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참사'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이봉수 제주이왁] ‘규제완화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2024-12-31     이봉수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원장

육지 사람들에게 제주는 죄수를 보내는 유배지였고 학살의 땅이었다. 지금도 이익이나 아름다운 풍광에 끌려 건너온 이들은 투자가치나 거주의 매력이 떨어졌다고 판단하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영원한 객지'가 제주다. 나 또한 제주 사람 눈에는 '육지것'으로 비칠 수 있으리라. 그런 제주인의 한과 정서를 이해하려다 제주학에 빠졌고 도민이 됐다. 제주가 인문사회학을 결합한 미디어 교육의 중심이 되게 하겠다는 각오로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한미리스쿨)을 설립했다. ‘이봉수 제주 이왁’은 제주민과 나의 일상에 인문학과 세상 ‘이야기’(제주어로는 ‘이왁’)를 덧실어 보내는 글이다.

‘개발공약의 정치경제’와 신개발주의

김포발 대한항공이 1997년 8월 6일 오전 1시43분 미국령 괌 국제공항으로 접근하던 중 추락해 승객과 승무원 254명 중 228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그날 밤 <한겨레신문> 당직 야간국장이던 나는 부랴부랴 호외를 제작했다. 최대 인명 피해로 기록된 그 추락 사고뿐 아니라 한국 항공사들의 대형 참사가 끊이지 않는 이유가 뭘까?      

나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은 물론 MBC저널리즘스쿨과 제주 한미리스쿨에서도 빠짐없이 3~5시간을 들여 강연해온 주제가 ‘개발공약의 정치경제’이다. 왜 선거 때만 되면, 공항, 도심재개발, 새만금, 한반도대운하, 고속도로, 경전철 등 개발공약이 쏟아지는지, 타당성은커녕 경제성도 없는 각종 개발공약들이 얼마나 나라살림과 환경을 훼손하고 나아가 선거라는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왜곡하는지 강조한다.

개발공약은 이슈 선점효과가 크다. 1987년 대선에서는 노태우 후보가 경부고속철과 새만금 사업 등을 졸속으로 발표해 투기 광풍과 사업비 폭증을 불러왔고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군부정권을 연장시켰다.

세계사를 보더라도 아우구스투스의 로마 재건사업은 공화정을 파괴하고 그를 초대 황제로 만들었고,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과 카다피의 대수로 사업은 아무도 거부하지 못하는 당대의 국가 이데올로기로 행세하면서 두 나라 경제와 국민의 삶을 빈사 상태로 몰아 부쳤다.

근대국가가 성립된 지금도, 오래 되고 작고 느린 것에 대한 염증을 새롭고 크고 빠른 것을 향한 욕망으로 채워 나간다. 개발은 곧 성장과 발전이라는 박정희식 개발주의는 신자유주의와 만나 신개발주의로 진화하면서 국가와 민간지본이 합작해 차별성의 이미지를 부각하거나 장소를 상품화한다. 전국에서 대부분 폐허가 되어가고 있는 수많은 테마파크들이 그렇게 탄생했다. 신개발주의는 역사, 환경, 생태, 문화, 여가라는 요즘 잘나가는 테마로 포장해 개발단계의 저항을 무력화한다.

‘정치적 발언’ 센 지역에 집중된 적자공항들

개발공약의 폐해를 웅변하는 사례가 공항이다. 전국의 공항 중에서 흑자를 내는 곳은 인천∙김포∙김해∙제주뿐이고 나머지 10여 곳은 대부분 500억 원 안팎 적자를 내거나 개점휴업 상태다. 영남에는 사천∙김해∙울산∙포항∙대구가 공항벨트를 이루고 있는데 가덕도와 군위에 또 공항이 건설되고 있다. 호남에는 여수∙무안∙광주∙군산에 공항이 있다. 한때 김제에 공항을 건설한다며 480억 원의 예산을 낭비했는데도 새만금에 또 공항을 추진하고 있다.

영남과 호남에 특히 적자 공항이 많은 이유는 우리 정치 환경에서 발언권이 센 지역이기 때문이다. 신군부 출신인 유학성 씨가 예천 국회의원일 때 개항한 예천공항, 울진 출신에 DJ정권 실세인 김중권 씨가 추진한 울진공항은 민간공항 기능을 상실했다. 마치 버스정류장 만들 듯 공항을 촘촘히 건설하는 일은, 자가용차 대중화 시대에,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가 불가능한 항공교통의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바보짓이다.

양양공항은 3589억원을 들여 중형 항공기 연간 4만 3천 회 이착륙이 가능한 국제공항으로 홍보하며 2002년 완공됐으나, 2009년 영국 BBC가 ‘유령공항’(Ghost Airport)이라 보도했다. 2007년에는 하루 평균 117명이 이용했는데 공항공사∙세관∙출입국관리소 등 상주 직원이 82명이었다. ‘1 대 1 개인과외’를 방불케 할 정도의 고비용 구조여서 지난해 말 저가항공사 플라이강원마저 파산해 진짜 유령공항이 됐다.

 

개항 뒤 ‘파리 날리는’ 양양국제공항. 경비행기 연습비행장으로 활용되다가 플라이강원이 설립돼 매일 제주를 오갔으나 그마저 파산해 말 그대로 ‘유령공항’이 됐다. © 이봉수 PPT 자료

해마다 40여 차례 비행기 탈 때마다 불안

제주에 사는 나는 육지 강연을 다니느라 1년에 편도 기준으로 40여 차례 비행기를 타는데 탈 때마다 불안을 느낀다. 제주-김포 노선은 세계에서도 가장 붐비는 노선이며 밀릴 때는 1분 42초마다 비행기가 뜨거나 내린다고 한다.

