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는 시간
유대인 도살자가 평범한 인물이었다는 사실
왜? 어떻게? 물음에서 추출한 악의 평범성
12.3 쿠데타 주역들의 정신상태는 어떠할까
‘12·3 내란’에 반발해 고위 공무원직을 내던진 이가 있다. 류혁 법무부 감찰관이 그이다.
그는 비상계엄이 선포된 날 밤 법무부 장관 주재로 계엄 선포에 따른 후속 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긴급회의에 갔다가 사직서를 냈다.
그는 엠비시와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판단이 헌법에 위반하고 법률에 위반하고 비상식적”이지만 “대한민국 공무원이라면 (계엄에 따른 지시를 계속 복명하는) 그런 역할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그(계엄) 뒤에 공무원으로서의 통상적인 직무 수행에 해당하는 경우라도 그걸 따르는 거는 극단적인 예를 든다면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을 운영하는 간수 같은 입장이 될 수가 있다"며 자신은 그런 것을 감당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의 발언 가운데 “원래 이런 거대한 악이라든가 거대한 불법 행위는 그냥 따라가고 있는 조용히 침묵하는 그런 사람들, 그리고 조용히 '그냥 뭐 나는 내 임무를 수행했노라', 이런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거”라는 대목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한길사, 2006)의 핵심을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기 때문이다.
국회 결의로 비상계엄이 해제돼 쿠데타 진행이 일단 멈춘 뒤 명령 계통 상의 공무원과 군인들은 지시의 일부를 따르지 않았다며 ‘소극적인 항명’을 주장했다. 하지만 류 씨 외에 지시를 따를 수 없다며 사표를 낸 계통선 상의 인물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없다. (이 점에서 나는 류혁 전 감찰관을 ‘의인’이라고 부른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기에 ‘윤의 쿠데타’가 아니라면 정년퇴임했을 공무원을 ‘의인’ 반열에 올려놓았을까? 책을 펴낸 한길사에 따르면 쿠데타 이후 열흘 간(12월 4~13일) 서점으로 나간 부수가 1499부. 쿠데타 이전 열흘 간(11월 24~12월 3일) 131부에 비해 10배가 넘는다.
책은 나치 하 유대인 도살자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 참관기다.
아이히만은 나치 패망 이후 체포돼 수용소에 수감돼 있던 중 그곳을 탈출해 함부르크에서 50마일 떨어진 황야에서 벌채 노동자로 위장해 4년 간 숨어 지냈다. 1950년 친위대 퇴역군인 조직인 오데사의 도움으로 오스트리아를 거쳐 이탈리아로 넘어갔다. 그곳에서 그의 신분을 아는 신부가 리하르트 클레멘트라는 이름의 가짜여권을 만들어 남미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보내줬다. 아르헨티나 식으로 리카르도 클레멘트로 불리게 된 그는 1952년 아내와 아이들을 불러들여 아돌프 아이히만의 동생 즉 제 자식의 삼촌이 되었다. 메르세데즈벤츠 공장 기능공으로 취업해 나중에 공장장이 됐다. 1960년 5월 11일 이스라엘 모사드 요원에 납치돼 1961년 4월 이스라엘 법정에 세워졌다. 114회의 공판 끝에 그해 12월 15일 수백만 명의 유대인 살상 등 15개 죄목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변호인은 아이히만이 국가적 행위를 수행했으며, 그에게 일어난 일은 미래에 어느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어서, 희생양에 불과하다는 요지로 변호했다. 이듬해 항소심을 거쳐 아이히만은 사형이 확정돼 5월 31일 교수형이 집행됐다.
“아이히만은 아주 근엄한 태도로 교수대로 걸어갔다. 붉은 포도주 한 병을 요구했고 그 절반 을 마셨다. 두건을 쓰겠냐고 물었을 때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러고는 ‘잠시 후면, 여러분, 우리는 모두 만날 것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운명이다. 독일 만세, 아르헨티나 만세, 오스트리아 만세, 나는 이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별 주접을 다 떤 그를 두고 한나 아렌트는 이렇게 썼다. “마지막 순간에 그가 인간의 사악함 속에서 이뤄진 오랜 과정이 가르쳐준 교훈을 요약하는 듯하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책은 아이히만의 죄상을 시간 순으로 따지는 공판의 진행에 따라 그가 어떻게 유대인 전문가로 발탁돼, 유대인의 추방, 수용, 학살에 간여했는가를 기술하고 상황변화에 따라 그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즉 자신의 행위를 어떻게 합리화해 갔는지를 추적한다. 아렌트는 재판정의 아이히만을 두고 “중간 정도 체격에 호리호리하며 중년으로, 근시에다 희끗희끗한 머리와 고르지 않은 치아를 지니고 있었다”며 그가 뿔이 돋은 괴물이 아닌 ‘보통사람’임을 말한다.
