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명 홈쇼핑 쇼호스트가 광장에 나오는 이유

5조 매출 신화 강동섭 쇼호스트 인터뷰

“기독교 신앙 버리게 된 어머니의 죽음”

“5조 원 매출 기록했지만 암 걸려 투병”

“5.18 기념식 참석 계기로 역사 공부”

“지도자 아닌 시민들이 나라 이끌어”

“광장에 나와 좋은 세상 함께 만들길”

2025-02-22     정숙 시민기자
종로구 인사동에서 인터뷰 중인 강동섭 쇼호스트. 2025.2.15. 정숙 시민기자

얼굴이 알려진 유명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고 활동하면 생업을 위협받거나 사회적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많다. 지난해 12월 13일 가수 이승환 씨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대통령 탄핵 집회’ 공연을 했다는 이유로 경북 구미시로부터 예정됐던 ‘데뷔 35년 기념 콘서트’ 대관 취소를 당한 일이 그 예다. 광장에 나오는 일은 그만큼 유명인들에게는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기도 하다.

요즘 광장에 가면 낯익은 얼굴이 있다. 그는 22년간 약 5조 원의 매출을 기록한 유명 ‘쇼호스트(방송판매자)’ 강동섭(50) 씨다. 강 씨는 현직 쇼호스트로 활동 중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집회에서 시민들과 함께 찍은 사진과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담은 글을 올려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강 씨를 만나 생업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고 집회에 참여하게 된 이유와 쇼호스트로서의 삶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기독교 신앙 버리게 된 어머니의 죽음
정치적 견해 차이로 아버지와 절연 해

-신학과를 나왔는데 종교가 불교라고 들었습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서 신앙심이 깊었습니다. 그런데 대학교 3학년 때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저는 기독교인이라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 어머님이 다 나으셔서 하나님의 권능을 증명할 거라고 믿었는데 허망하게도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1년 동안 신에게 왜 엄마를 데려가셨는지 응답해 달라고 매달렸습니다. 선교 여행도 가고 성경도 세 번이나 통독 하고 기도원에서 매일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응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저는 원래 신학과를 졸업하고 학문적으로 계속 공부하고 싶어서 독일 유학을 가려고 독일 대학 입학 허가까지 받아 놓은 상태였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제가 믿었던 신이 아무런 응답을 주지 않아 실망해 신앙을 버렸고 유학도 포기 했습니다. 당시 대학교 4학년 2학기였는데 사회에 나가 무엇을 할 것인지 막막하더군요. 평생 교회에서만 살아서 사회를 잘 몰랐기 때문에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했어요.”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이라 이런 활동을 반대하지는 않았나요?

“아버지가 목사이신데 2008년 대선에 나온 이명박을 지지하셨어요. ‘그래도 장로가 대통령이 돼야 하지 않겠냐?’고 말씀하셔서 아버지와 심하게 다투고 연을 끊고 지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이제는 제 나이도 50살이 넘었고 아버지도 연세가 많으셔서 건강도 안 좋으시니 지난 일은 다 잊고 가끔 얼굴이나 보면서 살자고 말씀드렸는데 어버지는 제가 기독교를 버린 게 용서가 안 되셨는지 ‘나를 보려거든 신앙을 회복하고 오거라’라고 말씀하셔서 지금도 소원한 관계로 지내고 있습니다.“

 

홈쇼핑 생방송 중 모습. 2025.2.15. 사진 제공 강동섭 쇼호스트

5조 원 매출 기록했지만 암 걸려 투병
스트레스 많지만 주체적인 방송 진행

-쇼호스트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때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습니다. 아나운서 시험은 실기 위주라서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MBC 방송 아카데미에 입학해 아나운서 시험 준비를 했습니다. 3년 동안 시험에 50번쯤 탈락했습니다. 전국에 안 가본 방송국이 없고 카메라 테스트를 거의 100번 가까이 받았습니다. 쉽지 않은 길이였어요. 객관적으로 봐도 제가 더 잘했는데 최종 2명까지만 뽑히고 매번 탈락을 했어요. 나중에 보니까 합격한 사람들 대부분이 흔히 말하는 ‘스카이(SKY, 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졸업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방송학과에 입학해 공부를 했고 2001년 CJ 쇼호스트 시험에 한 번 만에 합격을 했습니다.” 

-24년간 쇼호스트로 일하며 5조 원의 매출을 기록했던데요?

