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없이 9069일간 감옥에 갇혔던 무기수, 김신혜

잘못된 심증과 가혹 수사가 만든 엉터리 판결

25년 만에 ‘무죄’…수감중인 재소자로는 처음

‘늦게 온 정의’에도 반성하지 않는 경찰과 검찰

2025-01-25     고상만 진실규명
고상만 인권운동가(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사무국장)

지난 1월 6일 오후 2시, 나는 땅끝마을에 자리한 전남 해남법원 1호 법정에 있었다. 2000년 3월 7일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김신혜 씨의 재심 선고날이었다. 무려 25년 간 수감 중인 현역 무기수의 재심 선고가 내려질 해남법원은 개정 시간이 다가오면서 긴장감이 휘돌았다.

내가 알고 있는 진실 25년 만에 확인해 준 재심 판결 ‘무죄’

법원 측은 기자들에게 한정된 좌석을 선착순으로 배정해 줬다. 법정에 입장한 사람보다 방청권을 받지 못한 이들이 더 많았다. 시골의 작은 법원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잠시 후 내려질 이 사건 재심 선고는 대한민국 사법 역사상 최초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미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이들이 아닌 현재 수감 중인 재소자를 대상으로 재심 선고가 이뤄진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법정에 착석한 나는 판사가 들어올 때까지 여러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내가 2000년 3월 7일 발생한 이 사건의 제보를 받고 관여하기 시작한 때는 같은 해 12월 30일이었다. 김신혜 씨의 남동생으로부터 ‘누나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던 것이다. 동생은 “누나는 아버지를 살해하지 않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나는 실체적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먼저 사건 수사기록과 공판조서를 입수하여 살폈다. 이어 사건 관련자들과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서울에서 완도까지 수 차례 방문하기도 했다. 그 후 김신혜 씨와 650여 통의 편지를 주고 받으며 나는 하나의 확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지금도 많은 이들이 이 사건에 대해 궁금해할지 모르는, 이 사건의 진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잠시 후 오후 2시, 해남지원 제1형사부 재판장 박현수 지원장이 입장했다. 재심 청구인의 인적사항을 확인한 후 재판장은 존속살해·사체유기 혐의에 대한 이 사건 재심 선고 이유를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법원 정리는 기자들에게 언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나눠준 보도자료를 받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눈을 떠 살펴본 문서의 첫 장에 써있던 단어. ‘무죄’

 

사건 발생 24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김신혜 씨가 6일 전남 장흥군 용산면 장흥교도소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김씨는 2000년 3월 아버지(당시 52세)에게 수면제를 탄 양주를 먹여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받았으나, 2015년 재심 개시가 결정돼 이날 무죄를 선고받았다. 2025.1.6. 연합뉴스

무죄 판결 후에도 여전한 “아무래도 범인인 것 같은데?”

2000년 3월 7일 새벽 5시 50분 쯤, 전남 완도의 시골 마을 버스정류장 노상에서 발견된 50대 남자의 시신. 평온했던 시골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고 만 하루가 지나기 전, 경찰은 범인을 전격 체포한다. 당시 23살(1977년생)이던 큰 딸이 8억 원의 사망 보험금을 노려 장애인 아버지에게 수면제가 든 술을 먹여 살해한 뒤 교통사고로 위장하기 위해 차도에 시신을 유기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었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살해 동기를 ‘자신에 이어 이복 여동생까지 아버지가 성추행했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김신혜 씨는 부인했다. 오히려 ‘내 아버지는 그런 파렴치한 사람이 아니며 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위해 싸우겠다’고 했다. ‘나의 무죄가 아버지의 무죄’라며 그녀는 지난 25년 간 일체의 모든 노역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교도소 내 그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한 채 그녀는 독방에 수용되어야 했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김신혜 씨의 무죄 선고 후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가 이어졌다. 뉴스를 본 많은 이들이 그녀의 안타까운 사연에 가슴 아파했다. 이제라도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덕담이 많았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내가 만난 누군가는 ‘악의없이’ 말했다.

“저는 아무리 봐도 그녀가 범인인 것 같은데, 진짜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엉터리 심증과 반인권적 가혹수사가 만든 범인

어쩌면 내가 이 사건에 관여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하나가 이것인지 모른다. 숱하게 많은 법률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내가 들은 대부분의 말은 “우리나라 현 사법 체계상 재심은 사실상 불가능하니 포기하라”는 것이었다. 이건 차라리 나은 편이었다. 그중 일부는 “나는 아무리 봐도 그녀가 진범이 맞는 것 같다”고 하기도 했다.

