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장 파일, 정경심 PC 아닌 ‘제3의 PC’에서 나왔나
실제 파일 발견 전 내용과 방식까지 예언, 가능?
직인∙표창장 파일 예언의 실체, 제보? 제3의 PC?
제3의 PC 발견 가능성, 8일간 동양대 상주 수사
유무죄 핵심 관건은 파일들 자체가 아닌 ‘누가’
다른 PC서 파일 발견? 재판서 공수 뒤집었을 것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조국 사태의 재구성] 66. 표창장 파일들, 정경심 PC 아닌 ‘제3의 PC’서 확보 확실시
지금까지, 검찰이 동양대 총장 직인 파일과 표창장 파일 등을 실제 발견되기도 전에 미리 발견됐다거나 그 상세한 내용까지 설명하고, 나아가 ‘상장을 오려서 표창장을 만들었다‘는 등, 단순한 거짓 허풍을 한참 넘었던 사례들을 연이어 소개했다.
이 파일들이 실제로 발견된 것은 그보다 며칠씩 이후였는데도 검찰은 그 모든 것을 9월 10일 이전에 낱낱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귀신이 곡하다가 지쳐 쓰러져 죽을 지경인 이 미스터리,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을까? 검찰이 주요 관건들을 은폐해 전체 진실의 흐름 파악을 차단해놓은 이 문제, 지금부터 차근차근,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풀어나가보자.
검찰 실제 파일 발견 전, 어떻게 상세 내용과 방식까지 예언했나
먼저 지금까지 확인된 검찰의 직인 파일 및 표창장 파일 관련 ‘예언’ 사례들을 정리해보자. 검찰의 예언들은 9월 5일부터 10일까지 총 네 차례 이어졌으며,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2019년 9월 5일: 검찰, 정경심 변호인에게 ‘연구실PC에서 총장 직인 파일이 나왔다’ 흘림.
② 2019년 9월 7일: SBS, ‘연구실PC에서 직인 파일 발견’ 보도.
③ 2019년 9월 9일: 조선일보, ‘연구실PC에서 표창장 파일들 3~4개 발견’ 보도.
④ 2019년 9월 10일: KBS 법조팀장, 김경록에게 ‘아들 상장 오려 딸 표창장 만들었다’ 설명.
이 사례들은 모두 강사휴게실PC에서 해당 파일들이 실제로 발견되기 전에 나온 예언들이면서, 강사휴게실PC에서 실제 해당 파일들이 발견되자 예언됐던 그대로 현실화 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시, 이 예언들에서 거론된 중요한 사실관계들을 각각의 건 단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동양대 총장 직인 파일의 존재 사실.
② 표창장 파일들이 존재하고 그 개수가 3~4개인 사실.
③ 표창장 파일들의 내용이 ‘형식과 글귀’가 다르다는 사실.
④ ‘시상자 다른 상장’의 존재 사실.
⑤ 아들 상장 내용을 잘라 딸 표창장 파일에 삽입한 사실.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면, 검찰은 11일 이후에야 발견하게 되는 ‘핵심 증거’ 파일들을 9월 5일부터 10일 사이에 마치 직접 본 것처럼 매우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제작 방법의 핵심 단계까지도 모두 정리해놓은 상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파일들이 실제 발견되는 강사휴게실PC는 2019년 9월 10일 오후 늦게야 처음 발견되었고 분석 실무자인 포렌식 분석관이 문제의 파일들을 발견한 것은 빨라도 11일 오후 저녁 이후였으며, 이 포렌식 분석 결과가 보고서로 제출되어 검찰이 확인하고 언론들에 ‘기생충처럼 위조’로 포장해 언플한 것은 9월 17일이었다. 하지만 그 ‘기생충처럼’이라는 ‘위조 수법’조차 역시 9월 10일에 KBS 법조팀장에 의해 미리 예고된 것이었다.
그러면, 검찰은 모든 공식 입장에서 강사휴게실PC에서 발견된 것으로 정리해놓은 이 파일들에 대해 도대체 어떻게 9월 10일 이전에 이토록 상세하게 파악했을까?
직인∙표창장 파일 예언의 실체, 제보? 제3의 PC?
연구실PC에 ‘총장 직인 파일’이 없었다는 데 대해서는 검찰도 뒤늦게 인정했지만, 변호인 측 포렌식 전문가로서 이 PC를 분석하며 뒤져본 필자는 필자 자신의 눈과 손으로 직접 확인한 바 있다. 연구실PC에는 ‘총장 직인 파일’은 물론이고 ‘표창장 파일들’도 없다. 거기에 있었던 것은 오직 아들이 받은 상장의 스캔 파일 하나 뿐이었다.
