발생한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억울함을 넘어 시민사회가 지켜야 할 진실과 정의에 대한 위기를 불러일으켰다. 그리하여 '정철승 변호사 무죄 판결을 위한 시민변호인단'을 결성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이에 다음과 같은 준비위원회가 꾸려졌다.

고은광순((사)평화어머니회 이사장), 곽노현(전 서울시교육감), 권윤지(작가), 김민웅(전 경희대 교수), 김정희(시민인권위원회 공동위원장, 재불동포), 박영윤(문화예술기업 아트몽땅 대표), 박재동(시사만화가), 신주철(전 한국외국어대 교수), 원수연(만화가), 이원영(시민인권위원회 공동위원장), 조성민(한국교원대 명예교수), 최경희(성평등인권연구회 대표), 최봉태(변호사, 대구시민헌법학교 설립자), 최자영(전 부산외대 교수) 등 14인이 참여하였다. 이후 시민들이 동참하면서 5월 10일 현재 500여 명의 시민변호인단이 꾸려졌고 지속적인 서명을 받으면서 계속 증가하고 있다. (참여신청 )

5월 12일의 기자회견에 참여한 고은광순 여성인권운동가는 정철승 변호사의 무죄를 위한 시민변호인단의 결성에 대해, “한국 사회의 양성평등을 위한 고귀한 동력이었던 페미니즘이 어느 순간부터 휴머니즘을 벗어나 페미나치즘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또다른 폭력적 모습을 보이는 상황이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판사는 피해자라는 이의 진술만으로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되고, 남성이냐 여성이냐를 떠나 공정하고 정의로운 판결을 내려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인권론을 연구해온 조성민 교원대 명예교수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법정에서 여성의 권리를 신장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성인지감수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남성 피고인들의 인권이 침해되는 사태가 빈번해졌다”라고 주장했다. “여성의 권리를 신장한다면서 남성을 적대시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지경에 이른 상황에서, 법관은 피고인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인권감수성을 발휘할 것”을 주문했다. 

시민변호인단은 결성 선언문에서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1. 항소심 재판부는 공정하고 냉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 CCTV라는 명백한 증거와 실제 정황을 바탕으로 사실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 

2. ‘성인지 감수성’은 법적 기준을 대체할 수 없다. – 성인지 감수성은 공동체의 윤리로서 존중되어야 하나, 법적 판단은 오직 사실과 증거에 기반해야 한다. 

3. 사법 정의 회복을 위한 시민사회의 역할이 필요하다. – 지금 필요한 것은 마녀사냥이 아니라, ‘진실을 말할 용기’와 이를 지지하는 시민의 목소리다. 

시민변호인단은 이날 기자회견 후 재판부에 ‘공정한 재판’을 촉구하는 탄원서도 제출했다. 그리고 ‘시민변호인단’을 지속적으로 모집하면서 향후 항소심을 중심으로 공정재판 촉구, 입법 개선 활동, 사법정의 회복 등을 위한 활동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사법정의는 어디로 갔는가> 

                                                                      김민웅 전 경희대 교수

오래 전 경희대 교수를 퇴임한 교수로서, 나는 오늘 사법정의를 갈망하는 한 지식인으로서 발언하고자 한다. 정철승 변호사를 위한 시민변호인단도 그런 뜻과 의지로 만들어졌다. 우리의 목소리를 사법부는 결코 허투로 듣지 않기를 강력히 요구한다. 오는 5월 21일로 예정된 2심은 1심과는 전혀 다른 관점과 태도로 이뤄져야 함을 강조하는 바이다.  

우리 시민사회에서 신뢰와 존경을 오랫동안 받아온 정철승 변호사에 대한 재판의 결과와 과정은 우리 모두를 깊은 우려 속에 빠뜨리고 있다. 이 재판은 그야말로 신중하고도 신중한 판단이 요구되는 재판이자 사실을 근거로 바로 잡혀야 할 중대사안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안은 정철승 변호사 한 사람으로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사법정의는 기대할 수 없다는 암울한 비관을 더욱 깊게 할 뿐이다.

최근 우리는 사법부의 권위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최종심인 대법원의 행태는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되었고 그로써 전체 법관회의가 소집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사법부가 본연의 임무보다는 정치적 계산과 그에 따른 작전으로 재판의 공정성을 스스로 훼손한 사태는 전국민적인 충격이었다. 재판기록조차 제대로 보지 않고 판결을 내렸다는 정황이 분명해지면서 이 나라 국민들은 과연 사법부의 판결이라는 것이 어떻게 내려지는지 심각한 의구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라면 재판은 무용지물이 된 셈이기조차 하다. 

사법권력은 신성불가침인가?

그러나 이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 것은 사실 최근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무고한 사법희생자들의 고통은 계속되어 왔고 사법부는 이런 현실 앞에서 자성보다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법권력 위에 군림하면서 진실에 대한 고민과 판정을 외면해왔다. 사법부 독립이라는 성채는 그 독립이 진정한 의미의 독립이 아니라 사법권력의 신성화만 가져왔을 뿐이며 진실은 법정에서 판사의 제왕적 군림 아래 짓밟히기 일쑤였다.

