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휴전안에 푸틴 “협상은 환영하나 조건이 있다”

“장기 평화 위한 ‘위기의 근원적 원인’ 제거가 먼저”

휴전 서두르는 미국, 서두를 이유 없는 러시아

G7 “러시아가 거부하면 제재 강화” 한목소리

러시아의 ‘합리적 주장’, 우크라인 다수와 이해 상반

트럼프 정부 “조심스런 낙관”, 낙관적이지 못한 유럽

쿠르스크의 우크라이나군 '완전 포위'는 픽션?

2025-03-15     한승동 에디터
3월 14일 미국 플로리다주 웨스트 팜 비치에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마라라고 리조트 근처에서 열린 "우크라이나는 절대 항복하지 않을 것" 시위에 참석한 사람들이 "수치(부끄러움)" 배너와 "러시아는 테러리스트" 피켓을 들고 있다. 2025.3.14. AF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의 동의를 얻어낸 미국의 우크라이나 전쟁 30일간 휴전안에 대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휴전논의는 지지하지만 휴전안을 바로 받아들이진 않겠다고 밝혔다. 합의하기 전에 먼저 해결해야 할 조건들이 있다는 것을 이유로 댔다. 휴전안을 발표한 13일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담당특사를 모스크바로 보내 푸틴 대통령과 휴전안을 논의하게 한 트럼프 대통령은 휴전안에 대한 푸틴의 첫 반응에 다소 불만을 표시하면서도 “조심스런 낙관론”을 피력했고 크렘린 쪽도 이에 동조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완전한 거부도 찬성도 아닌 러시아의 모호한 자세는 시간을 끌면서 최대한의 양보를 끌어내려는 전형적인 협상전략이라며, 미국의 힘만이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강한 대응을 주문했다. 미국 공화당 일부까지 포함한 서방 주류 시각은 푸틴의 궁극적 목표는 서방과 우크라이나의 분리, 사실상의 우크라이나 복속이라고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딜)은 이제 시작됐을 뿐이다.

G7 “러시아가 거부하면 제재 강화” 한목소리

서방 주요 7개국(G7)은 14일 미국이 제시한 러시아-우크라이나의 30일간 전면휴전안을 “환영”하고, 러시아에 대해 “우크라이나와 대등한 조건으로 (휴전안에) 합의하고 완전히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12일부터 14일까지 캐나다 동부 샤흘르부아에서 열린 G7 외교장관회의는 마지막날 발표한 공동성명을 통해 참석자들은 미국이 제시한 휴전안을 수락한 우크라이나를 평가하면서, 우크라이나 영토의 일체성과 주권 등을 지키려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확고한 지원”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러시아도 휴전안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했다. 공동성명은 러시아가 휴전에 합의하지 않을 경우 경제재재를 한층 더 강화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은 또 휴전 뒤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재침공을 막고, 침공할 경우 대항할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안전보장체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지난 2월 화상회의로 진행된 G7 정상회의에서, 1월에 출범한 트럼프 2기 정권의 친러시아 행보 속에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방안에 관한 내부 이견으로 공동성명도 채택하지 못했던 상황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서방진영이 우크라이나 종전을 위해 다시 결속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모양새다.

하지만 이번 공동성명에서도 휴전협상을 이어가려는 미국 쪽의 뜻을 수용해, 바이든 정권 때의 G7 공동성명 등에 명기된 “침략자”와 같은 러시아를 자극하는 말은 넣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월 14일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 기지에서 에어포스 원에 탑승하기 전 우크라이나 갈등에 대해 언론과 대화하고 있다. 트럼프는 플로리다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주말을 보내고 있다. 2025.3.14. AF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월 14일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의 노보-오가료보 주재관에서 화상 회의를 통해 안전보장이사회 위원들과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푸틴은 러시아가 서부 쿠르스크 지역에서 몰아내고 있는 우크라이나 군대의 생명을 구하라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요청에 대해 언급했다. 2025.3.14. EPA 연합뉴스

러시아의 ‘합리적 주장’, 우크라인 다수 이해와 상반

이에 앞서 13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합의해 제시한 30일간의 전면적인 휴전안에 대해 휴전논의는 지지했으나 여러 가지 선결돼야 할 조건들을 제시하면서 휴전안의 즉각적인 수락에는 난색을 표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문제 해결에 큰 관심을 기울여 준 트럼프 씨에게 감사드린다”며 “휴전논의 자체는 옳고, 나는 분명히 그것을 지지한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적대행위를 그만두자는 제안에는 동의하지만 장기적인 평화로 이어질 위기의 근원적인 원인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린 미국-우크라이나 고위급 회담에서 합의된 휴전안에 대한 첫 공식반응인 이날 발언에서 푸틴 대통령은 ‘위기의 근원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으나, 이제까지 여러 통로를 통해 밝혀 온 종전조건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그 동안 러시아가 점령 중인 도네츠크, 루한스크(돈바스 지방)와 자포리자, 헤르손 등 4개 주와 크림반도에서 우크라이나군을 철수하고, 점령지의 러시아 영토 편입을 인정해 줄 것,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반대, 젤렌스키 정부 퇴진과 중립적인(친러시아) 정권 수립 등을 종전협상의 조건으로 제시해 왔다. 말하자면 옛 소련 해체 뒤 영역을 동유럽 쪽으로 계속 확장해 온 미국 주도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진을 최소한 우크라이나 서쪽 국경에서 멈추고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 비적대적인(친러시아적인) 나라로 존속할 수 있게 보장하라는 것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충분히 합리적인 주장일 수 있지만, 우크라이나의 다수 국민의 생각과 바람이 푸틴의 그것과 일치한다고 볼 순 없다. 그들 다수는 러시아의 지배 아래 사는 걸 거부한다. 이것이 ‘우크라이나 문제’가 풀기 어려운 난제일 수밖에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휴전 서두르는 미국, 서두를 이유 없는 러시아

