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앞두고 지역화폐 인기 폭발…국민의힘만 삐딱

정부 지원 외면에 지자체 예산 짜내 발행 확대

민주당 추경 요구에 국힘 “정략적 매표 행위”

재발의한 지원 법안도 거부권 행사 요구

적기에 적정한 양 발행하면 지역 민생에 도움

2025-01-24     장박원 에디터

설 명절을 앞두고 지방자치단체들은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발행을 크게 늘렸다. 12·3 내란 사태 여파로 찬바람만 돌고 있는 지역 상권에 온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다. 이들 지자체는 상품권 할인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구매를 유도한다.

지역 주민들의 호응도 좋은 편이다.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한 지역 상품권은 고물가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때문이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에 점포를 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도 지역화폐 확대로 혜택을 본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지역 경제 살리기와 균형발전 차원에서 정부가 지역화폐를 지원해야 하는 이유다. 

 

수원페이카드 [수원시 제공] 연합뉴스

발행하자마자 바로 소진되는 지역화폐

일부 지자체에서는 상품권 할인율을 확대하자마자 구매하고자 하는 지역 주민들이 몰리면서 플랫폼(앱)이 접속 장애를 빚는 일까지 발생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수원시는 24일 오전 9시부터 지역화폐인 ‘수원페이’ 할인율을 20%로 올렸다. 10만 원짜리 상품권을 8만 원에 구매할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그러자 시민들이 몰리면서 앱이 한때 마비됐다. 수원시는 지난 1일에도 똑같은 할인율로 상품권을 100억 원어치 판매했는데 12시간 만에 상품권이 모두 소진됐다고 한다. 경기도뿐 아니라 많은 지자체가 민생 회복을 위해 지역화폐 발행을 확대하고 있다.

지역화폐에 대한 인기를 고려해 더불어민주당은 22일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 법(지역화폐법)’ 개정안을 다시 발의했다. 국가가 의무적으로 지역화폐에 대한 예산을 지원하도록 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9월 지역화폐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시켰다. 그러나 국민의힘과 정부는 ‘이재명표’ 정책이라며 반대했고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회로 돌아온 법안은 재표결에서 부결돼 폐기됐다.

이번 개정안은 지역 상품권에 대한 정부의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재량 규정에서 의무 규정으로 바꾼 내용은 같다. 다만 정부와 여당이 우려하는 점을 반영해 지자체의 재정 부담 여력에 따라 보조금 예산 신청액 일부를 정부가 감액할 수 있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정부의 예산 편성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지역화폐 가맹점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자체 191곳이 발행…157곳은 예산 부족

민주당은 정부가 내란 사태 등으로 얼어붙은 소비를 살리려면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야 하는데 법안이 통과되면 지역화폐 지원 예산을 배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박정현 민주당 의원은 지역화폐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지역화폐를 발행하고 있는 지자체가 전국 243곳 중 191곳인데, 이 가운데 157곳이 재정 취약을 이유로 중앙정부가 지원해달라는 의견을 냈다. 올해 예산에서 삭감된 예비비 2조 원을 지역화폐에 투입하면 지역 경제를 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화폐 수요가 많은 것은 실제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지역 상품권은 정부와 지자체가 세금을 투입해 할인해주면 판매량이 늘어난다. 사용 기간이 한정돼 있어 단기 소비 진작 효과가 있다. 물론 지속성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경제위기나 코로나19 팬데믹, 비상계엄 사태 등으로 지역 경기가 얼어붙었을 때 활용하면 효과가 작지 않다. 지역 상품권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발행됐고 2018년부터 정부가 발행 금액의 10%를 국비 지원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재정이 부족하다며 지역화폐 지원 예산을 전혀 배정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지역화폐는 정략적 매표 행위”

12·3 내란 사태로 지방 경제는 서울과 수도권보다 훨씬 힘든 상황이다. 지역 상인들은 설 명절인데도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고 푸념한다. 이럴 때야말로 지역 상품권 발행을 늘려 이들을 도와줘야 한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이재명표’ 정책이라는 딱지를 붙여 지원 불가 방침을 거듭 천명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23일 민주당이 요구하는 지역화폐 예산에 대해 “국가 곳간을 털어 매표 행위를 하겠다는 것이며,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현금 살포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략적 이익을 위해 미래 세대를 빚쟁이로 만들겠다는 심보”라며 “자식의 밥그릇을 빼앗아 배를 채우는 부모와 무엇이 다른가. 그야말로 패륜 정치”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이 재발의한 지역화폐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무조건 폐기해야 한다.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즉시 재의요구권 행사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기 침체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상계엄과 정치적 혼란까지 더해 연말 특수가 실종됐다. 사진은 성탄절을 앞둔 23일 오후 서울 한 재래시장 모습. 2024.12.23. 연합뉴스

정치 논리 벗어나 지역 상권부터 둘러봐야

국민의힘은 정부 재정을 투입해 지역 상품권을 지원하는 것을 인기 영업주의 강요법, 국가재정 갈취법 등으로 규정한다. 무차별적 상품권 살포가 민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지역 상품권의 발생과 운영을 주관하는 지자체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지역 상품권이 많이 팔릴수록 경기가 살아나는 현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요구하는 지역 상품권 지원액은 2조 원 정도다. 대기업 세금 공제과 보조금 등 수십조 원의 부자 감세에 비하면 큰 금액이 아니다.

지방 경제는 고물가와 고금리, 고환율에 내란 사태까지 덮쳐 꽁꽁 얼어붙어 있다. 지역 민생에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지역화폐를 정치 논리에 함몰돼 외면하는 것은 직무 유기와 다름없다. 지역화폐 법안에 반대만 하지 말고 전국 각 지역의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직접 둘러보면 틀림없이 생각이 바뀔 것이다.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