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왕이, 내외신 회견서 '한국 패싱'…내란 진행 후폭풍
한국 극우 '혐중 음모론' 의식한 거리두기?
왕이, 일본에 "역사를 기억하라"
일제 군국주의 부활 저지 요구
트럼프 '아메리카 퍼스트' 비판
"정글의 법칙, 다시 세계 지배"
중국의 연례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를 계기로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의 내외신 기자회견이 지난 7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미디어센터에서 90분간 진행됐다.
중국 외교부 발표문에 따르면, 이날 회견에서 왕 주임은 간략한 모두 발언에 이어 중국 매체들과 러시아·미국·인도네시아·영국·튀르키예·나이지리아·파키스탄·프랑스·일본·브라질·싱가포르·인도 소속 외국 언론들을 합쳐 모두 23개의 질문을 받고 중국 외교정책을 소상히 설명했다.
왕이, 내외신 회견서 '한국 패싱'
한중관계, 한반도 문제 언급 없어
그러나 연합뉴스 보도에 의하면, 한국 언론의 질문은 받지 않았고, 한중관계나 한반도 문제에 관한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한국 언론만 유독 '패싱'한 까닭을 현재로선 알 길은 없다.
불만의 표출일 수 있다. 최근 윤석열의 탄핵과 체포, 구속 과정에서 한국의 극우 수구 세력 중심으로 근거 없는 '중국의 총선 개입' 등을 주장하며 반중·혐중 음모론을 확산시켜왔기 때문이다. 그러잖아도 지난 25일 다이빙 주한중국대사가 국내외 언론사 초청 만찬 간담회에서 "중국을 카드로 삼아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면서 극소수이지만 이들 세력은 "강한 파괴력을 가지고 중·한 관계 발전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우려했다.
한국 극우의 반중 음모론 의식
한국 상황과 의도적 거리두기?
작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왕 주임은 작년 1월 말 춘제(설) 연휴를 앞두고 중국 주재 각국 대사 초청 신년 리셉션에서 미국, 일본 등 세계 모든 나라와의 외교 활동과 성과를 회고하면서 유독 한국을 제외함으로써 출범 이후 '탈 중국'을 외치고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따른 반중국 전선의 선봉에 섰던 윤석열 정부에 대한 강한 불만을 드러낸 바 있다. 그 자리엔 당시 정재호 한국 대사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한국 언론의 질문을 받지 않은 건 '불만'에서 비롯됐다기보단, 한국 정치 상황에 엮이기 싫다는 것에 더 가까워 보인다. 불법 계엄령 선포로 탄핵소추된 윤석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곧 내려지고, 내란 수괴 혐의 형사 재판도 진행되는 등 한국의 정국이 어느 때보다 예민한 만큼 '모른 척'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음 직하다. 가뜩이나 '총선 개입 음모론'에 시달려온 중국으로선 윤석열 파면 결정 시 뒤이을 한국의 대선에서 극우 수구 세력의 반중 캠페인에 조금이라도 빌미를 주지 않고자 아예 거론 자체를 피했을 수 있다.
왕이, 일본에 "역사를 기억하라"
일제 군국주의 부활 저지 요구
가장 눈에 띈 건 중·일 관계에 대한 답변이다. 왕 주임은 올해가 항일전쟁 승리 80주년임을 소환하고 "역사를 기억하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역사를 잊으면 나아갈 방향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중국과 아시아 전체 인민에게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고 일본 인민에게도 크나큰 고통을 안겼다"며 "군국주의 부활 저지는 한순간도 방심하지 말고 일본이 지켜야 할 의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심과 진정성의 시험에 든 일본은 평화헌법의 원리를 준수하고 평화적 발전의 길을 지키는 게 올바른 선택이다"라고 말했다.
미·러 협상이 중·러 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왕 주임은 "성숙하고 회복력 있고 안정된 중·러 관계는 3자의 간섭은 물론 상황 변화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그것(중·러 관계)은 지정학적 게임에서 변수라기보단 격동하는 세계에서 상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러는 2차 대전 때 아시아와 유럽 전선에서 큰 희생을 치르며 각각 반파시스트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우'임을 강조했다. 미·러 주도의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과 관련해선 "안보는 상호적이고 평등해야 한다. 한 나라의 안보가 다른 나라의 불안 위에 세워져선 안 된다"고 말했다.
