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의 사각지대에 있는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자료를 보면 2024년 8월 한국 사회 노동자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2.5%이다. 정규직은 19.4%, 비정규직은 2.8%이다. 노동조합 조직률 수준을 놓고 보면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1/7 수준에 불과하다.
동일한 자료로 20년 전인 2004년 8월,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조직률은 3.1%였다. 지난 20여 년간 한국 노동사회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조직률은 2%대 후반에서 3%대 초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조직률은 비단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에서도 정규직과 비교 시 확연히 낮다. 정규직에 비해서 고용이 불안하기에 낮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요구의 정당성 확인한 2010년 대법원 판결
지금의 한국 사회 비정규직 노동조합 양상이 만들어지게 된 시기는 1997년 IMF 경제위기 직후인 2000년대 초부터이다. 한국통신, 우리은행 계약직 등 직접고용 비정규직에서부터 에어컨 제조사업체인 캐리어,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비정규직, 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레미콘 노동자 등 특수고용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2000년대 초부터 비정규직 노조 조직화가 활발히 전개되었다. 특히 현대차로 대표되는 제조업 대공장 내 사내하청 노동자의 노조 조직화와 투쟁이 한국 노동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정규직 중심의 강력한 노조가 존재하기에 정규직 노조의 암묵적 지원・연대에 기반해 노조 조직화와 투쟁을 전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구는 원청인 현대차 자본을 상대로 한 정규직화였다. 제조업 사내하청은 파견법이 금지한 불법파견으로 법에 따라 불법파견된 노동자를 실제 사용자인 현대차가 직접고용하고 정규직화하라는 요구였다.
한마디로 ‘법대로 하자’는 요구였다. 하지만 지난 글에서도 썼던 것처럼 간접고용 비정규직이기에 현대차 자본은 ‘사내하청 노동자의 사용자가 아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의 요구를 간단히 거부했다. 농성에서부터 파업과 분신에 이르기까지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은 지난했지만 돌파구는 현대차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한 사내하청 노동자가 현대차의 직원이라는 2010년 대법원 판결이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의 요구가 정당한 요구였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법원도 확인한 것이다.
현대차 사례 보면서도 침묵하는 중소 사업장 사내 하청 노동자들
또다시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의 총파업과 이어진 정규직・비정규직 노조와 현대차 간의 지리한 교섭 끝에 2014~2016년에 걸친 특별고용 합의를 통해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중 상당수는 점진적으로 현대차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엄밀히 말하면 정규직 전환이 아닌 현대차에 신규 채용되었다.
국내 제조업 대공장 내 사내하청 노동자의 노조 조직화와 정규직 전환은 비록 자회사라는 왜곡된 한계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더욱 확대되었다. 취임 후 첫 외부 방문 일정이 인천국제공항인 것에서 드러난 것처럼 문재인 정부의 노동 1호 공약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였기 때문이다. 이후 사내하청 노동자만으로 공장이 돌아가는 현대모비스나 위아와 같은 대규모 모듈 부품사에도 대대적으로 노조가 결성되었다.
필자는 2010년 현대차 비정규직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보면서 중소 제조사업장의 사내하청 노동자는 어떻게 반응할까 눈여겨보았다. 현대차가 위치한 울산 공장 근처에는 규모 수백 명에 육박하는 덕양, 세종, 한국프렌지 등 1차, 2차 벤더에 해당하는 현대차 하청업체들이 있으며, 이들 업체에도 사내하청 노동자가 상당수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용했다.
2013년부터 시화공단 내 중소 제조사업장 노동자의 노동실태를 조사하면서 그 이유를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바로 노동조합이 없다는 점이다. 현대차에는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조합이 자리 잡았고, 2003년 결성된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사내하청 노동자의 요구를 노조의 요구로 제기하였기에 왜곡되고 굴절된 형태일지라도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노동조합 불모지인 시화공단에는 무노조 사업장이 거의 대다수이다. 14만여 명이 일하고 있는 산업단지이지만 노동자의 집단적 요구는 거의 0에 가깝다.
