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권에 ‘핵주먹’ 들어올린 교수들께 영광 있으라
자기 이름 석자 공의를 위해 내건 3600여분
한번 찍히면 승진, 연구수주 물건너기 십상
교사들은 같은 교육자인데 그럴 수 없는 현실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교수들은 지성인이면서 기득권이다. 지성인으로서 양심에 따라 행동하려고 해도, 기득권자로서 뒷덜미를 잡는 요인도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교육부와 대기업에서 주는 여러 프로젝트, 대학법인과 정부 여당의 사나운 눈길 등이 이들의 행동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장벽이다.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 사태를 겪고 난 뒤라서 더 그렇다.
이름 석자 내걸기… 용기 낸 3600명의 교수들
하지만, 이런 장벽을 뛰어넘은 교수들이 11월 25일 현재 67개 대학에서 360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은 대통령 윤석열과 그의 부인 김건희에게 ‘하야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자신의 이름 석자를 내걸고서다. 자신의 기득권에 대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커다란 용기를 낸 것이다. 그만큼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피해를 각오하고 얼굴을 드러낸 초겨울에 핀 희망의 꽃들인 것이다.
이번 시국선언에 나온 명문장들 또한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리고 있다.
“지금과 같은 윤석열-김건희 부부 통치는 주권자의 의지로 종식되어야 한다.”(가톨릭대)
“검찰은 ‘김건희 국선 로펌’으로 전락했다.”(한국외국어대)
“당신은 더 이상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다.”(연세대)
“나는 매일 말의 타락을 보고 있다. 군림하는 말은 한없이 무례하며, 자기를 변명하는 말은 오히려 국어사전을 바꾸자고 고집을 부린다.”(경희대)
“국가의 기강과 동력은 만신창이가 됐고, 국민은 집단 우울증과 정치 혐오증에 신음하고 있다. 대통령 하야가 그동안의 과오와 실정을 경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인천대)
“꼬리가 몸통을 흔들어대고, 쭉정이가 알곡을 밀어내고,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고, 혐오가 우의를 지워버리고, 거짓이 진실을 뒤엎고, 후안무치의 뻔뻔함이 작은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양심을 짓밟는 일들이 마치 일상이라도 된 듯이 온통 미디어를 뒤덮고 있다.”(성공회대)
“국민의 말을 듣지도, 물러나지도 않는다면 우리가 끌어내릴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해고다.”(경북대)
“국민은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말한 ‘법과 원칙’, ‘공정과 상식’을 원한다. 자신이 한 말조차 지키지 못한다면 자격이 없으니 그 자리에서 물러나라.”(한신대)
“윤 대통령은 부디 하야를 선택하여, 국민의 에너지와 시일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게 하길 바란다. 스스로 물러나는 것만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행위라 판단한다.”(동국대)
서울대 교수들도 28일 발표 예정으로 열심히 준비 중
이런 외침에 서울대 교수들은 아직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 이 대학 교수들은 2016년과 그 이전 시국선언에는 어느 대학보다도 앞장 선 바 있다. 그런데 왜 이번엔 이렇게 늑장을 부릴까? 전국 대학 가운데 국민 세금을 가장 많이 받아온 ‘국립대 법인’ 서울대의 교수들은 움직이기나 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이 칼럼을 쓰는 26일, 서울대 한 현직 교수에게 물어봤다. 다행히 “우리도 시국선언을 준비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서울대 교수 발기인 61명이 중심이 되어 시국선언문 서명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서명 마감은 오는 27일 오후 10시까지다. 발표 예정일은 28일.
사실, 교수들처럼 자기 이름 내걸기 어려운 직업은 드물다. 한 번 찍히면 승진은 물론 연구 프로젝트 얻는 일은 물 건너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서울지역 대학에서 시국선언에 앞장 섰던 한 교수는 “이번 시국선언에 각 대학에서 젊은 교수들이 많이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들은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면서 “대부분 조교수와 부교수인 이들 젊은 교수들은 승진이 걸려 있기 때문에 학교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구나, 정부와 기업의 프로젝트를 많이 받는 이공계 교수들은 아무래도 불이익 우려가 있으니까 쉽게 행동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과학계열 교수들도 이름을 내걸었다가 찍히게 되면 윤석열 정부에서 정부 위원회 참여나 교육부 연구 프로젝트 등에서 배제되는 등 음으로 양으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그래서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교수들을 함부로 비판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도 했다.
이런 말을 거꾸로 풀어보면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수들이야말로 불이익을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뛰어든 정말로 용기 있는 이들이라는 말이 된다. 시국선언 교수들에게 블랙리스트가 아닌 영광이 있길 바란다.
정치기본권 없는 교사들은 시국선언 자체가 봉쇄돼
그런데 같은 교육자이지만 시국선언 자체가 봉쇄된 이들이 있다. 전국 50만에 이르는 유초중고 교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한국 교사들은 정치기본권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교사들의 정치기본권을 틀어막은 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8개국 가운데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고,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헌법은 제11조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시국선언 참여를 놓고도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 교수와 교사의 신분 차별이 그것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똑같은데, 교수들은 시국선언을 할 수 있지만 교사들은 시국선언을 할 수 없다. 정말 불공정한 일이다. 당장 지방교육공무원인 인천의 한 장학사는 ‘윤석열 퇴진 개인 시국선언’을 발표했다가 입건되어 수사를 받고 있다. 법률검토를 의뢰한 인천시교육청이 언제 징계 움직임을 보일지도 모른다.
교육자들의 시국선언 발표 권한이 이렇게 공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번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역사에 빛날 것이다. 불공정한 윤석열 정부에게 큰 타격을 주는 ‘핵주먹 선언’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시국선언문에 이름을 올린 3600명 교수들이여, 앞날에 영광 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