공중대기를 뜻하는 ‘홀딩 패턴’(holding pattern)도 자주 걸린다. 비행기 창문 밖으로 한라산이 보였다가 바다가 보였다가 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홀딩 패턴에 걸린 건데, 안내 방송도 없어 더 불안해진다. 아는 게 병이라고, 나는 백령도와 백아도 해군 레이더기지에 복무할 때 전방항공기유도(FAC: Forward Air Control) 장교 훈련을 받았는데, 공항이 붐비면 사고위험은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주공항의 만성 체증 현상은 제주를 다녀가는 비행기가 일정에 쫓기는 결과를 빚어 정비 불량 등으로 이어진다. 사고기도 48시간에 13차례 운항했는데 혼잡한 제주공항에 들르면서 비행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북풍에 약한 동서활주로만 운용하는 제주공항

특히 제주공항은 동서 활주로여서 겨울에 북풍이 불면 옆에서 불어 닥치는 측풍을 받게 되는데, 제일 위험한 바람이 이것이다. 또 풍향이나 풍속이 급격히 바뀌는 윈드시어(wind shear)는 비행기를 추락시킬 힘이 있다. 제주공항에는 3180m 동서 활주로가 있고, 남북 활주로도 있지만 1900m 밖에 안 돼 이륙만 가능하고 비상시 보조활주로 구실만 한다.

 

제주공항은 3180m 길이 동서 활주로가 있고, 남북 활주로도 있지만 길이가 1900m로 짧고 두 활주로가 교차하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거의 쓸모가 없다. © 네이버 지도

일본 항공사들은 제주 취항 포기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로 은퇴한 뒤 저가항공에서도 5년간 조종간을 잡은 고교동창생은 윈드시어 등이 위험하고 공항이 복잡해 일본 항공사들은 몇 차례 체크 비행을 한 뒤 제주 취항을 포기했다고 전했다. 그는 사고가 난 무안공항도 새떼가 많이 출몰해 착륙하기 싫은 곳이라고 말했다.

“사고기와 같은 기종을 몰고 무안공항에도 여러 번 이착륙해봤지. 근데 아침과 저녁에만 몇 대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데 무슨 국제공항이야. 지금이라도 빨리 광주공항과 무안공항을 합쳐야 해. 항공사 직원들이 두 공항을 왔다 갔다 하며 근무하는데 제대로 대비가 되겠어?”

‘규모의 경제’가 살아나야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고가 난 뒤 밝혀졌지만 무안공항 조류퇴치팀은 팀이랄 것도 없는 1인이었다. 사고 현지에서는 제자들 10여 명이 취재하고 있는데 <경향신문> 기자가 되기 전 한미리스쿨에 와서 한 달 개인지도를 받은 제자 오동욱이 사고 현장 위로 마침 새떼가 날아가는 사진을 찍어 르포 기사를 썼길래 “사진을 한 장 줄 수 있냐”고 부탁했더니 보내주었다.

사고 난 시간에 새떼 이동하는데 퇴치요원은 1인

오 기자와 동반한 주용기 생태문화연구소장은 철새들이 아침저녁에 먹이활동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비행시간과 겹친다고 말했다. 오 기자는 그 자신이 아마추어 조류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2021년 여름 한 달을 공주 금강변에서 잠복하며 물떼새가 알을 깨고 나와 날기까지 과정을 관찰한 자연 다큐 <물떼새, 날다>를 출품해 KBS에 방영되고 시청자미디어재단에서 환경 주제 영상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경향신문 오동욱 기자가 보내준 오리떼 사진. 30일 오전 8시 30분쯤 무안국제공항 사고 현장 위로 가창오리떼가 날아가고 있다. © 오동욱

국내 저비용항공사는 2005년 제주항공 출범 이래 정부의 무더기 허가로 9개까지 늘었는데, 이 숫자는 국토 면적이 98배인 미국과 같다. 건실한 곳도 있지만 과당경쟁이 벌어지면서 상당수 항공사는 정비 분야 노동자를 줄이거나 처우를 박하게 해 결국 안전비용을 줄여 손실을 메우는 형국이다. 항공기 월평균 운항시간은 제주항공이 418시간으로 가장 길고, 티웨이 386시간, 진에어 371시간 등으로 저비용 항공사 비행기들이 혹사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스트레일리아 콴타스항공은 안전을 상표로 내세워 성공했다. ‘2013년 안전한 항공사 순위’에서도 1위를 한 콴타스는 1951년 이래 사망사고가 없었다. 콴타스는 비행기 평균연령을 6~7년 정도로 유지한다. 아직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계적 결함에 의한 사고는 헌 비행기를 사거나 빌려 간 데서 나기 십상이다. 항공데이터업체 시리움에 따르면 이번 사고 비행기는 15년 됐으며, 2017년에 유럽 저비용항공사인 라이언에어에서 임대한 것이다.

세월호 침몰도 규제완화가 요인이었다. 일본은 선박 내구연한이 20년으로 돼 있는데 한국은 20년에서 30년으로 늘려주었으니 폐선을 들여와 곱게 페인트 칠해 다니다가 사고를 친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안전∙환경∙인권∙노사 등에 관한 규제는 더 엄격히 적용하는 추세인데, 우리는 안전 등 공익을 희생해 사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역행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퇴행을 막아야 할 언론이 대부분 규제완화를 금과옥조로 여긴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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