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전사 직업군인에게 직장협의회가 허용됐다면?

구석구석 노동조합으로 민주주의 지키자 

노동조합 보호막에서 비켜난 작은 사업장 노동자

10인 미만 사업체 800만 노동자에게 민주주의를

폭력 갑질 성희롱은 광장 아닌 사업장 문제이기도

2024-12-25     손정순 노동판
손정순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연구위원

12월 3일 밤 10시 넘어서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필자는 퇴근하는 전철 안에서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짜 뉴스인가?’라는 의심도 한순간, 스마트폰을 떨어뜨릴 정도로 모골이 송연해졌다. 필자가 민들레에 첫 기고한 글에서 윤석열 정부를 한국 현대사에서 ‘유례없는 퇴행과 반동’이라 얘기했지만 정말이지 이렇게까지 나락으로 갈지는 몰랐다.

지금은 옛날 뉴스를 검색해야 볼 수 있는, 그래서 머릿속에서나 생각할 수 있었던 ‘계엄(戒嚴)’이라는 단어를 2024년을 보내는 시점에 눈앞의 현실로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도서관 가기 위해 자주 들락거렸던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군 헬기가 날아다니고, 무장군인이 유리창을 부수고서 국회 본관에 진입해 활보하고, 장갑차가 여의도 국회의사당 쪽으로 집결하는, 44년 전 광주의 현실 직전까지를 TV로 지켜봤다.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시민의 응원에 힘입어 국회의원 190명이 계엄 해제 결의안을 가결해 다행이었다. 더 인상적인 장면은 ‘죄송합니다’라는 인사까지 하면서 철수하는 무장군인의 태도였다.

“노조가 지켜주리라”는 믿음을 모든 노동자에게

이후의 결과는 알다시피 윤석열 탄핵소추로 귀결됐다. 일단 한 국면을 넘긴 것뿐이지만 노동연구자인 필자는 12.3 내란 사태 이후 2주간 생경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2030세대 청년 여성의 대거 참여, 응원봉 물결, 콘서트장 같은 탄핵 집회의 모습도 낯설었지만 정말 낯선 것은 인터넷에 떠도는 '신변이 위험하다고 느낄 때는 네임드(유명한) 노조 깃발 근처에 있으라'는 탄핵 집회 게시글이었다.

2016년 늦가을, 박근혜 탄핵 시위에서 ‘노조 깃발 내려라’라는 야유 섞인 고함을 들었던 필자로서는 생경할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한국 사회 노동조합이 작금의 탄핵 국면에서 우호적인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다는 한 단면이었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게시판 글이지만 탄핵 집회 현장이 아닌 노동 현장에서 노조가 나를 지켜주리라는 생각, 믿음을 노동자 모두가 현실에서 누리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이전 글에서 언급한 작은 사업장 노동자는 노조 깃발을 들고 싶어도, 노조를 만들거나 가입하고 싶어도 구조적으로 안 될 수밖에 없는 조건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사업장이 작아서 노조를 만들어 봐야 소용이 없다는 시화공단 노동자의 생각도 이런 구조적 조건에서 비롯된 인식이다.

 

12월4일 새벽 국회에 진입한 계엄군. 연합뉴스

작은 사업장 노동자 권리 제약하는 교섭창구 단일화 조항

사업장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직면한 가장 큰 장벽은 바로 노동조합법이다. 한국의 노동조합법은 노동조합 제1의 활동인 단체교섭을 사실상 기업별로만 하도록 제약하고 있다. 복수노조 허용과 동시에 도입된 교섭창구 단일화 조항 때문이다.

2011년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만들어진 교섭창구 단일화 조항은 복수노조와 사용자 간 교섭 효율성 제고를 위해 도입되었다. 도입 당시부터 교섭 대표노조(다수 노조)가 아닌 소수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박탈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왔지만 교섭창구 단일화 조항이 야기하는 문제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단일화해야 하는 교섭창구의 기준을 사업장 단위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를 아우르는 초기업적 의제를 논의할 초기업적 교섭 구조 창출을 억누르고 있다. 사업장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노동조합 단체교섭의 효능감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는 셈이다.

시화공단 작은 사업장 노동자도 두 명 이상만 되면 노조를 만들 수 있고, 산별노조에 개별적으로 가입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교섭은 복수노조이든 아니든 사실상 사업장 단위로만 해야 한다. 초기업적 교섭이 안 되기에 전체 조합원 규모는 미미하더라도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소규모 사업장별로 교섭을 해야 한다.