아이히만과 그의 변호인은 애초 법정에 설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먼저 변호인의 주장. “피고는 나치 법률 체계 하에서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고, 그가 기소당한 내용은 범죄가 아니라 국가적 공식행위이므로 어떤 다른 나라도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다. 또 복종하는 것은 그의 의무였고 이기면 훈장을 받고 패배하면 교수대에 처해질 행위를 했을 뿐이다.” 아이히만의 주장. “유대인을 죽이는 일에 나는 아무 관계가 없다. 어떤 인간도 죽인 적이 없으며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 난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그 일(수백만 명의 학살)은 그냥 일어났다.” 그를 진찰한 정신과 의사 6명은 모두 그를 정상으로 판정했다. 특히 그의 아내와 아이들, 부모, 형제자매, 친구들에 대한 태도는 ‘정상적일 뿐 아니라 바람직’하다고 판정했다.
아이히만은 북오스트리아 전기설비회사 세일즈맨, 독일 린츠지역 감압정유회사 외판원으로 일하다가, 1932년 4월 에른스트 칼텐브루너의 권유로 나치당에 가입했고 친위대에 들어갔다. 칼텐브루너는 나중에 제국안전부 본부(우리식으로 보면 국정원, 정보사)의 우두머리가 된다. 제국안전부 6개 주요부서 가운데 하인리히 뮐러가 지휘하는 제4국에서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담당하는 B-4 부서 책임자로 임명받는다. 그 즈음 그가 읽은 책은 <유대인의 국가> <시온주의의 역사>. 한 번도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한 그에게 두 권에 이르는 독서는 ‘상당한 위업’이었고, 그는 유대인 전문가가 됐다. 1938년 3월 아이히만은 빈에 보내져 실습을 하게 된다. 8개월 동안 유대인 4만5000명을 국외 방출했다. 같은 기간 독일에서 1만9000명이 떠난 것을 감안하면 혁혁한 공로였다. 18개월 동안 모두 10만5000명이 ‘정화’됐다. 유대인들은 이민 가기를 원했고 아이히만은 그들을 돕기 위해 그곳에 있었다. 이민 관련부서를 한 지붕에 모아 원포인트 솔루션을 제공했다. 그들을 돈 한 푼 없이 떠나보낼 수 없어 지참금을 주어 보냈다. 수용국가의 돈을 예비 이민자들한테 팔았는데, 시장가 4.20마르크인 1달러를 10마르크, 또는 20마르크로 교환해 줬다.
지은이 한나 아렌트는 관청언어를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아이히만의 언어규칙에 주목한다. “아르헨티나나 예루살렘에서 회고록을 쓸 때나 검찰, 또는 법정에서 말할 때 그의 말은 언제나 동일했고 똑같은 단어로 표현됐다. 지은이는 이를 두고 그의 말하기 무능력은 그의 생각하기 무능력,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것과 매우 깊이 연관돼 있음이 분명하다. 그와는 어떤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그가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말과 다른 사람들의 현존을 막는, 따라서 현실 자체를 막는 튼튼한 벽으로 에워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빈에서의 공로로 아이히만은 이주와 소개의 권위자, 대가로 인정받아 1937~1941년 네 차례 승진한다. 1939년 3월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에 진입해 보헤미아와 모라비아를 보호령으로 만들면서 아이히만은 프라하에 유대인 이주본부를 만들도록 임명받는다. 문제는 전쟁 중에 국외 이주가 어렵게 된 것 외에 제국이 폴란드를 점령하면서 처리해야 할 유대인 200만~250만 명이 새로 생겨났다는 점. 폴란드 동부지역, 즉 러시아 접경지가 이주지로 결정됐다. 당시 폴란드는 독일과 러시아가 분할 점령한 바, 독일 점령지역은 제국으로 편입된 서부지역과 비편입 동부지역으로 구분돼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와 전쟁이 ‘청천벽력처럼’ 발발하면서 실패한다. 대신 검토된 것이 아프리카 동남부 마다가스카르 섬으로의 집단 이주. 이 역시 검토 단계에서 그친다. 유대인을 죽이지 않고 배로 운송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게 된 것. 결국 ‘상호 이익을 추구하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집단수용 시대’로 이행하게 된다. 당시 생산된 문서에서는 ‘최종목표’가 무엇인지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최상층에서의 결론은 이미 내려진 상태였다. 노동을 통한 살인이 그것. 수용소 인근에 지사를 차려놓고 노예 노동자를 이용하여 이익을 보려는 기업체들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아렌트는 또 한 차례 나치 문서들에서 보이는 언어규칙에 주목한다. 상관 하이드리히가 아이히만에게 전달한 히틀러의 말은 ‘유대인의 신체적인 절멸’. 하지만 문서에서는 학살을 ‘최종 해결책’ ‘소개와 특별취급’, 이송을 ‘재정착’ ‘동부지역 노동’이라는 암호 같은 이름을 붙였다. 이러한 언어의 운용은 이송과 학살 과정에서 힘을 발휘했다고 지은이는 평가한다. 관련조직 간 질서를 유지하고 담당자들이 제정신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며 언어 운용자, 즉 ‘비밀을 가진 자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암호가 되었다고 했다.
