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세계를 바꾸기 전에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

슬라보예 지젝 “소프트 파시즘 대두에 대비하라”

닛케이와의 인터뷰서 자유민주주의 종말 경고

지금의 민주주의제도, 장기적 과제에 대처 불능

2024-10-27     한승동 에디터

“지금 필요한 것은 시장 근본주의(제일주의)에 빠지기 쉬운 리버럴(자유) 민주주의 체제하의 자본주의 왜곡을 어떻게 해석해서 파시즘에 빠지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느냐는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 일본경제신문 10월 26일

‘포이에르바하 테제’ 뒤집기

‘온건한 공산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슬라보예 지젝(75)은 “20세기의 철학자들은 세계를 바꾸려고 했을 뿐, 세계를 올바르게 해석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는 카를 마르크스의 <포이에르바하 테제>에 나오는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해 왔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구절을 뒤집은 것이다.

옛 유고슬라비아의 슬로베니아 출신으로 지금은 영국 런던대 버크벡 칼리지 교수로 있는 사상가 슬라보예 지젝은 지난 26일 <일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리버럴(자유) 민주주의가 종말을 맞고 있는지도 모른다며, “지금 세계를 석권하고 있는 것은 ‘소프트 파시즘’”이라고 했다. 러시아, 중국 그리고 튀르키예, 인도 등의 권위주의 체제뿐만 아니라 극우정당들이 대두하고 있는 유럽 상황까지 아우르는 말인 것으로 보인다. 그가 얘기하는 소프트 파시즘이 석권하고 있는 지역에서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지역도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의 민주주의제도, 장기적 과제에 대처 불능

지젝은 지금의 민주주의 제도에도 문제가 있다며 “정치가는 몇 년 뒤의 선거에서 이겨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이고 환경이나 이민(문제), 인공지능(AI) 등의 장기적 과제에 대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런 점은 수십년을 하나의 시대로 생각하는 중국보다 못한 면이라고 했다.

지젝은 평화를 외치는 평화주의만으로는 평화가 오지 않는다며 분명한 입장표명과 군사력 등의 억지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세계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단호하게 러시아(의 침략)를 막아야 한다”고 했다. 지젝은 냉전시대에도 터부였던 핵의 선제 사용을 러시아가 시사하고 있는 것을 ‘미친 상황’이라며 우려했다.

“우리는 자멸을 향해 가고 있고, 10년 뒤의 세계는 틀림없이 더욱 나빠질 것”이라고 보는 그는 그럼에도, 이론에서는 비관주의고 실천에서는 낙관주의인 자신의 신조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은 해 보자며, 정부의 역할과 유럽통합, 국제제휴 강화를 주장했다.

 

러시아군이 쿠르스크 지방에 진출한 우크라이나군을 향해 다연발 로켓을 발사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가 9월 26일 배포한 사진이다. 러시아군은 지난 8월 초부터 쿠르스크 지방을 전격 공격한 우크라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 EPA 연합뉴스

<닛케이>가 인터뷰를 통해 정리한 지젝의 생각은, 늘 그랬듯 수용자의 입장에선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전문 그대로 번역 소개한다.

소프트 파시즘의 대두에 대비하라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두 개의 전쟁이 세계를 흔들고, 2차 대전 뒤에 짜여진 국제질서가 무너지려 하고 있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지금 세계를 석권하고 있는 것은 ‘소프트 파시즘’이며, ‘평화주의’를 입으로 외치는 것만으로는 평화가 오지 않는다고 한다. “의연한 주장”과 “군사력” 등의 억지력이야말로 평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러시아와 중국, 인도 등이 참여하는 BRICS 정상회의가 22~24일 러시아에서 열렸다. 옛 공산권의 강권국가들이 글로벌 사우스와의 결속을 과시했다.

- 평화주의로는 평화를 실현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쟁의 불길이 번져가고 있는 가운데 왜 평화주의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인가.

=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힘있는 입장에서 교섭할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를 생각해 보자. 왜 교섭의 여지가 생기는가. 러시아의 침략에 대해 최근 2년 이상 그 나름으로 영토 방위에 성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전에는 일정한 군사력이 필요하고, 그것이 없으면 교섭이 불가능하다.

유럽의 대부분이 나치 독일에 점령당한 1941년에 평화를 주창할 수 있었겠는가. 나치는 유럽의 전쟁에는 관여해선 안 된다는 미국의 ‘평화주의’ 단체를 지원하고 있었다. 평화주의는 지고의 가치관이지만, 역사의 역설에서 배워야 한다. 물론 침략전쟁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 군사적인 긴장이 높아져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대 러시아라는 큰 전쟁으로 발전할 위험은 없을까.

= 세계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지금이야말로 단호하게 러시아를 막아야 한다. 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방 국가들은 폴란드나 체코 등 중동부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에 점령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것을 걸 각오가 돼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 줘야 한다.

평화는 자신의 입장을 의연하게 주장하고, 무엇을 위해 싸울 것인지를 보여 줘야만 확보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을 포기하고 약점을 보이면 상대의 확장주의에 길을 열어 주게 될 뿐이다.