이 파일들을 확인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 내용들을 세부적으로 묘사하고 심지어 ‘아들 상장 오려서 딸 표창장 만들었다‘는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당연히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희박한 가능성까지 모두 끌어모으더라도 상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오직 두 가지 뿐이다. ①검찰이 다른 PC나 저장매체에서 이 파일들을 먼저 발견했을 가능성, 혹은 ②이 파일들의 내용을 매우 구체적으로 알고 있던 제3자의 진술을 받았을 가능성이다.
먼저 두번째 가능성부터 생각해보자. 검찰이 표창장 및 직인 파일들, 그리고 그 제작과정을 상세히 잘 알고 있는 제3자에게서 자세한 관련 제보나 진술을 확보했다면, 그 제3자는 동양대 관계자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가능성에는 자동적으로 떠오르게 되는 의문이 있다. 그 제보자는 도대체 어떻게 표창장 관련 파일들에 대한 매우 상세한 내용들과 제작 과정까지 그렇게 상세하게 알고 있느냐는 것이다.
살인사건 제보자의 제보 내용이 관련 증거들의 내용과 특이한 살해 방법까지 자세히 알고 있는데다 추후 그 진술 내용이 실제 범죄사실과 일치한다면, 둘 중의 하나다. 제보자를 자칭한 그 사람이 바로 살인범 자신이거나, 아니면 살인의 현장 목격자인 것이다.
즉 표창장 제작 과정을 상세하게 제보한 바로 그 제보자가 표창장 파일을 만든 사람이거나, 혹은 (검찰의 관점에서) 정 교수가 표창장을 만드는 현장을 꼼꼼하게 목격한 사람이다. 하지만 후자의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그런 목격자가 제보했다면 검찰로서는 그 목격자를 증인으로 내세우면 간단히 끝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검찰이 내세운 증인 중에 그런 목격자는 없었다.
따라서 목격자도 아닌 제보자가 검찰에게 그처럼 상세한 내용을 제보했다면, 검찰의 입장에서는 그 제보자를 최우선 용의자로 보고 수사 방향을 돌렸어야 했다. 물론 오직 정경심이 범인이어야 했던 검찰의 입장에서 그럴 리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검찰의 예언의 배경이 실물 확인이 아닌 제보 뿐이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검찰은 사전에 여러 차례 언론사들에 파일들에 대한 상세한 내용들을 흘려주면서 반복적으로 ‘연구실PC에서 발견됐다’며 발견된 매체에 대해서까지 구체적으로 거짓말을 했다. 누군가의 ‘말’만을 듣고 국가적 조직이 구체적인 거짓말까지 할 수는 없다. 멀지 않은 훗날에 그런 공언에 책임을 져야 할 상황에 몰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3의 PC 발견 가능성, 8일간의 동양대 상주 수사
따라서, 검찰이 표창장 관련 파일들에 대해 사전에 파악한 경로로서 사실상 유일한 현실적 가능성은, 검찰이 어떤 경로로든 이 파일들을 발견해서 실제 확인했다는 것이다.
이들 파일들이 발견된 곳은 동양대의 다른 PC나 저장매체였다고 보는 것이 당연하다. 상식적, 원론적으로도 동양대 표창장 관련 파일들이 동양대의 PC들 중 하나에서 발견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당시 검찰이 문제의 표창장 관련 파일들을 동양대의 다른 PC나 저장매체에서 ‘먼저’ 발견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었을까. 결론부터 말해서, 그런 일은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았다.
먼저, 동양대에 대한 압수수색이 있었던 2019년 9월 3일. 이날 검찰은 정 교수의 연구실만이 아니라 동양대 대학 본부와 교양학부에 대해서도 함께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즉 이날 정 교수의 PC만을 노렸던 것이 아니라 다른 동양대 업무 PC들도 뒤졌던 것이다. 표창장 파일들이 남아있었다면 그것들이 들어있을 수 있는 PC나 매체가 보관되어 있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 장소들이 바로 이 대학본부와 교양학부 사무실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검찰은 9월 3일 압수수색이 종료된 이후에도 철수하지 않았다. 검찰은 동양대의 기숙사 건물인 ‘삼봉관’에 아예 검찰 조사실까지 차리고 장기간 상주하면서 임의 수사를 이어갔다.