임금은 ‘최저임금 시급+(약간의)α’라는 것을 알기에 임금 이외의 다른 노동조건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도 직원 10명 규모의 사장님과 무슨 의제를 놓고서 교섭을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지난 글에서 언급한 공동휴게실, 공동식당 문제를 소규모 사업체 사장님과 교섭해 봐야 교섭 성과는 ‘0’일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조합원 입장에서는 노동조합 필요성이 떨어진다. ‘노동조합에 가입해 봐야 소용없네’라는 인식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규모 사업장의 노사가 스스로 교섭하고 해결해 나갈 수 없는 문제는 지역 차원에서, 업종 차원에서 논의·협의해야 하지만 지금의 노동조합법 교섭창구 단일화 조항은 사용자가 동의하지 않는 한 이 문제를 기업별로만 해결하도록 사실상 강제하고 있다. 기업별로는 해결 불가능한 주제를 말이다.

그럼 누가 공단 차원에서, 지역 차원에서 노동조합과 교섭하고 협의·합의를 해야 할까?

시화공단은 국가산업단지이기에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입주기업협의회를 의무적으로 구성하도록 되어 있다. 시화공단 입주기업협의회는 ‘정부 vs. 산업단지 사업체’ 간 관계에서 정부 산업정책의 전달체계 역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업체 이해를 대변할 뿐이며 직접 노동조합을 대면할 법적 근거는 물론이고 의지조차 없다. 당연히 개별 사업장을 넘어선 공단 차원의 노사 간 교섭에 소 닭 쳐다보듯 무관심하다.

시화공단 같은 국가산업단지는 ‘한국산업단지공단’이 관리하는 곳이기에 한국산업단지공단을 대상으로 교섭까지는 아니더라도 협의·논의 정도는 요구할 수 있지만, 결과는 동일하다. 한국산업단지공단도 산업통산자원부 산하 기관으로서 철저하게 자본 편에 서 있다. 공단 차원의 문제이지만 휴게실을 만들고 공동식당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노-사가 알아서 하는 문제라면서 뒷짐 지고 있는 것이다.

 

12월 11일 오후 광주 서구 치평동 국민의힘 광주시당 앞에서 열린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총파업대회에서 조합원들이 윤석열 즉각 탄핵ㆍ구속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에서 사문화된 유럽식 단체협약 효력확장제

한편으로는 노동조합을 희망하는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에게 지역 주력 사업체의 단체협약 중 일부를 적용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시화공단에서 가장 큰 전자사업체인 인지컨트롤스의 단체협약 내용 중 일부를 시화공단 전자업종 노동자에게 일괄 적용하는 것이다. 단체협약 효력확장제이다. 해외, 특히 유럽의 많은 국가에서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 보호를 위해 많이 활용되는 방안이다.

프랑스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한국보다도 낮은 8%에 불과하지만 단체협약을 적용받는 노동자는 80%를 넘는다. 특정 산업·업종의 산별 최저임금, 고용안정 등 단체협약 주요 조항을 해당 산업·업종 노동자에게 일괄 적용하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단체협약 효력확장제도가 있다. 해외처럼 산업·업종 차원이 아닌, 지역에 한정해서 매우 엄격한 조건하에서만 가능하다. “하나의 지역에 있어서 종업하는 동종의 근로자 3분의 2 이상이 하나의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게 된 때에는 행정관청은 당해 단체협약의 당사자의 쌍방 또는 일방의 신청에 의하거나 그 직권으로 노동위원회의 의결을 얻어 당해 지역에서 종업하는 다른 동종의 근로자와 그 사용자에 대하여도 당해 단체협약을 적용한다는 결정을 할 수 있다.”(노동조합법 제36조)고 되어 있지만 특정 지역에서 동종 근로자 3분의 2 이상이 하나의 단체협약을 적용받는 경우는 한국에서는 전무하다고 봐도 된다. 이미 단체교섭을 사실상 기업별로 강제하고 있기에 ‘지역’ 차원에서, 사업장을 불문하고 동일 업종 노동자 2/3가 단일한 단체협약을 적용받는 초기업 노조가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이다.

