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여대 문제, 대학 자치와 민주주의로 풀어야
족벌 운영으로 학생들 요구 지속적 배제
억압된 목소리 결국 저항으로 표출된 것
여대의 의미, 성평등 방향으로 확장해야
정치권과 언론, 문제의 본질 흐리지 말라
학생들은 왜 저항했는가?
최근 동덕여대에서 벌어진 남녀공학 전환 반대 시위는 학생들과 학교 당국 간의 갈등을 촉발하며, 사회적으로도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성평등, 민주주의, 그리고 대학 자치가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를 재검토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를 위한 제도적 변화와 정책적 접근이 요구된다.
동덕여대 학생들의 저항은 남녀공학 전환 반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사안을 촉발한 핵심 요인은 학교 운영의 불투명성과 비민주성이었다. 전환의 이유가 무엇이든 여대의 형태를 선택해 입학한 학생들의 학습 환경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만큼,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 과정이 생략되면서 학교 측과 학생들 사이의 간극은 커지고, 신뢰가 무너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학생들은 전환 결정 과정에서 배제됐으며, 이는 대학이라는 공동체에서 학생과 학교 당국이 동등한 관계로 존중받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더욱이 동덕여대는 오랜 기간 족벌적 운영을 지속하면서, 학내 문제 해결을 외면해 왔다. 학생들은 캠퍼스 내 안전, 교육 환경 등의 개선을 꾸준히 요구했지만, 학교는 이를 해결하는 데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을 위한 변화라는 명목으로 추진된 남녀공학 전환은 학생들에게 또 하나의 일방적 조치로 다가왔다. 따라서 이번 사안은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배제됐다는 불신의 맥락에서 바라봐야 할 문제다.
이 사안에서도 사회적 문제에 대한 그릇된 대응이 되풀이 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일부 언론은 사안의 핵심을 외면한 채 극단적 대립을 조장했고, 정치권 역시 이를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갈등을 부추겼다. 이러한 대응은 대립되는 논의를 성숙한 방향으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었다. 이번 논란은 남녀공학 찬반을 둘러싼 논쟁만이 아니라, 대학 운영의 민주적 절차와 학생들의 실질적 참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저항의 방식과 폭력성 논란
학생들의 저항은 갈수록 강해졌다. 초기에는 서명운동, 성명서 발표, 대자보 부착 등 평화적인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학교 당국의 태도에 변화가 없자, 본관 점거와 그 이상의 행동으로 이어졌다. 처음부터 무조건 과격했던 게 아니라, 학생들의 요구가 끊임없이 뭉개지면서 반사적으로 터져 나온 저항이었다. 학교 시설이 훼손되고, 일부 학생들의 구호와 행동이 성적 적대성을 띠는 방향으로 흐르면서 논란이 일었다.
피억압자의 저항에서 비롯된 폭력을 무조건 악으로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숙고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사회적 불평등과 권력 격차 속에서 억압받는 이들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강경한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대화와 제도적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필연적 저항이었다. 따라서 폭력은 그 자체로 단순히 평가될 것이 아니라, 발생의 배경과 맥락을 함께 살펴야 한다. 억압받는 이들이 택한 방식이 일방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는 순간, 문제의 본질은 가려지고 근본적인 해결 또한 멀어진다.
모든 폭력을 같은 기준에서 평가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지난 1월 19일 서부지법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는 법과 제도를 무력화하고 혼란을 조장하기 위한 행위였다. 이는 민주적 절차와 법치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명백한 범죄였다. 반면, 동덕여대 학생들의 저항은 대학 운영의 비민주성과 일방적 정책 추진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들은 구조적으로 배제된 권리를 회복하기 위한 사회적 저항을 시도한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서부지법에서 발생한 폭력과 동덕여대 학생들의 저항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다.
힘의 균형이 무너진 상황에서 이루어진 저항을 폭력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억압의 본질을 가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기득권층의 논리로 저항을 평가하는 순간, 구조적 불평등에서 나온 정당한 요구마저 본질을 잃고 소거될 위험이 크다. 따라서 폭력의 형식보다는 그 기저에 있는 권력관계와 배제의 구조를 면밀히 분석하고,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성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보수 정치와 언론의 개입: 본질을 흐리는 마녀사냥
동덕여대 문제에 대해 보수 정치권과 족벌 언론은 학생들의 저항을 폭력 시위로 규정하며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언론은 학생들의 과격한 행동을 강조하며, 시위 전체를 비합리적이고 극단적인 행위로 몰아갔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은 폭력 시위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학생들의 요구보다 시설 파손과 구호 방식에 초점을 맞추었다. 재차 강조하자면, 이는 시위의 본질을 왜곡하고 학생들의 정당한 문제 제기를 무력화하는 방식이다.