이런 검찰의 동양대 상주 수사는 언론 보도에는 전혀 나오지 않았지만 여러 동양대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확인해준 사실이다. 이 기간 동양대 교직원들 사이에서 매일같이 ‘어제는 누가, 오늘 오전엔 누가 삼봉관에서 조사받았다더라’는 말이 떠돌 정도였다. 그러던 검찰이 상주 수사를 접고 철수한 것은 일주일이 지난 9월 11일에 이르러서였다. ☞ 정경심 '강사휴게실PC' 압수, 위법∙기망∙강압 뒤범벅
동양대 최성해 총장의 수사 협조 지시 하에 벌어진 이 동양대 상주 수사 기간 동안, 검찰은 동양대 교직원들을 임의로 불러 조사하고 동양대 이곳저곳을 뒤졌다. 영장도 없이 벌인 장기간의 임의 수사임에도 강제 수사에 가깝게 진행됐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9월 10일의 강사휴게실PC 발견도 이런 검찰의 상주 수사의 일환으로 이미 압수수색을 했던 동양대 교양학부를 재차 수사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검찰은 이날 강사휴게실PC 발견 이전에도 곧 강사휴게실PC의 ‘제출자’가 되는 김민ㅇ 조교의 업무용 PC도 뒤지고 복제하기도 했다.
요컨대 검찰은 동양대 철수 날을 제외해도 압수수색 날짜인 9월 3일부터 시작해 9월 10일까지 8일 동안 동양대를 내키는 대로 뒤지고 불러 조사했다. 총장 직인 파일과 표창장 파일이 동양대 어딘가에 있었다면 이 상주 수사 과정에서 발견되었을 개연성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편, 검찰이 직인 파일과 표창장 파일들이 담긴 제3의 PC를 발견했는데 그것이 다른 동양대 업무PC가 아닌 정 교수와 관련된 또다른 PC였을 가능성도 있었지 않을까. 하지만 이후 검찰의 행태에 비추어보면 그런 개연성은 사실상 없다. 강사휴게실PC 발견 이전 먼저 발견한 제3의 PC가 또다른 정 교수의 PC였다면, 검찰이 연구실PC에서 발견됐다는 거짓 언플들을 늘어놨을 이유가 전혀 없다. 검찰에게 필요한 것은 ‘정경심의 PC’였기 때문이다.
유무죄 핵심 관건, 파일들 자체 아닌 ‘누가 만들었나’
검찰이 9월 5일부터 9월 10일 사이에 흘려댔던 직인 파일이나 표창장 파일들에 대한 사실관계들은 이후 고스란히 강사휴게실PC에서 발견된 파일들로 실현됐지만, 단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 발견됐다는 PC가 달라진 것이다.
이전의 ‘예언’들에서 ‘연구실PC’에서 발견됐다던 것이 ‘강사휴게실PC’에서 발견된 것으로 말이 바뀌었다. 물론 실제로는 연구실PC에는 그런 파일들이 전혀 없었고 동양대의 다른 PC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검찰은 당초에 왜 다른 PC에서 발견된 상태 그대로를 공식화 하지 않았을까? 왜 연구실PC에서 발견됐다는, 이후 들통나기 십상인 거짓말까지 동원해야 했을까?
그것은, 정 교수에 대한 위조 혐의 입증에서 가장 핵심적인 관건이 직인 파일이나 표창장 파일들이 발견됐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검찰의 입장에서는 그 파일들을 만든 주인공을 검찰이 원하는 단 한 사람, ‘정경심 교수로 몰아갈 수 있느냐’가 진짜 핵심 관건이었다. 여기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표창장 파일들이 정 교수와 무관한 다른 PC에서 발견되었다면 정 교수의 위조 혐의가 무너지는 상황이었다.