작은 사업장 노조 조직화를 둘러싼 법·제도적 환경이 구조적으로 열악하더라도 한국의 노동조합은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 조직화를 포기하거나 방치할 수는 없다. 꾸준한 노동조합 조직화만이 노동자에게 불리한 법·제도를 바꿀 수 있는 근본 동인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의 거부권 행사로 아직 입법화되지는 못했지만 노조법 2, 3조 개정안도 지난 20여 년간 비정규 노동자의 노동조합 조직화와 요구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그럼에도 작은 노조 조직화 멈출 수 없는 이유

조직화 필요성은 인정하더라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자조 섞인 한탄은 작은 사업장 노동자 조직화 사업에서 항상 제기되는 비판이자 한계이다. 실제 노동조합 간부 중에서는 ‘비용 vs. 효율’이라는 관점에서 중·대형 사업장 노동자 조직화에 주력하자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를 위해 투여되는 비용과 노력은 동일하더라도 조직되는 조합원 규모는 작은 사업장이 10명이라면 중·대형 사업장은 몇백 명, 심지어 몇천 명에 이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간부라면 누구라도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는 주장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지언정 한국 사회 노동조합이 작은 사업장 노동자를 조직해야 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대부분 무노조인 10인 미만 사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800여만 명에 이르고(2024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자료), 임금이 대공장의 1/2에도 못 미칠 정도로 낮기 때문만은 아니다. 필자가 예전 글에서도 썼던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조합 없는 민주주의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두 번씩이나 대통령을 탄핵하고 내란범 윤석열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기 일보 직전의 저력을 보이는 한국 사회 민주주의이지만 광장과는 다른, 미시적인 권력관계에서 한국 사회 민주주의는 여전히 후진적이다. 가족 같은 작은 사업장이라지만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사장님은 여전히 있다. 여성 노동자에 대한 성차별은 OECD 국가 중에서 부동의 No.1이다. 법에서는 모성보호와 성희롱, 직장갑질을 금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작은 사업장의 여성 노동자가, 청년 노동자가 분노하고 좌절을 경험하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집으로 퇴근하지 못하고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 812명 중 70%는 작은 사업장 노동자이다. 이 모든 일은 광장이 아닌, 매일같이 출퇴근하는 작은 작업장에서 수시로 벌어지는 일이다. 누가 이들에게 깃발이 되어주겠는가? 필자는 노동조합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국회 앞에서 응원봉을 들고 윤석역 탄핵을 외치는 시민들. 연합뉴스 

노동조합 통해 동네방네 여의도 응원봉 켜지도록

2018년 여름, 필자가 만났던 일본 노동연구자의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했던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역량을 인정하지만, 자신도 아베정권을 끌어 내리고 싶을 정도로 싫지만, 그렇더라도 한국이 부럽지는 않다는 얘기였다. 일본 대학원에서 조교이자 연구자이자 대학노조 조합원인 자신은 한국처럼 지도교수님 말 한마디에 밤새도록 1만 페이지 자료를 복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광장에서의 탄핵 요구만큼이나 보통 평범한 노동자가 일하는 작업장에서 민주주의가 필요한 까닭이다. 12월 14일 여의도를 물들인 광장의 응원봉은 광장에서만 불 밝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속으로 ‘동네방네, 구석구석’ 스며 들어가야 한다. 노동조합은 동네방네 구석구석 응원봉을 환하게 켤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유력한 뒷배이자 주춧돌이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와 작업장 민주주의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노동조합은 필요하다. 한국에서는 감히 생각도 못 하지만 프랑스,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 등 서유럽 국가들 중 상당수는 파업권까지는 인정되지 않더라도 군인도 노조에 가입하거나 직장협의회를 구성할 수 있다.

이들 기구·조직은 주로 군인의 처우와 직무 수행, 근무 여건, 안전 문제, 고충 처리 등을 두고 정부와 협의하는 역할을 한다. 대부분 직업군인제인 나라이기에 징병제 국가인 한국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만약에 한국에서 노조와 같은 군인의 집단적 이해대변체가 존재했다면 12.3 내란 사태가 가능했을까?

단언컨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국회에 난입한 특전사는 징집된 일반 사병이 아닌 하사, 중사, 상사 등 직업군인으로 조직된 특수부대이다. 만약에 특전사 직장협의회가 있었다면 상관의 명령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특전사 군인이 총을 들고서 국회 본관에 난입했을까?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 시작부터 국회 봉쇄·국회의원 체포를 위한 출동 명령을 거부했을 것이며, 12.3 내란 사태는 시작과 동시에 좌초됐을 것이다. ‘죄송하다’며 철수하는 특전사 군인이 한 명만은 아니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씨줄날줄처럼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자 한국 사회 모두에게 노동조합이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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