보수 정치인 대다수는 경쟁적으로 학생들의 행위를 불법 폭력으로 규정하고 비난했다. 이는 올바른 접근도 비판도 아니다. 결국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한 전략적 움직임이다. 학생들의 저항을 과격한 이념적 운동으로 몰아가며,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는 대중의 이해를 흐리게 만들고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방해한다. 또한 남녀 갈등을 넘어, 권력의 헤게모니 속에서 약자의 목소리를 억누르는 구조적 문제와 연결된다.
이번 사태를 대학 자치와 민주주의의 근본적 원칙을 점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동시에 사회적으로 불거진 성별 갈등의 이면을 성찰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를 성별 대립으로 축소하며 논의의 본질을 왜곡할 뿐이다. 미디어는 사건을 극적으로 부각하며 대립 구도를 조성했다. 정치권은 이를 특정한 집단의 이해관계에 맞춰 해석함으로써 본질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사회적 긴장을 유발했다.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인 참여와 공정한 논의를 위협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사회적 충돌과 어젠다의 쟁점에서 반복되어 온 이들의 패턴은 이번 사안에서도 재현되었다. 특히 동덕여대 논란은 교육 정책의 문제를 넘어, 민주적 절차와 대학 거버넌스의 원칙이 무너지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러한 사안을 두고 갈등을 조장하고, 본질을 왜곡하는 기존의 방식은 근본적으로 재고되어야 한다. 학생들의 목소리는 일방적인 배제나 소모적 논쟁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교육 환경의 질적 향상과 민주적 가치를 공고히 하는 기반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번 논쟁은 특정한 이해관계나 정치적 이슈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대학 공동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여대의 존재 이유와 성평등 문제
학생들은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겠다’라는 강경한 주장을 내세우며 남녀공학 전환을 거부하고 있다. 이들은 여대의 정체성과 여성 공간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독립적인 학습 환경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남성을 자칫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존재로 규정해 성평등의 본질과 충돌할 위험이 있다. 성평등은 특정 성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동등한 교육 환경에서 학습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사회라는 광범위한 공간에서 남성을 배제하는 것이 진정한 성평등 실현인지에 대한 반론도 제기된다.
다른 여대에서도 남녀공학 전환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으나, 학생들의 반응은 학교별로 차이를 보였고 동덕여대처럼 강력한 반대 움직임이 나타난 사례는 드물었다. 이는 대학의 역사적 맥락과 학내 문화에 따라 요구가 다르게 수용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따라서 특정 대학 내에서만 논의될 것이 아니라, 더욱 포괄적인 성평등 교육 환경 조성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여대라는 공간을 유지하는 것이 성평등을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 교육 구조 개혁으로 나아가며 현실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므로 시위의 방향은 특정 공간을 유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더 넓은 사회적 성평등 실현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개방적이고 협력적인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기된다. 성평등은 배제의 논리가 아니라 공존과 조화 속에서 실현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여대라는 공간을 넘어 보다 광범위한 교육 환경과 사회 구조 속에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여대의 존재는 시대 변화에 따라 논의가 촉발될 필요를 제기한다. 여학교가 처음 등장한 배경에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들의 교육 기회를 보장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오늘날 여대의 존재 이유는 과거의 유산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성평등을 어떻게 실질적으로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는 여대의 존속 여부를 논하되, 대학 내 민주적 운영과 권력 구조의 재편을 통해 포괄적이고 공정한 교육 환경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 특정 공간의 유지나 배제의 논리가 아니라, 모두가 평등한 교육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이번 논쟁은 한국 사회에서 성평등과 민주주의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실현될 수 있는지를 묻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확장해야 한다. 남녀공학 전환과 여대의 존속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모든 이들의 목소리가 어떻게 반영되고 조율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는 시대적 변화와 요구를 반영하는 중요한 과정이며, 특정한 방향으로 결론짓기보다는 열린 토론과 사회적 합의를 거치는 성숙한 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