“당시 쇼호스트로서는 제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매출을 많이 올렸습니다. 한 달에 생방송을 50개 정도 했거든요. CJ 같은 경우는 아침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하루에 생방송을 20시간 합니다. 생방송을 할 때 매출이 잘 나오기 때문이죠. 엄청난 시청율을 기록했던 ‘대장금’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될 때인데 드라마 중간에 광고가 나오는 짧은 시간에 10억 원 정도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매일 생방송을 했으면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 같아요.

“매출 압박이 상상 이상입니다. 홈쇼핑은 모든 시간에 가치가 있습니다. 아침 6시 생방송에서는 7000만 원 정도만 팔면 되는데 매출이 높은 오전 10시나 오후 10시에는 1시간에 10억 원을 팔아야 한다는 액수가 정해져 있거든요. 제가 그 시간에 10억 원을 못 팔았는데 다음 주에 후배가 그 시간에 12억 원을 팔면 저는 그 시간에 방송을 할 수 없게 됩니다. 하루살이처럼 그 시간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팔아야 하는 거죠.” 

-왕성하게 활동하던 중에 암에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약 20년 전쯤 미국에서 각 직업군 스트레스 지수를 조사했는데 스트레스 지수가 가장 높은 직업 1위가 민항기 조종사인데 수백 명의 사람을 태우고 태평양을 건너갈 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합니다. 2위는 생방송 TV 진행자, 3위가 외과 의사인데 환자를 수술할 때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쇼호스트는 방송 시간이 불규칙하고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실제로 암에 걸린 쇼호스트들도 많고 암으로 죽은 여자 후배도 있습니다. 제가 생방송을 16년 하다가 암에 걸렸습니다. 암 투병으로 시골에서 요양을 하고 회사에 복귀를 했더니 제 방송이 다 없어졌더라고요. 방송을 하다가 자리를 비우면 다른 사람이 그 방송을 맡게 되고 제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에 자리를 비우면 안 됩니다. 내가 이 생활을 더 해야 하는지 회의까지 들었습니다.”

-5조 원 매출을 올린 쇼호스트라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클  것 같아요.

“홈쇼핑은 대본이 전혀 없습니다. 다른 방송 진행자들은 작가가 써주는 대본을 읽는 것이지 자기 생각으로 방송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런데 쇼호스트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합니다. 상품에 대한 공부, 시장조사, 제품의 어떤 점을 부각 시킬지 그것을 자막으로 만들어서 보여줄지, 글씨로 써서 보여줄지 어떤 사진이나 음악이 들어가야 할지 등 모든 것을 스스로 준비합니다. 쇼호스트만큼 주체적으로 방송하는 진행자가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우리가 진짜 쇼의 주인인 ‘쇼호스트’라고 생각합니다.”

 

홈쇼핑 생방송 중 모습. 2025.2.15. 사진 제공 강동섭 쇼호스트

쇼호스트 중 제일 공부를 많이 했다고 자부
실전에 도움 되는 내용 강의라 만족도 높아

-방송 외에 책도 출간하고 강연자로서도 유명하던데요?

“‘잘 팔리는 말솜씨’와 에세이 ‘타이니 리틀 히어로즈’를 출간했습니다. 현재는 ‘옐로우 씨 해밀턴 리조트’라는 웹 소설도 연재 중이고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라는 에세이도 쓰고 있습니다. 20년 전부터 방송 아카데미에서 강의를 했는데 남을 가르치려면 공부를 안 하고는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책도 많이 읽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하는 강의는 질이 다릅니다. 쇼호스트 중에서 제일 공부를 많이 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책 욕심이 많아서 책도 많이 샀습니다. 집에 다 보관하지 못한 책은 컨테이너 박스에 보관하고 있는데 나중에 시골에 작은 도서관을 차리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기업 강의도 많이 들어 왔었는데 계엄 이후 경제 상황이 워낙 안 좋아서 현재 기업 강의는 거의 없습니다. 요즘은 서울시 상공회의소에서 매달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강의 후기 만족도가 높다고 하는데 비결이 있나요?

“강의는 어렵거나 현학적이면 안 됩니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말의 높낮이나 빠르기 등 변화가 없으면 사람들은 지루해 합니다. 상황에 맞게 이용하는 저만의 기술이 있고 강의는 방송이 아니니까 비속어도 가끔 사용하면서 재미있게 강의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요즘 강의 주요 대상은 소상공인들이나 자영업자들인데 제 강의가 그분들께 실제로 도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은 공부하러 온 게 아니라 장사를 해서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한 방법을 배우러 오는 것이기 때문에 장사에 바로 적용해서 쓸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려 매출에 도움을 줘야 합니다. 제가 쇼호스트이다보니 실전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아서 강의 만족도가 높은 것 같습니다.”