나치 고위층에서 고안한 슬로건, 예컨대 ‘나의 명예는 나의 충성심’이라든지, 학살을 염두에 둔 ‘미래 세대들이 다시는 싸울 필요가 없는 전쟁’ 등은 양심을 어떻게 극복하는가를 넘어 정상적인 사람들이 육체적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는데서 오는 동물적인 동정심을 극복하는데 일조하였다. 살인자들은 ‘자신의 어깨에 놓인 임무가 얼마나 막중한가’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최종 해결책으로 총살, 즉 폭력을 통하지 않고 가스공장을 선택한 ‘안락사 계획’도 같은 맥락이다. ‘불필요한 고통’을 피하라는 지시가 조금 반어적이지 않는가라는 심문관의 질문을 아이히만은 이해하지 못했다. 용서할 수 없는 죄는 사람들을 죽인 게 아니라 불필요한 고통을 일으키는 것이라는 인식이 그의 마음속에 뿌리내려 있었다고 아렌트는 지적했다.
아이히만이 ‘나만 그런 게 아니다’라며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일말의 의구심도 지우게 된 것은 반제회의 참여와 유대인 협력자들의 존재였다.
반제회의는 1942년 1월에 열린 국가 차관회의를 말한다. 그 동안 나치당원 중심으로 실행되던 ‘최종 해결’을 국가 차원으로 확대하기 위해 고위 공무원들의 협조를 구하려던 자리였다. 아이히만은 여기에 서기로 참가하게 되는데, 난관에 부닥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아주 순탄하게 풀렸다. 참석자들은 자신의 견해를 표명하는데 그친 게 아니라 주도면밀하게 자료를 준비해와 구체적 제안을 했다. 한 시간 내외의 회담 뒤 이들은 점심식사를 하며 편안한 사교모임을 가졌다. ‘육두품’ 아이히만에게 ‘피투성이 문제’에서 주도권을 갖으려 경쟁하는 ‘진골성골’ 고위직들 모습은 진기한 경험이었다. “당시 나는 일종의 본디오 빌라도와 같은 감정을 느꼈다. 모든 죄에서 자유로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후 아이히만의 임무는 쉬워지고 일상적이 되었다.
유대인의 최종해결은 유대인의 협조 하에 이뤄졌다. 지역마다의 유대인 공동체의 랍비들은 유대인 명부를 작성하고, 동족의 추방과 학살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추방자들로부터 돈을 징수하고, 소개된 아파트 가격을 계산하고, 유대인 체포에 도움을 주고 그들을 기차에 태우도록 경찰력을 제공했다. 그들에게는 유대인의 정신적 물질적 부, 유대인의 인력에 대한 절대적인 권력을 부여받았다. 스스로 침몰하는 배의 선장에 비유하여 100명의 희생자를 내고 1000명을 구원하는 느낌을 가졌을 법한데 진실은 끔찍했다. 헝가리 카스트너 박사의 경우 47만 6000명의 희생자를 내고 1684명을 구했다. 수용자들에게 ‘탈출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던 테레지엔슈타트 수용소 유대인위원회 위원 왈 “탈출한 사람들 가운데 50%가 체포되거나 살해되었다. 그들은 어디로 도망갈 수 있었나?” 탈출하지 않은 사람 99%가 살해되고, 자신은 도망가 살아남았으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아렌트의 평가는 냉정하다. 유대인 조직이 없었더라면, 또 지도자가 없었더라면 혼란과 수많은 불행이 있었겠지만 희생자가 400만~600만에 이를 리 없었을 거다.
나는 책에서 스치듯 언급한 ‘내면적 이주자’에 주목한다. 제3제국에서 고위직에 있었던 자들, 전쟁이 끝난 뒤 자신들은 나치 정권에 대해 항상 ‘내면적으로 반대했다’고 말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들의 말이 진실인지 알 수 없으나 히틀러 치하에서 ‘내적 반대’가 그 어떤 비밀보다 지켜내기가 쉬웠다는 것이다. 자칭 내면적 이주자가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여느 나치스보다 훨씬 더 두드러지게 활동해야 했다고 고백하더란다. 지은이는 적어도 5만 명을 학살하는데 관여한 돌격대 멤버가 내면적으로 반대했다고 말한 것을 두고 ‘진짜 나치스의 눈에 알리바이를 제공하는데 5만 명의 죽음이 필요했던 모양’이라고 썼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일종의 항아리 이야기다. 고요할 때는 항아리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다. 그냥 평범한 항아리다. 내용물이 드러나는 것은 세상이 요동쳐 항아리가 흔들릴 때다. 안엣것이 쏟아지면서 내용물은 물론 항아리의 정체가 드러난다. 어쩌면 어디에 쏟아지느냐에 따라 달리 평가되는지도 모른다. 12.3 쿠데타가 곧 심판대에 오를 것이다. 우두머리와 그 추종자들의 행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다. <서울의 아이히만>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보다 더 흥미로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