푸틴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의) 새 정부가 적어도 전임 (바이든)정부가 완전히 파괴해 버린 것을 복원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면서도, 제시된 30일간 휴전안을 즉각 수락할 수 없는 이유로 “휴전기간에 우크라이나가 더 많은 군대를 동원하고 무기를 수입해” 지금의 수세를 만회하기 위한 재정비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과, 긴 휴전 경계지역을 모니터(감시)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 등을 들었다.

푸틴 대통령의 이같은 대응은 거부할 경우 예상되는 미국 등의 제재 강화를 피하면서, 최근 러시아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는 전황을 배경으로 미국 쪽에서 더 많은 양보를 끌어내려는 협상전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군이 점령한 쿠르스크 일부지역 사정도 러시아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러시아군은 중심도시 수자를 탈환하는 등 피점령지역 80% 이상을 회복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휴전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초조한 쪽은 조기 종전을 공언한 트럼프 쪽이고, 푸틴은 그것을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는 재료로 활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 “조심스런 낙관”, 낙관적이지 못한 유럽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의 반응에 대해 13일 “매우 희망적인 발언이지만, 완벽하진 못했다”며 불만을 표시했으나, 가까운 시일 안에 푸틴 대통령과 직접 만나거나 전화를 통해 협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트럼프는 자신의 중동담당 특사인 스티브 위트코프가 13일 밤 모스크바에 가서 푸틴을 만난 다음날인 14일 자신의 SNS ‘트루스 소셜’에 전쟁을 최종적으로 끝낼 수 있는 “대단히 좋은 기회”가 있었다는 글을 올렸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이날 푸틴이 위트코프를 통해 휴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면서, 거래가 성사될 수 있는 “조심스러운 낙관론(cautious optimism)”의 토대가 마련됐다고 덧붙였다. 페스코프의 이 말은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한 “조심스럽게 낙관할 수 있는 이유들”이란 말을 받은 것이다.

루비오는 이에 앞서 "우리는 러시아의 입장을 더 면밀히 살펴볼 것이고, 대통령은 그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 결정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신중하게 낙관할 이유(reason to be cautiously optimistic)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분명히, 우리는 러시아와 다른 나라들이 무엇을 할 의향이 있는지 볼 것이다. 러시아만이 아니라, 분명히 우크라이나가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가디언> 3월 14일)

그러나 미국 정보기관은 트럼프 정부의 이런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푸틴의 최종목표는 우크라이나를 지배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고, 공화당 내에서도 그런 시각에 동조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4일 푸틴 대통령이 제시한 여러 선결조건들은 “복잡하며, 휴전협의를 질질 끌게 만들려는” “예상할 수 있는 교묘한 수작”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러시아가 바라는 것은 전쟁을 계속하면서 외교협상을 파탄내려는 것뿐이라며, “푸틴은 종전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것은 것은 미국의 힘”이라고 했다. 그는 휴전기간에 확실한 평화방안을 테이블 위에 올려 구체적인 논의를 끝낼 준비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에게 휴전안을 힘으로 밀어붙이라고 촉구한 셈이다. 그는 하루 전인 13일에도 “푸틴은 트럼프에게 전쟁을 계속하겠다고 대놓고 말하기를 겁낸다”면서 “직접 ‘노’라고 하진 않으나 사태를 길게 끌고가서 합리적인 해결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푸틴이 흔히 쓰는 수법”이라고 비난했다.

쿠르스크 우크라군 '완전 포위'는 픽션?

한편 트럼프는 14일 지난해 8월 이후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 주 일부를 점령해 온 우크라이나군 수천 명이 지금 러시아군에 완전히 포위돼 있다며, 그들을 목숨을 살려야 한다고 푸틴에게 강력하게 촉구했다는 얘기를 자신의 SNS에 올렸다. 푸틴과 “매우 멋지고 생산적인” 논의를 했다며 올린 그 얘기는 스티브 위트코프 특사의 크렘린 방문 뒤에 나온 것으로, 푸틴은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군이 그냥 쿠르스크를 떠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들이 항복하면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쿠르스크 점령지 내의 우크라이나군이 실제로 포위당한 것인지 사실 자체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관계자들은 우크라이나군이 점령 7개월여 만에 그냥 철수하는 것일 뿐이라며 ‘완전 포위’ 보도는 러시아 쪽 주장으로, “픽션”(허구)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젤렌스키는 휴전협상에 대비해 지난해 8월 자국군을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 주로 진격하게 했다. 휴전협상 때 쿠르스크 점령지를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남부 점령지와 교환할 생각이었다. 러시아가 쿠르스크 탈환을 서두르는 것도 트럼프 재집권으로 빨라질 휴전협상에서 약점을 없애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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