노조 만들기 쉬운 나라에서 30인 미만 사업장 노조 조직률은 0.1%
사실 노동법으로만 보면 한국만큼 노동조합 만들기 쉬운 나라도 없다. 2명 이상이 모여서 설립총회를 열고, 노동조합법 규정에 따라 신고 서식과 설립총회에서 제정된 규약을 첨부해 고용노동부 장관이나 지자체장에게 제출만 하면 된다. 노동자인지 개인사업자인지 법적으로 논란이 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만 아니라면 웬만하면 노조 설립필증이 교부된다. 미국처럼 노조 만들기 위해서 인준 투표(certificate vote)를 할 필요도 없다.
총회를 하고, 규약을 제정하는 것이 어렵거나 힘들고 귀찮다면 ‘있는’ 산별노조에 가입원서를 제출하면 된다. 산별노조 산하의 사업장별 지회, 분회 조직들은 모두 노조를 ‘결성’한 것이 아니라 ‘있는’ 산별노조에 ‘가입’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소규모 사업장 노조 조직률은 매우 낮다. 노동조합 조직 현황을 파악하는 고용노동부의 ‘전국 노동조합 조직 현황’ 자료를 보면 2022년 기준, 규모 30인 미만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은 0.1%이다.
미미하지만 시화공단과 반월공단에도 노조 조합원이 있다. 시화・반월공단 노동자를 주 조직 대상으로 하는 금속노조 시흥안산지역지회와 같은 노동조합 또한 줄기차게 고충 상담과 노조 가입을 홍보하는 선전전을 해 왔다. 심지어 지역지회 조합원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커피 트럭까지 사서 점심시간에 공단 내 공동식당에서 무료로 커피를 나눠 주며 노조 가입을 홍보해 왔다.
노동연구소를 ‘인신매매’ 업소로 오해하는 영세업체 노동자
필자가 속한 연구소도 지역지회의 홍보・선전전에 결합해 활동해 왔으며, 연구소 나름의 홍보 작업도 해 왔다. 노조가입, 산재, 고충, 체불임금 상담을 홍보하는 스티커와 플래카드를 공단 곳곳에 붙이거나 걸었다. 또한 심층 인터뷰를 통해 노동실태와 더불어 노조 미가입 이유를 파악하는 조사・연구 사업도 지속적으로 해 왔다.
하지만 노조 가입 발길은 여전히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시화공단 노동자에게 ‘노동조합’이라는 단어, ‘노동연구소’라는 단어는 여전히 멀리 있을 뿐만 아니라 생소하다. 작년에 필자가 인터뷰한 30대 중반의 여성 노동자는 10년 넘게 시화공단에서 일했지만 노동조합 홍보물을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했다. 1시간 정도 노동실태 관련 인터뷰를 해 주십사 요청하면서 인터뷰 사례비로 10만 원을 준다고 하자 필자가 있는 연구소를 ‘인신매매’ 하는 곳인 줄 알았다고 고백했다. 노동연구소라는 곳도 처음 들어보는데, 본인 일하는 얘기를 1시간 정도 하면 10만 원을 준다고 하니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시화·반월공단 노동자 조직화가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안산과 시흥시의 시민・노동단체는 우회로로 2015년부터 공제회 사업을 전개하기도 했다. 노조 조직화의 전 단계로 공제회를 통해 시화・반월공단 노동자를 모으겠다는 계획이었다. 실제로 공제회 활동을 통해 노조 조직화로 진전된 곳도 있다. 필자가 <민들레>에 썼던 한국와이퍼 분회가 대표 사례이다. 노사협의회 활동을 병행하면서 공제회 모임과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노동조합 필요성을 자각하게 되었고 노조 결성, 즉 노조 가입으로 이어진 경우이다. 2015년 당시로서는 선구적인 시도였고 일부 작업장 내 노동자 조직화로 이어졌지만 현재까지 유의미한 성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노조 가입 낮은 이유 ‘회사가 너무 작다’ ‘블랙리스트 공포’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의 노조 가입이 왜 이렇게 낮을까? 2016년 들어서 필자가 있는 연구소는 시흥시의 지원을 받아 시화공단 노동실태에 대한 조사・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소 이사장이 얘기한 것처럼 ‘시화공단이 만들어진 이후 첫 노동실태 조사’였다. 약 900여 명에 이르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20여 명에 이르는 노동자 심층 면접조사를 진행했다.
