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문학, 민족 문학의 왜곡된 계보 바로 잡아야

카프 100주년 기념 에세이 <임화를 위한 변명>

이상화부터 식민지 현실에 항거 저항시 이어가

역대 독재정권, 반공을 민족문학 전면에 내세워

2025-03-05     하성환 시민기자
카프의 민족문학 항일문학을 주도한 임화를 재조명한 책 '임화를 위한 변명'(왼쪽)과 그 전작 '청년 임화'의 표지. (사진 : 사실과 가치)

<임화를 위한 변명>(사실과 가치, 2025)은 <청년 임화>의 후속작이다. 책의 보론 ‘한국 저항시의 계보’에서도 그 점을 분명히 했다. 훗날 카프(KAPF,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 서기장을 역임한 청년 임화(1908~1953)는 1925년 8월 카프 결성 당시 창립 멤버였던 민족시인 이상화(1901~1943)를 귀감으로 여겼다. 카프 시인 이상화가 1926년 <개벽>에 발표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빼어난 서정성을 담은 항일 민족시이다. 식민지 조선의 슬픈 현실을 이토록 아름답게 형상화한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임화도 친분이 두터운 이상화를 본받아 식민지 현실에 항거했다. 민족의 실체인 조선 민중의 고통을 ‘네거리의 순이’(1929)로 탁월하게 형상화했다. 카프를 통해서 만난 이상화의 저항시 정신은 30년대 임화의 조선학 운동으로 발현되었다. 자신의 저서 <개설신문학사>를 비롯해 김태준의 <조선소설사>를 재발간했고 <원본 춘향전> <청구영언> <고려가사> <조선민요선> <조선전래동요선> <조선연극사> <조선화폐고> <역사와 문화> 등 조선의 정체성이 담긴 보석처럼 빛나는 민족문화를 계속 출간했다. 물론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에 항거한 코뮤니스트 김태준과 의기투합한 결실이다.

그러나 보통 시민은 학교 교육을 통해서 카프의 항일문학, 민족 문학을 배우지 못했다. 오히려 민족 문학을 언급할 땐 이광수, 김동리, 서정주, 김동인, 김기진을 떠올리고 항일 민족 문학으로 이육사와 윤동주를 기억한다. 카프의 민족 문학, 항일문학은 은폐된 채 생경한 계급 문학으로 치부했다. 카프 초기 멤버였다가 1934년 일제에 전향한 박영희가 내뱉은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이라는 표현이 오늘날 대중의 의식에 각인된 단적인 사례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은 그렇지 않다. 이육사의 절정, 청포도, 광야, 노정기 등 작품들은 식민지 민족 현실에 깊이 천착한 작품이다. 이육사는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1기 졸업 당시 코뮤니스트로서 졸업 기념 연극 대본에 ‘조선 혁명 성공’ ‘일제 타도’ ‘노동자, 농민이 지배하는 공산사회’를 썼고 자신이 연기했다. 그러나 우리의 학교 교육에선 이육사를 사회주의자로 소개하진 않는다. 마찬가지로 『상록수』의 작가 심훈, 『탈출기』의 최서해, 『낙동강』의 조명희, 최고의 농민소설 『고향』을 쓴 이기영 작가들이 카프 맹원이라는 사실을 공부하진 않았다. 강경애의 『인간 문제』(1934) 또한 일제 강점기 최고의 노동소설이지만 마찬가지다.

오히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 정권은 민족 문학의 이름으로 반공을 전면에 내세웠다. 김동리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이광수, 김동인, 서정주, 김기진은 민족 문학을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비루한 친일 행적을 남긴 인물들이다. 반민족행위가 역력해 모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 문제는 50년대 장준하의 『사상계』가 동인문학상을 운영했고, 오늘날 조선일보가 수천만 원의 상금을 걸고 동인문학상을 기리고 있다. 팔봉 김기진을 기리는 한국일보의 팔봉비평문학상은 중앙일보의 미당문학상처럼 몇 년 전 중단된 상태이지만, 90년대 그 상을 받은 인물이 바로 김현(1회), 김윤식(2회), 염무웅(7회)이다. 이른바 민족 문학을 논한 문인들이다,

불문학자 김현은 “카프는 단 하나도 우수한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고 폄훼했다. 김윤식은 “카프는 거대한 사이비 조직체”라며 “임화, 임화...보성중 중퇴생인 지가 뭘 알겠어”라며 모멸스러운 언사를 남겼다. 염무웅은 “카프는 외형만 남은 허수아비 조직에 불과했다”고 혹평했다. 민족 문학을 운위하면서 일제 강점기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보전하기 위해 애쓴 카프의 민족 문학을 은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나아가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에 맞서 '학예사'를 차려 민족 문학의 파수꾼 역할을 자처한 임화를 왜곡한다는 것 또한 지극한 이율배반이다.

임화 연구의 탁월한 선구자로 우뚝 선 늘샘 김상천은 『임화를 위한 변명』에서 임화를 왜곡, 은폐해 온 한국 문단의 주류 비평을 “외눈박이 우상들의 패거리 비평”이라고 준열하게 비판한다. 나아가 문예비평가 김상천은 이상화를 종조로 하는 한국 저항시의 계보가 임화로 계승되고, 다시 임화를 존경해 김수영으로, 그리고 70년대 김지하, 80년대 김남주로 이어졌음을 탐구하고 있다. 분단 시대의 질곡을 극복한 역작 『임화를 위한 변명』을 감히 이 땅의 문학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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