동양대 표창장에 대한 정경심 교수의 일관된 입장은,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2012년에 정상 발급 받은 것을 분실하고 2013년 6월에 교직원 누군가에게 재발급을 요청해 받은 것이라는 것이다. ☞ "표창장 파일, 왜 정경심 컴퓨터서 나왔나" 재판부, 설명 요구
그 ‘누군가’가 누구냐에 대해 정 교수는 당시 업무상 가까웠던 특정 2~3명으로 범위를 좁혔지만, 자신은 아니라며 극력 부인하거나 해외 이민 후 응답을 하지 않았다. 표창장 제작자로서 유력한 정황이 있었던 조ㅇㅇ 씨는 표창장 제작 시기 정 교수 휘하의 직원이었으나 표창장 위조 사단을 일으킨 최성해 총장의 비서가 되어 있었고, 자신은 표창장 파일을 만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단독] 정경심 1심 재판부 “무죄추정의 결정적 증거 누락시켜”
또, 최초 발급 당시의 기록이 담겼을 유일한 증거물인 ‘상장대장’은 조국 사태 발발 직후에 폐기되었는데, 폐기 직전 최성해 총장이 이전 교양학부장과의 통화 중에 “폐기할까 고민중”이라고 말했다는 법정 증언이 남아있고 1심 판결에서도 그대로 사실 증언으로 인정된 바 있다. ☞ '상장대장' 고의로 폐기한 최성해의 거짓말 퍼레이드
최초 표창장이 정상적으로 발급됐다면, 중립적으로 보더라도 재발급 취지로 다시 만들면서 다른 상장의 일부를 잘라 붙이는 방법을 썼다고 해서 그 행위를 위조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표창장 제작자가 정 교수라는 근거 없는 전제 때문에 위조라는 프레임이 쉽게 짜여진 것이다.
표창장 파일이 만들어진 날로 기록되어 있는 2013년 6월 16일은 일요일이어서 총장 직인을 실제 날인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재발급 부탁을 받고 작업을 하던 교직원이 표창장을 완성하려면 직인 부분을 잘라붙이는 방법 외에 뾰족한 수가 없었을 수 있다. 직인 부분이 잘라붙여진 것이 사실이라도 그 행위자가 정 교수냐 혹은 다른 교직원이냐에 따라 범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또 검찰이 위조 범죄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더라도, ‘미상의 교직원 공범’의 존재가 부상함으로써 범죄 입증이 훨씬 어려워진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 표창장 파일을 만들었을 수 있는 현실적 가능성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무시된 가장 큰 원인은 오직 검찰이 ‘표창장 파일들을 만든 사람은 정경심’이라는 프레임의 성벽을 계속 쌓아올렸기 때문이다.
9월 7일 SBS ‘총장 직인 파일 발견’ 보도에서부터 중대 변곡점이 된 9월 17일 ‘기생충처럼 위조’ 언플, 그리고 그 이후로도 내내, 검찰은 언론들을 동원한 프레이밍에서 부실한 사실관계 일부만 흘리면서 표창장을 만든 당사자가 정 교수라고 반복해서 몰아붙였고, 단독 보도 욕심에 눈이 먼 언론들은 그대로 받아썼다.
하지만 PC나 저장매체에 담긴 파일 자체에는 지문도 DNA도 남지 않는다. 파일 자체만을 들여다보고 누가 작업한 것인지 특정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 파일이 담긴 저장매체의 소유자나 사용자 등을 통해 추정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경우조차도 다른 사람이 작업한 결과물 파일이 단순히 복사만 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실제 정 교수의 재판에서 필자를 포함한 변호인 측과 검사 측이 포렌식 결과에서 가장 치열하게 다퉜던 핵심 쟁점도 바로 이 표창장 관련 파일들을 만들고 출력한 사람이 과연 정경심이 맞느냐의 여부였다.
다른 PC서 파일 발견 사실, 재판서 공수 뒤집었을 것
정 교수를 겨냥한 표창장 위조 혐의에 대해 검찰의 기본적인 시나리오는 표창장 관련 파일들이 정 교수의 소유인 강사휴게실PC에서 발견됐으니 정 교수가 만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핵심 증거 파일들이 정 교수가 사용하던 PC가 아닌 동양대의 다른 PC나 저장매체에서 발견됐다면, 정 교수가 표창장을 위조했다는 검찰의 시나리오는 기본 전제부터 모래성처럼 무너지게 된다.
표창장 파일들을 만든 사람이 정 교수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오려서 붙였든 다른 어떤 방법을 썼든 정 교수에 대한 표창장 위조 혐의와는 일단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작업한 결과물일 가능성이 부각되면, 검찰의 입장에서는 정 교수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 그 작업자를 찾아내고 다시 정 교수의 지시를 받고 한 일이라는 자백을 받아내야 하는 등 혐의 입증에서 한참 멀어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6년 전 일에 대한 기억이 가물거려 누구에게 부탁했었는지 특정하기 어려웠던 정 교수의 불리한 상황이 정 교수가 아닌 검찰의 몫이 되게 된다. 실제 작업자를 찾아내는 일 자체도 매우 어려울 것이었지만, 설사 작업자를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조국 마녀사냥 분위기에서 자신이 만들었다고 시인할 가능성도 극히 낮았다. 정상 재발급이었든 위조 행위를 도운 것이든 무관하게 말이다.
