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후에도 특권이 보장되는 이 나라 대법관

대법 상고심 변호인으로 이름 올려주고 수천만원

재판받을 권리 충족될 때까지 대법관 증원돼야

대법관의 중앙선관위장 겸임은 삼권분립 위배

2025-05-16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대법관 출신 전관, 1년에 100억을 거둔다.”

‘전관예우’라는 말은 이 나라에만 존재하는 특수 용어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의 행태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이들은 대법원 상고심 사건에 이름만 올려주는 대가, 이른바 ‘도장값’으로 수천만 원을 받는다. 2011년에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은 “대법원 퇴임 후 로펌에 가면 1년에 100억 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전관예우는 국가권력의 사유화로, 법 적용의 평등이라는 헌법 원칙을 침해하며 법률에 의한 법집행 작용이라는 법치주의의 본질적 요소를 부정한다. 전관 비리는 사법의 공정성을 훼손하고 법원과 수사 기관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다. 나아가서는 법치주의 자체를 무너뜨린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모습. 2025.5.14. 연합뉴스

특히 대법관 출신 변호사한테서 이러한 현상은 극명히 드러난다.

현재 대법원 상고사건 중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상의 심리불속행 판결에 의하여 심리조차 받지 못하고 기각되는 비율은 무려 80%에 이른다. 사실상 대법원이 국민들의 마지막 재판을 받을 기회조차 원천 봉쇄하고 있는 것이다. 묘하게도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대리하는 상고사건은 심리불속행 비율이 한 자리 숫자를 기록하고 있다. 대법관 출신들의 심각한 전관예우 현상이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사례다. 그래서 “전관예우의 핵심은 대법원의 ‘전직 대법관 예우’”라는 말이 나오는 현실이다. 이렇듯 엄청난 이익이 보장되는 대법관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 현행의 소수 대법관 숫자를 유지하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대법원이 대법관 증원에 반대하고 있다는 주장은 과장된 말이 아니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이 있다. 최근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국회에 출석하여 대법관 증원과 관련된 답변을 하면서 “대법관 수를 증원한다면 오히려 모든 사건이 상고심으로 올라와 재판 확정은 더더욱 늦어질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소수의 대법관을 유지하는 것이 대법원 상고를 줄이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국민들로 하여금 지금과 같이 대법관은 극소수이니 상고해봤자 모두 심리불속행으로 기각되므로 미리 포기하도록 만든다는 논리로서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편만한 상황에서 대법원이 국민들의 신뢰를 바란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바꿔 말하면, 국민이 대법원의 재판을 받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될 때까지, 대법원의 재판서비스 기능은 확대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대법관은 당연히 증원되어야 한다.

대법관 이상의 고위직 법관들이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는 것은 이들의 후배 법관들에 대한 명성(reputation)의 형성과 그것의 사법부 상층부에의 전달을 통해 법관인사에도 직간접적이나마 악영향을 끼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전관예우의 문제를 낳을 소지가 다분하므로 금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퇴임 대법관들이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통해 그것이 상고심 사건에 한정되든 항소심 사건까지를 포함하든 소송대리에 관여한다는 것은 사법부의 권위와 위상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것이 될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중앙선관위원회 위원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으로 구성하며, 위원장은 호선(互先)해야 한다(헌법 제114조 제2항). 그런데 1960년대 제2공화국 이후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았고, 이는 당연한 관행으로 굳어졌다. 하지만 이제 대법관이 마치 당연직처럼 중앙선관위원장을 맡는 관행은 바뀌어야 한다. 사실상 행정기관 역할을 하는 중앙선관위의 수장을 사법부 인사가 맡는다는 것이 삼권분립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17개 시·도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장도 모두 현직 판사가 맡고 있다.

대법원은 대법관의 업무가 과중하다고 말한다. 이런 까닭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 때는 상고법원을 강력하게 추진한 바 있다. 그토록 바쁘다는 대법관이 선관위원장의 자리까지 차지하는 것은 모순이다. 대법관이 중앙선관위원장인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스페인, 포르투갈, 튀르키예 등은 우리처럼 대법관이 겸직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페인은 79명, 포르투갈은 60명, 튀르키예는 150명의 대법관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14명에 불과한 우리와 달리 대법관 1인에 대한 업무 집중도가 훨씬 적다.

권력 분립의 중요한 원칙은 바로 3권 간의 겸직 금지다. 법관이 다른 행정기관의 장이 되는 것은 권력 분립의 원칙에 어긋난다. 또한 중앙 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에 대한 관할을 대법원이 하고, 각급 선거관리위원회 역시 각급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또는 위원 전원이 피고가 되므로 법원의 독립적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사법부가 정치인들의 재판으로 국회의원들의 정치 생명줄을 쥐고 있음으로 하여 조성된 ‘을의 국회의원’ 상황은 법원이 선관위까지 장악하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올바른 3권 분립과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하여 법원과 선관위 그리고 국회 간의 이러한 ‘비정상’ 상황은 시급히 바로잡혀야 한다. 사법개혁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 시대의 긴급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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