이것이 이 나라 국민들이 사법부에 대해 가지고 있는 평가와 판단이다. 사법부는 이러한 국민들의 판단을 근거없는 비난으로 여기지 말기를 바란다. 그건 주권자 국민에 대한 모독이 될 것이다. 사법부의 구성원인 일부 용기있는 판사들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되었지 않았는가.  

재판기록조차 제대로 읽지 않는 사법부의 현실은 국민이 위임한 사법권력 자체에 대한 불신을 자초했으며, 정철승 변호사에 대한 재판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우리의 판단과 심증이 되고 있다. 그 책임은 오롯이 사법부가 져야 할 것이다. 물론 성폭력, 성추행 범죄는 단호하게 단죄되어야 마땅하다. 피해자의 고통은 당연히 그 판단의 준거이자 사법정의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 누가 이의를 달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진실인가를 판단하는 데는 매우 신중하고 철저하며 정밀한 판단과정이 요구된다. 무고로 인한 억울한 피해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는 현실은 사법부가 이런 사안에 대해 얼마나 철저한 판단을 해야 하는지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 이번 재판에서 사법부는 훼손된 권위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분명한 영상증거, 목격자의 위치에 있는 제3자의 존재는 아무 것도 아닌가

첫째, 당시 상황에 대한 영상증거를 과학적으로 판독하는 것은 현장에 있지 않은 사법부 판사들에게 매우 중요한 증거검토 절차이다. 증거주의에 따른 판결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주권자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은 물론이요, 이는 반헌법적 위헌행위다. 대한민국 최고의 영상판독전문가가 내린 결론은 성추행은 없었다, 이다. 증거는 증언이나 그에 준하는 진술을 압도한다. 검찰은 범죄를 입증한 바가 전혀 없다. 그렇다면 1심은 무엇을 기준으로 성추행 사실 존재 여부를 판단한 것이란 말인가.  

둘째, 당시 현장의 상황은 바로 앞에 목격자가 될 수 있는 제3자가 함께 있었다는 점에서도 제3자가 성추행 조력자가 아닌 한 성추행은 불가능한 조건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목격자가 있는 성추행은 가해자가 부인하기 어렵거나 부인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제3자는 성추행이 없었다고 말하지도 않았고, 성추행이 있었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건 제3자의 입장이 고소인과의 관계로 인해 정황상 애매한 처지였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게 되는 상황이다. 이럴 때에는 당연히 피고에게 유리한 관점에서 판단하는 것이 옳다. 명확한 성추행 증언이 현장 한복판에 있는 제3자에 의해서도 이뤄지지 않은 걸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인가.  

시민사회의 신뢰와 존경을 받아온 법조인에 대한 재판, 가볍게 하지 말라

셋째, 정철승 변호사는 시민사회에서 오랫동안 신뢰와 존경을 받아온 법조인이다. 그것이 성추행여부를 판단하는 절대기준이 되지는 못한다 해도 최소한 판단의 신중성을 무겁게 요하는 것은 된다. 신뢰를 받아온 유능한 법조인에게 실형은 그 자체로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다. 재판의 과정에서 피고인이 살아온 과정과 평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실형까지 언도한 것은 1심 판결이 다른 의도를 담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사법현실은 기득권에 대한 비판을 하는 인사들에게 가혹한 판결을 내려온 바 있고, 이번 경우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판단을 우리는 내리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정철승 변호사를 겨냥한 정치재판의 가능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제 2심은 이런 상황과 조건,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여 무엇을 사실로 근거 삼아 판단할 것인지 매우 신중하고 현명하게 판단내려야 한다. 그렇지 않게 된다면 이 또한 사법부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사건이 될 것임을 확신할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의 목소리는 정철승 변호사의 무죄에 대한 탄원이기도 하고 전국민적 영향을 미치게 될 사법부의 권위를 바로 세우라는 국민적 요구를 전달하는 일이기도 하다. 재판부는 이 점을 가볍게 여기지 말기를 바란다.  

거듭 강조한다. 사법부는 정철승 변호사의 사건에 대해 명확한 증거주의와 이에 따른 공정한 판단을 내리는 현명함을 입증해야 한다. 정철승 변호사를 위한 시민변호인단은 이 사안에 대해 결코 쉽게 물러서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명확히 밝힌다. 2심 재판은 더 이상의 억울한 성추행 유죄판결이 이 땅에서 사라지는 계기가 되기를 정중히 요청한다.

[알립니다] "국민의 법 감정과 동떨어진 성범죄 판결들, 왜?" 등 관련

본지는 지난 5월 4일~6월 26일 간 정철승 변호사의 성추행 판결 관련하여 <국민의범 감정과 동떨어진 성범죄 판결들, 왜?> 등의 제목으로 4차례에 걸쳐 사법부가 편파적으로 판결했다는 취지의 기고문을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1심은 경찰 수사단계에서 확보된 CCTV 영상을 증거로 채택하였고, 피해자거부 의사를 표시한 영상 및 피해 주장 상황 당시의 다양한 증거를 고려하여 정철승 변호사에게 유죄를 선고하였으며, 현재 항소 중인 사건임을 알려 드립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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