트럼프 '아메리카 퍼스트' 비판
"정글의 법칙, 다시 세계 지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제일) 정책과 유엔 기구 철수 등에 대해 그는 "세계에 190개 이상의 나라가 있다. 저마다 '내 나라 우선'을 강조하고 유리한 자리에 서려 하면 정글의 법칙이 다시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더 작고 약한 나라들은 맨 먼저 타격을 받고 국제 규범과 질서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중국은 국제 정의 편에 확고히 서고 힘의 정치와 패권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왕 주임은 "도전이 심각할수록 유엔의 정당한 권위를 지킬 필요는 더 커진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 강한 팔과 큰 주먹을 가진 자들이 지배하도록 용납해선 안 된다"라고 덧붙였다.
글로벌 사우스(저소득·저개발국)와 관련해 그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0% 이상을 점하고 글로벌 성장의 80%를 담당하는 "세계 평화 유지와 세계의 발전 추동, 글로벌 거버넌스 개선의 핵심 세력"이라면서 "세계가 어떻게 변하든, 우리의 마음은 늘 글로벌 사우스와 함께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 관세·무역 전쟁서 뭘 얻었나,
무역 적자가 확대됐나 축소됐나"
그리곤 대미 관계로 넘어갔다. 왕 주임은 중국과 미국을 각각 "세계 최대의 개도국과 선진국"으로 규정한 뒤 "이 별에서 오래 머물 것인 만큼 평화공존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협력을 선택한다면 호혜 윈윈을 실현할 수 있고, 한사코 탄압한다면 중국은 반드시 단호히 반격할 것"이라고 말해 압박에 맞서되 상호 협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트럼프가 '좀비 마약' 펜타닐 문제에 대한 부실한 대응을 구실로 대중 관세를 인상한 데 대해 "은혜를 원수로 갚아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왕 주임은 "미국이 최근 몇 년간 관세 및 무역 전쟁에서 무엇을 얻었나. 무역 적자가 확대됐나 축소됐나. 제조업 경쟁력이 좋아졌나 나빠졌나. 인플레가 올라갔나 내려갔나. 인민의 생활은 좋아졌나 나빠졌나"라고 되묻고는 "중·미 경제·무역 관계는 양방향의 상호 작용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가자지구 소유' 구상 비판
"평화 아닌 새로운 혼란 부를 뿐"
트럼프의 '가자지구 소유' 구상도 비판했다. 왕 주임은 "가자는 팔레스타인 인민의 것이며 팔레스타인 영토의 불가분한 일부다"라며 "강제적 수단으로 이 지위를 바꾸는 건 평화가 아니라 오직 새로운 혼란을 부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동 평화 없이 세계 안정은 없으며, 중동 문제의 핵심은 팔레스타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왕 주임은 "팔-이스라엘 분쟁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건 두 국가 해법이 절반만 실현됐기 때문"이라면서 "이스라엘국가는 오래전에 현실이 됐지만, 팔레스타인국가는 도달하기엔 여전히 꽤 멀다"라고 개탄했다.
대만 문제에 대해선 기존의 초강경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는 "대만 독립 추구는 반격받을 수밖에 없고 대만을 이용해 중국을 봉쇄하려는 건 헛된 시도일 뿐이다. 중국은 통일을 실현할 것이고 이건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는 "말썽을 일으키고 논란을 부른 것 말고 어떤 것도 없었다"며 "아시아는 강대국 경쟁의 마당이 아니고 국제협력의 전시장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밖에 왕 주임은 유럽, 동남아, 중남미 관계 등과 관련해서도 견해를 밝혔으며, △ 다자적 자유무역 시스템 보호 △ 개방적·포용적·비차별적인 국제협력 환경 조성 △ 보편적으로 호혜적이고 포용적인 경제 세계화 추진 등을 중국의 외교정책 과제로 내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