왜 노조를 안 만드는지 나아가 노조가 있다면 왜 가입을 안 하는지에 대해 집중 파악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1/3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회사가 노조 만들기에는 작고, 사장님과 대화가 잘 되기에 굳이 노조가 필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2019년에도 비슷한 조사를 했는데, 노조 미가입 이유 1위는 동일했다.
하지만 2016년 조사에서는 해고되거나 블랙리스트(B/L)에 오를까 봐 노조에 가입 안 한다는 노동자도 22.3%에 이르렀다. 5명 중 1명은 불이익이 우려돼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것이다. 필자가 몇 차례 썼던 것처럼 ‘노조하면 짤린다’는 이유로 노조에 가입하지 못하는 노동자도 꽤 있는 셈이다.
‘노조를 만들기에는 회사가 너무 작다’는 시화공단 노동자의 인식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사업장이 너무 작다 보니 노조를 만들어 봐야 실효성이 없다는 생각, 노동조합을 사업장별로 결성, 운영해야 한다는 인식인 것이다. 기업별 노조 인식이 각인된 상태에서 전체 직원이 사장 포함 10명이 채 안 되는 조그만 사업장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몇 천 몇 백 명의 노조 조합원이 교섭을 하고, 집회를 하고, 파업을 하는 모습은 남의 나라 얘기처럼 멀게 들릴 수밖에 없다.
시화공단에서 노조 조직화를 위해 노력하는 노조 간부와 활동가 또한 사업장별 노조 조직화는 아무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노조를 만들더라도 일주일도 못 간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공단이라는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조직화 사업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공단 전체의 이슈를 갖고서 노동자의 주목을 이끌어 내려 노력해 왔다. 공동휴게실 사업이 대표적인 예이다. 2021년 산업안전법 개정에 따라 모든 사업장에 휴게실 설치가 의무화되었다. 물리적으로 휴게실 설치가 불가능한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에는 노동자가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공동휴게실을 설치하도록 했다.
노조 만들면 해고된다는 인식의 한계 어떻게 뚫을 것인가
소규모 제조 사업장이 밀집된 시화공단의 경우 시흥안산지역지회는 실태조사에 기반해 시흥시, 시화공단을 관할하는 한국산업단지공단 경기지역본부에 공동휴게실 설치를 요구해 왔다. 필자가 지난 글에서 얘기했던 시화공단 공동식당 문제 또한 이의 연장선상에서 기획된 조사・연구 사업이었다. 사업장 규모가 작은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라고 싸구려 밥과 국, 반찬을 먹어도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의 경계를 넘어서 지역・공단 차원의 조직화, 공단노조라는 지향 속에서 10년 넘게 움직여 왔지만 여전히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의 노조 조직률은 땅바닥에 붙어 있다. 왜 그럴까? 노동조합, 노동조합 간부, 활동가의 노력이 부족한가? 아니다. 소규모 영세사업장이기에 노조를 만들어 봐야 소용이 없다는 생각, 노조를 만들면 해고될 수도 있다는 생각, 시화공단 노동자의 인식의 한계를 어떻게 뚫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시화공단 노동자의 인식을 가두고 있는 법・제도적 틀을 깨는 실천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실천이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