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국민 정신건강' 염려가 공허한 이유
헌재에 뒤늦게 윤석열 탄핵선고 촉구하고 나서
그간 조속 선고 요구하지 않았던 것과 대조적
'국민 절반 우울감' 등 정신건강 악화 우려했지만
정신건강 해치는 원인 무엇인지 자신부터 돌아봐야
조선일보가 31일자 신문에서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 선고 지연에 대해 지적하고 나섰다. <충돌 점점 격화되는데 100일 훌쩍 넘긴 헌재 재판>이라는 제목의 이날자 사설은 “지난달 25일 변론 종결 이후 한 달 이상 결론이 나지 않으면서 이런저런 괴담이 번지고, 탄핵 찬반 양측의 대립도 격화하고 있다”면서 “이제는 헌재가 인용이든 기각 또는 각하든 대통령 탄핵 심판에 대한 답을 내줘야 한다”고 했다.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이 당연한 얘기를 조선일보가 내놓고 있는 것은 의외의 일이다. 조선일보는 그동안 헌재의 조속한 판결을 요구하는 다른 주요 신문들과 달리, 오히려 판결 지연을 옹호하거나, 판결 결과에 대한 승복만을 강조해 왔다. 그런 조선일보가 헌재의 선고가 한 달 넘게 지연되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발견하기라도 한 듯이 헌재에 선고를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헌재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늦어지면서 사회적 불안과 갈등이 고조됐고, 거의 모든 신문들은 헌재의 조속한 판결을 촉구해 왔다. 헌재의 선고로써 사회적 혼란을 방지해야 한다는 논조를 펼쳐 왔다. 이 같은 논조는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등 이른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공통적이었다. 그러나 지난달 25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최종 변론이 끝난 뒤 29일까지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사설을 통해 헌재의 조속한 선고를 요구하지 않은 거의 유일한 신문이 조선일보였다.
지난 29일자 중앙일보는 사설 <대통령 탄핵 심판, 헌재가 이제 결단할 때다>에서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변론을 종결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어제까지 선고 기일도 지정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정국의 불확실성이 커졌고, 탄핵 찬성과 반대 진영 사이의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신문은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은 변론 종결 후 1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11일 만에 선고가 난 것을 고려하면 윤 대통령 사건이 너무 길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며 “헌재가 계속 결론을 내지 못하면 사회 갈등이 커지고, 민주주의 기반이 약화 될 수 있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하루 전인 28일자 사설 <尹 선고 또 한 주 넘긴 헌재… 4·18 前에 하긴 하나>에서 “헌재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국민적 피로도는 한계 상황에 이른 분위기다. 우리 사회 전체가 마치 집단 울화증에라도 걸린 듯 국민은 답답함과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며 “12·3 비상계엄 이후 대한민국은 깊은 내상을 입었고 그 회복을 위한 절차가 늦어질수록 상처는 깊어만 갈 뿐이다. 이제 마무리할 때가 됐다”고 했다. 지난 25일엔 <헌재, 尹 선고 더는 미룰 이유 없다>란 제목의 사설을 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이러한 흐름과는 대조적으로, 헌재 판결 지연에 대한 비판은커녕 ‘승복’만을 강조하는 기사를 연이어 내보내왔다. 헌재의 판결이 지연되면서 사회적 불안이 증폭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주요하게 다루지 않은 것은 물론 오히려 야당이 헌재의 신속한 선고를 촉구하는 것을 ‘입법 폭력’으로 몰아가며 정치적 갈등을 부추기는 기사를 내보냈다.
조선일보의 31일자 신문을 받아본 독자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같이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조선일보의 보도, 춤을 추는 논지는 이 신문이 최근 크게 내보낸 기사와 겹친다.
최근 조선일보는 ‘국민 정신건강 악화’의 심각성을 연일 보도하며 우려를 표했다. 이 보도는 조선일보와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의 조사 결과를 소개하면서 국민의 절반이 일상에서 우울감을 경험했으며 22.2%가 극단적 선택이나 자해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고 전했다. 이는 2018년 대비 4배 이상 증가한 수치로, 국민 정신건강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음을 시사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기사가 보지 않으려 하는 하나의 사실이 있다. 최근 국민들의 정신 건강 악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에 조선일보와 같은 언론의 편향적 보도와 갈등 조장 행위를 꼽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천주교 사제·수도자들이 30일 사순절 제4주일을 맞이해 발표한 '헌법재판소의 주인은 국민입니다'란 시국선언문에서 기약 없는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 심판 선고 지연에 “국민들은 억장이 무너지고 천불이 나며, 신속하고 단호한 심판을 기다렸던 시민들의 분노는 폭발 직전이다”라고 했지만 그같은 분노의 상당 부분은 조선일보와 같은 언론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정치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방식에서 국민을 양극단으로 분열시키는 경향을 보이는 조선일보의 보도가 국민들의 정신건강에 이롭게 작용하기는 힘들다. 특정 세력에게 유리한 보도를 집중적으로 내보내는 반면 다른 의견을 가진 집단에 대해서는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는 식의 보도는 국민들에게 불신과 분노를 심어주며, 사회 전체의 정신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국민 정신건강 문제를 다루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서는 책임을 회피한다. 사회적 불안과 분노를 조장하고, 편향된 정보 제공을 통해 국민들에게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면서도, 마치 자신들은 중립적인 시각에서 국민들을 걱정하는 척하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걱정하고 우려할수록 적잖은 이들이 그같은 보도에 대해 공허감을 느끼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헌재 판결 지연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과 국민들의 스트레스를 외면하고, 정당한 분노를 폄하하며, 편향적 보도를 통해 갈등을 조장하는 조선일보가 과연 국민 정신건강을 진정으로 걱정할 자격이 있는가. 조선일보가 정말로 국민 정신건강을 염려한다면, 자신들의 보도 행태를 먼저 돌아보는 것부터 해야 할 것이다.
31일자 신문에서 뜻밖에 헌재의 선고지연을 훈계하고 나선 조선일보는 “혼란을 종식시키려면 이제는 헌재가 결론을 내려야 한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후 약 4개월 동안 우리 사회를 잠식한 모든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줘야 한다”고 했다.
국민들의 ‘혼란’을 끝내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조선일보는 헌재에 대해 훈계하기 전에 자기 자신의 지면부터 스스로 살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