당시 검찰의 수사 의도가 오직 조국을 장관 직에서 낙마시키는 것만이 목표였던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백이면 백 정 교수의 공범으로 몰릴 것이 뻔한 상황에서, 도대체 누가 ‘내가 실제 작업자’라고 인정할 것인가. 정상 재발급이든 위조 범죄 공모이든 무관하게 말이다. 따라서 정 교수가 겪었던 궁지가 검찰의 몫이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래서 당시 검찰로서는, 총장 직인 파일과 표창장 파일들이 발견된 곳은 동양대의 다른 PC가 아니라 반드시 정 교수의 PC여야만 했다. 같은 파일들이라도 정 교수의 PC가 아닌 다른 PC에서 발견됐다면 정 교수의 위조 혐의를 입증하기는커녕 도리어 강력한 무죄 정황이 되거나, 혹은 적어도 턱없는 수사 미진의 증거가 되어버린다.
이를 다르게 말하자면, 검찰은 정 교수의 PC가 아닌 다른 동양대 PC에서 표창장 파일 등을 발견하더라도 그 발견 사실을 은폐할 만한 매우 절박한 동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설마 검찰이 중요 증거를 발견하고도 그 사실을 숨기기까지 할까 의아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검찰은 수많은 주요 사건들에서 그런 일을 벌여왔다. 특히 검찰에 불리한 증거를 은폐하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검사의 증거은닉 행위가 언론보도로 대대적으로 드러났던 사건으로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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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조국 부부에 대한 재판에서도 비슷한 검찰의 증거은폐 행위가 여러 건 드러났다. 검찰에게 불리한 증거들과 진술들 여러 건을 검찰이 확보하고도 증거로 내놓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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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혐의들은 제쳐놓고 이 표창장 위조 혐의와 관련해서도, 검찰은 강사휴게실PC라는 ‘핵심 증거 매체’의 발견 사실 자체를 이듬해 공판에서 주요 이슈가 될 때까지 철저히 숨기고 있었다.
이는 검찰과 친하다는 법조기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검찰은 강사휴게실PC에 대한 첫 포렌식 분석보고서가 나온 9월 17일, 조중동 법조기자들에게 표창장 파일들을 발견했다면서 ‘기생충처럼 위조’라고 강조하면서도, 그 파일들이 나왔다는 강사휴게실PC라는 전혀 새로운 PC의 존재를 은폐했다. 검찰이 언플을 벌인 근거인 보고서 자체가 강사휴게실PC에 대한 분석 결과인데도 어디서 나왔는지는 밝히지 않고 얼버무림으로써 강사휴게실PC의 존재를 숨긴 것이다.
검찰은 왜 그랬을까? 파일들이 연구실PC에서 나왔다던 언플이 처음부터 거짓이었던 것과 동일하게, 이미 연구실PC에서 나왔다던 파일들이 강사휴게실PC에서 처음 나왔다는 주장 역시 거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연구실PC에서 발견했다던 거짓 언플들을 벌인지 며칠 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 PC 출처에 대한 의구심이 떠오르면 검찰의 산통이 다 깨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즉 당시 검찰로서는 PC 출처를 숨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019년 9월 6일, 조국 임명 저지에 급급했던 검찰은 수사를 제대로 착수하기도 전에 덥석 기소부터 해버렸다. 그래서 검찰로서는 청문회 중에 기소까지 강행했던 근거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실토를 하고 검찰개혁의 칼날 아래 목을 내놓거나, 아니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었다.
검찰이 후자를 선택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의 숱한 위법, 불법 사례들이 이미 줄줄이 드러나 있다. 관건은, 검찰이 어떤 수준까지 위법과 불법을 무릅썼느냐 하는 ‘정도의 문제’일 뿐이다.
과연, 당시 검찰은 언론들을 줄줄이 동원해 대대적인 여론 조작까지 무릅쓰고 온갖 위법, 불법 행위들을 감행하기는 했어도, 차마 ‘증거은닉’이나 ‘증거변조’라는 ‘마지노선’은 넘지 않았을까? 아니, 당시 검찰에게 그런 마지노선이 존재하기는 했을까?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