 

2022년 발간한 '잘 팔리는 말솜씨'. 2025.2.15. 사진 제공 강동섭 쇼호스트

2024년 발간한 '타이니 리틀 히어로즈'. 2025.2.15. 사진 제공 강동섭 쇼호스트.

5.18 기념식 참석 계기로 역사 공부 시작해
사람이 사람을 도와야 세상이 돌아간다

-방송만 하다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학교 다닐 때 글씨 쓰기나 디자인에 소질이 있어서 총학생회에서 활동을 했었는데 선배들이 운동권에서 활동하는 게 싫었어요. ‘우리는 신학생인데 왜 이런 활동을 해야 하냐?’며 선배들하고 자주 싸웠습니다. 쇼호스트로 활동하면서 돈도 많이 벌었기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걱정은 사라졌는데 방송만 하다가 사회에 나가 보니 제가 아는 게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 민주주의는 무엇인지, 우리나라 현대사 등 아는 게 별로 없더라고요. 대학교 때는 독일 유학 준비로 도서관에서 공부만 했고 쇼호스트가 돼서는 일만 했거든요.”

-언제부터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했나요?

“2002년에는 신입이라 방송이 별로 없었어요. 마침 5월 18일이 다가오기도 하고 방송도 며칠 없어서 혼자 카메라 하나 들고 2박 3일 일정으로 광주에 내려가 5·18 기념식에 참석했는데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봤습니다. 광주에 있는 유가족들의 얘기도 듣게 되고 기념관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피해자들의 사진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어요.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역사 공부를 시작했고 그때쯤 일어난 ‘효순이, 미선이 사건’으로 처음 집회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본인의 정치적 활동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기를 바라나요?

“신학교 4학년 때 신앙을 버리고 갖게 된 생각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체험을 통해 신이 있다는 것과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걸 알지만 어머니가 허망하게 돌아가시는 걸 보고 신은 인간에게 무관심하거나 무능력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을 도와야 세상이 돌아간다는 철학이 생겼어요. 사람이 사람을 돕는다는 게 어떤 영웅이 나타나서 사람을 돕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이 영웅이 돼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하면 되는 거죠.”

 

시민들과 함께 집회에 참여한 모습. 2025.2.15. 사진 제공 강동섭 쇼호스트

응원봉을 들고 집회 참여한 강동섭 쇼호스트. 2025.2.15. 사진 제공 강동섭 쇼호스트

나라 이끌어 가는 사람은 지도자 아닌 시민들
광장으로 나와 좋은 세상 함께 만들었으면 

-혼란의 시대를 살고 있는 시민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요?

“시간이 날 때마다 집회에 참석합니다. 저보다 훨씬 자주 참석하는 시민들도 많고 심지어 매일 참석하는 시민들도 있습니다. 이번 겨울이 추웠는데 지난해 12월 계엄령 이후 계속 집회에 참석해서인지 건강이 많이 안 좋아져서 힘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젊은 청년들이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참석하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예전에 유시민 작가가 ‘우리는 화염병 던지고 최루탄 맞아 피 흘려가며 투쟁해서 민주사회를 만들었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노는 것 밖에 모르는 것 같아 눈을 감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번에 청년들이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참여해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고 민주시민의 역량을 스스로 키워나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는 말을 했습니다. 나라를 이끌어 가는 것은 시민들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같은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응원봉을 든 작은 영웅들이 함께 나라를 이끌어 가는 거죠. 정권 교체가 되고 좋은 날이 오면 모든 시민들이 우리 손으로 만든 태평성대를 마음껏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를 끝내며 정치색을 드러내면 일을 할 때 불이익을 당하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강씨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방송하는 사람이기 전에 국민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기세’입니다. 몇 년 전에 친구와 스페인으로 배낭여행을 갔었는데 가방을 통째로 소매치기 당했어요. 쫓아가서 가방을 뺏으니까 여섯 명이 우리를 에워싸더군요. 혹시나 칼이라도 꺼내면 죽을 수도 있으니 제압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있는 힘껏 큰 소리로 미친 사람처럼 한국 욕과 미국 욕을 마구 했더니 도망가더라고요. 이렇게 생활에서도 ‘기세’가 중요하지만 정치에서도 ‘기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강씨는 “민주주의의 기본은 다수결이고 투표는 숫자로 ‘기세’를 보여주는 행동이기 때문에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됐던 날 200만 명이 모였고 박근혜 탄핵할 때도 100만 명이 넘게 모였듯이 사람 머릿수 하나하나가 ‘기세’라고 생각합니다”라면서 한 사람이라도 더 광장으로 나와 함께 좋은 세상을 만들면 좋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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