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선거법 위반 유죄’ 판결문의 치명적 오류 하나
두 단계 행정행위를 하나로 뭉뚱그려
‘간명한 설명’을 ‘’다른 설명’ 혹은 ‘틀린 설명’으로 오인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보름 전, 이재명 대표에 대한 선거법 위반 유죄 판결 소식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 꽤나 무리한 기소였는데, 법원이 그에 장단을 맞춰줬다니 절로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이다. 최근 필자는 출산과 육아 등 개인적인 문제로 짬을 못 내다가 이제야 비로소 꼼꼼하게 판결문을 뜯어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매 구절마다 탄식이 절로 나왔다. 판결문은 지나치게 기교적이면서도 막상 중요한 부분에서는 성기기가 그지없었다. 3주마다 칼럼을 쓰는 소중한 기회를 살려 대표적인 오류 하나만 집중적으로 파헤쳐 보기로 했다.
두 단계 행정행위를 하나로 뭉뚱그려 판단한 치명적 오류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은 두 단계로 진행이 됐다. 첫 번째 단계는 ‘식품연구원’ 소유 부지를 용도 변경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단계, 그 다음에는 이왕 용도를 변경하기로 하였다면 어떤 구역으로 변경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단계이다.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의 첫 번째 단계(용도변경 여부)는 특별법상 의무조항(공공기관 이전 특별법 제43조 6항)으로 인한 것이 맞다. 특별법상 의무조항이 존재하는데 성남시가 안 하겠다고 버티니 국토부에서 압박하는 내용의 공문을 보낸 것도 (그 타당성 여부를 떠나) 지극히 정상적이고 당연한 과정이다. 국토부의 압박이 정상이었으니 성남시도 종국적으로는 그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실 이재명 대표가 그 정상적인 행정과정을 마치 비정상적이었던 것처럼 ‘협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설명한 것은 약간의 무례였을지언정 팩트에 어긋나는 내용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판결문에서는 성남시가 백현동 부지 용도를 변경한 것은 국토부의 압박이나 특별법상 의무조항 때문이 아니라 성남시의 자체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하였을까? 행간을 읽어보면 판결문은 “성남시가 백현동 부지를 ’준주거지역으로‘ 용도 변경한 것은 국토부의 압박이나 특별법상 의무조항 때문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즉, 판결문은 두 번째 단계(어떤 구역으로 변경할 것인지)에 관해 그것이 국토부의 압박이나 특별법상 의무조항 때문이 아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처럼 이재명 대표가 경기도 국감장에서 ‘공공기관 이전 특별법상 의무조항과 국토부의 압박’을 언급한 것은 위 첫 번째 단계(용도 변경을 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던 반면, 법원 판결은 위 두 번째 단계, 어떤 부지로 용도변경 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이처럼 이재명 대표의 ‘특별법상 의무조항과 국토부의 압박’ 발언과 판결문이 지칭하는 허위 사실 공표의 대상 행위는 서로 미묘하게 다른데, 재판 과정에서는 두 단계의 행정행위가 하나로 뭉뚱그려져 구별되지 않은 채 판단되었다. 판결의 치명적 오류가 아닐 수 없다.
백번 양보하여 법원의 의도를 다음과 같이 해석해 보자. 당시 백현동 부지와 관련하여 이재명 대표가 받고 있던 의혹은 왜 그 부지를 ‘준주거지역으로’ 변경하였느냐 하는 것이었으므로, 이재명 대표가 국감장에서 첫 번째 단계(왜 용도 변경을 했는가)에 대해 주력하여 설명한 것은 일종의 논점 일탈적인 답변으로서 유권자의 판단을 흐릴 수 있는 허위 사실 공표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서 후보자가 선거 과정에서 논점 일탈적인 답변을 했을 때 그것을 허위 사실 공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지는 일단 논외로 하자. (당연히 그것은 형법 조항의 확대해석에 해당하여 위법한 법적용일 것이다)
‘간명한 설명’을 ‘’다른 설명’ 혹은 ‘틀린 설명’으로 오인
사실관계 측면에서 법원은 다시 한 번 잘못된 판단을 했다. 이재명 대표의 국감장 발언을 보면 첫 번째 단계와 두 번째 단계를 구별하여 언급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의 발언을 보자.
“용도를 바꿔준 것은 국토부의 법률에 의한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바꿔준 것이고, 대신에 분양을 임대로 바꿔달라는 것은 ‘식품연구원’이 요청을 했는데 그 이유는 매각조건에 용도를 바꿔주고 인가를 도와준다는 부대조건이 있어서 ‘식품연구원’이 저희한테 요청했던 것이고, 이것 역시 법률에 의한 요구이기 때문에 저희가 바꿔주고(여기까지가 첫 번째 단계에 관한 언급), 대신에 현재 시세로 최하 1000억, 1500억 정도 되는 성남시 공공용지를 확보했다 그 말씀을 드립니다(이 부분이 두 번째 단계에 관한 언급).”
위와 같이 이재명 대표의 발언에서 두 번째 단계에 관한 언급은 극히 간명하게 처리되어 있다. 사실은 이렇게 풀어서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일단 용도 변경을 해주려고 결정한 후 그럼 어떤 부지로 용도 변경을 해줘야 성남시에 가장 이득이 될 것이지 검토를 했습니다. 그 결과 공공용지를 확보하는 조건을 달고 준주거지역으로 용도를 변경한다면 현재 시세로 최하 1000억, 1500억 정도 되는 성남시 공공용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어 그렇게 진행한 것입니다.”
이재명 대표의 발언에서는 비록 첫 번째 단계에 관한 설명이 주를 이루지만 위와 같이 당연히 성남시의 판단을 전제로 하는 두 번째 단계에 관한 설명도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다. 필자가 예로 든 위 부분 외에도 여러 곳에서 등장하고 있으니 궁금한 분들은 국감장 발언 녹취록 원본을 면밀히 살펴보길 바란다.
어쨌든 법원은 ① 이재명 대표의 ‘공공기관 이전 특별법상 의무조항과 국토부의 압박’ 발언을 두 번째 단계(어떤 부지로 용도 변경할 것인가)에 관한 설명으로 오인하였고, 거기에 더해 ② 이재명 대표가 국감장에서 두 번째 단계(어떤 부지로 용도 변경할 것인가)에서 성남시의 판단은 전혀 개입되지 않은 것으로 설명한 것처럼 또 한 번 오인하였다. 2년 넘게 이루어진 심리의 결과 이런 치밀하지 못한 판단이 내려진 것은, 같은 법조계 종사자로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항소심에서나마 오류가 바로잡혀지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