절망했다. 내가 본 수사 기록과 공판조서, 그리고 현지 조사를 통해 확인한 사실을 전하며 나는 ‘한 번만 이 기록을 읽어봐 달라’며 부탁했다. 이러한 진실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자, 2003년 나는 ‘어느 존속살인 여 무기수의 진실 혹은 거짓’이라는 제목으로 <인권운동가가 쓴 인권 현장 보고서, 니가 뭔데>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이후 이 글이 인터넷에 소개되면서 방송을 통해 세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내가 알리고 싶었던 진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김신혜 씨의 말만 믿고’ 내가 그녀의 무죄를 믿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그녀의 무죄를 확신한 것은 사건을 수사한 경찰과 검찰, 그리고 법원의 결론과 달리 그녀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나의 합리적인 확신이었다. 그야말로 반인권적인 가혹 수사와 엉터리 심증을 기반으로 내린 ‘억울한 판결의 상징적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사건엔 아무런 범죄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버지를 살해하는데 사용되었다는 수면제를 어디서, 어떻게, 누가 구입했다는 것인지 기초적인 수사조차 하지 않았다. 또한 그 약을 알약 형태로 먹였는지 가루약으로 먹였는지도 확정하지 못했고, 그것을 담았다는 술잔과 술병 역시 수사기관은 확보하지 못했다. 오직 그녀가 ‘자백했으니 범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가난했고 도와 줄 사람 없어 박탈 당한 재심의 기회

2024년 8월, 나는 재심 법정의 증인으로 출석하여 2시간이 넘게 증언을 했다. 끝 무렵에 박현수 재판장이 나에게 물었다. “이 사건이 무죄라면 왜 재심이 이렇게 오래 걸렸다고 생각하냐?”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 질문이 너무나 고마웠다. 내가 답했다.

“가난해서요. 신혜 씨가 가난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변론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엄마도 없는 상황에서 아무도 그녀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심증이 아닌 증거로서 공정한 재판을 해 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재판장님.”

선고일 날, 나는 약 30분에 걸친 재판장의 판결 내내 한 곳만 응시하고 있었다. 검사 측 자리였다. 과연 검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2015년 재심 개시 결정 이후 9년에 걸친 심리 끝에 선고가 내려지는 오늘, 그들의 반응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재심 심리 내내 표리부동한 태도를 보인 검사들이지만 오늘은 좀 다르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피고인은 무죄’라는 박현수 재판장의 주문이 내려지는 순간, 느낌이겠지만 나는 검사가 부들부들 분노로 떤다는 느낌을 받았다. 23살의 나이에 구속되어 47살이 된 지금, 날짜로는 정확히 9069일 만에 무죄를 받은 그녀에게 검찰은 전혀 미안해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태도에 분노가 치밀었다.

재심을 담당했던 박준영 변호사는 ‘이 사건 수사 과정 전반이 위법’이라고 일갈했다. 나 역시 동의한다. 그럼에도 지난 1월 13일, 검찰은 기한 마지막 날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사실오인, 법리 오해가 있다면서 1심 선고에 불복한 것이다. 단언컨대, 2심 결과도 달라질 것은 없다. 25년 전 그들이 확보하지 못한 증거를 지금 찾아오지 못하는 이상, 잘못된 심증에 기초한 원심 판결은 바뀔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확신한다.

경찰, 검찰은 왜 반성하지 않는가

검찰은 왜 반성하지 않나. 왜 진짜 범인을 잡는 것이 아니라 ‘사건 해결에 필요한’ 범인만 만들려 하나.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경찰, 검찰의 잘못된 수사로 누명 끝에 감옥에 갔는지 모르나. 이날 김신혜 씨 재판에 함께 한 90년 <낙동강변 강도 살인사건> 누명 피해자 장동익 씨와 88년 <화성연쇄 8차 살인사건> 억울한 피해자 윤성여 씨 재심 무죄 앞에서도 검찰은 요지부동이다. 누구에게 사과한 적이 있는가.

나는 무죄 선고 후 장흥교도소에서 출소한 김신혜 씨와 25년 만에 처음으로 저녁식사를 같이 하며 말했다. 오늘의 무죄 선고를 가장 기뻐할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냐고. 뜬금없는 질문에 김신혜 씨는 말없이 웃었다. 나는 말했다.

“바로 돌아가신 신혜 씨 아버지가 저 세상에서 가장 기뻐하셨을 겁니다. 지난 25년 간 당신의 딸이 억울한 혐의로 갇혀 있다가 마침내 자유를 얻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경찰과 검찰, 그리고 법원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 반성을 촉구한다. 백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어서는 안된다. 이 유명한 법률 격언을 다시 새기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김신혜 씨 수사와 기소와 판결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25년 전에 지금의 판결이 내려졌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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