민주주의가 퇴조하고 있다고 경고

- 민주주의 진영의 이데올로기가 분쟁 해결에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된 반면, 중국과 러시아라는 강권국가들이 대두하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보나.

= 국가의 일체성이라는 전통적인 이데올로기로 근대화를 통제하려 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파시즘이라고 부른다. 최근의 중국은 공산주의보다 훨씬 더 빈번하게 유교의 전통을 끄집어낸다. 러시아는 보수적이고 원리주의적인 종교를 내세우게 됐다.

그들은 구태의연한 공산주의로는 경제가 잘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적인 근대화를 추진해 왔다. 기술은 갖고 싶지만 리버럴한 정치체제는 혼란을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중국공산당의 이론적 지주인 왕후닝 전국정치협상회의 주석이 젊은 시절 미국에 체류하며 쓴 책을 읽어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기술발전에 매료되면서 동시에 사회의 변화를 두려워했다. 그리고 보수적인 근대화를 추구했다.

그들은 물론 나치와는 다르다. 나치가 유대계 시민들에게 한 것과 같은 파괴 에너지를 투사할 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그것을 소프트 파시즘이라고 부른다. 유럽 외에 (신 오스만주의의)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힌두 지상주의의) 모디 인도 총리에게서도 비슷한 경향을 볼 수 있다.

두려운 얘기일 수 있는데, 20세기에 세계에 널리 퍼진 것처럼 보였던(다양성이나 개인 존중의) 리버럴한 민주주의는 종말을 맞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격한 발언도 불사하는 철학자

=지금의 민주주의 제도에도 문제가 있다. 정치가는 몇 년 뒤의 선거에서 이겨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이고, 환경이나 이민, 인공지능(AI) 등의 장기적 과제에 대처할 수 없다. (그런 것은) 수십년을 하나의 시대로 생각하는 중국보다 못한 면이다.

유럽에서 국수주의, 민족주의적인 사상을 숨기지 않는 극우정당이 대두하고, 눈앞에 다가온 미국 대통령선거에서는 트럼프가 ‘자국 우선’을 내세운다. 서방이 내걸어 온 인도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 유럽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할 뿐 아니라 난민도 받아들인다. 한편으로 중동에서는 정치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면서 팔레스타인의 인도적 위기에는 팔짱을 끼고 있다. 이중기준(더블 스탠더드)이 아닌가.

=슬프게도 나의 모국 슬로베니아에서도 민족주의적인 인종차별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다. 어느 난민(우크라이나)은 선하고, 다른 지역(중동)에서 온 난민은 악하다는 식으로. 이는 분명히 이중기준이다.

다만 유럽에 오고 싶은 사람을 모두 환영하는 것이 바른 길은 아니다. 나는 ‘국경을 열자’라는 휴머니즘은 믿지 않는다. 거액의 운항 비용을 지불하는 난민 신청자들 중 다수는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다. 만일 국경을 개방한다면 유럽에서는 국수주의자들의 승리가 될 것이다.

또 한편으로 이민이나 난민 배척을 주장하는 건 간단하지만, 대다수 서방 국가들은 이민에 경제를 의존하고 있어서 외국인을 내쫓으면 무너진다. 선진국 경제가 왜 이민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 물어야 한다.

원래는 국제적인 정치정세가 원흉이다. 미국 등의 개입으로 이라크 정세가 혼미해지고 과격파 조직이 대두하지 않았다면, 러시아가 시리아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난민은 훨씬 적었을 것이다. 난민이 유럽으로 오게 된 상황을 만들어낸 우리에겐 죄가 없는 것일까.

마르크스의 테제에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20세기의 철학자들은 세계를 바꾸려고 했을 뿐, 세계를 올바르게 해석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장 근본주의에 빠지기 쉬운) 리버럴 민주주의 체제하의 자본주의 왜곡을 어떻게 해석해서 파시즘에 빠지지 않고 극복하느냐는 것이다.

(시장경제만으로는 불충분한 것에는) 정부가 개입해서 국제적 제휴를 강화해야 한다. 예컨대 인터넷상에 넘쳐나는 가짜정보 대책에는 정부의 관리 외에 방법이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음모론 등이 퍼지는 원인이 된다. 나는 세계정부에 찬성하진 않지만 더 단결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와 국제협조의 지킴이를 자임하는 유럽조차 하나로 뭉치지 못하는 현상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 유럽은 통합을 심화시킴으로써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야망을 꺾을 수 있다. 러시아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에서 통합에 반대하는 극우 정당들을 조직적으로 지원해 왔다. “통합은 악이며, 각 국에는 더 많은 주권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기울면 파국으로 간다고 본다. 꿈을 꾸고 있다고 얘기할 진 모르겠으나, 지금이야말로 국경을 뛰어넘는 조직이 이제까지보다 더 필요한 때다.

문제는 지금의 위기가 세계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인지 여부다. “전쟁을 끝내고, 환경문제와 맞서 싸워야 한다”는 쪽으로 가면 좋겠지만, “환경문제는 잊어라, 이 전쟁에서 이겨야만 한다”는 상황이 돼 버릴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우리는 자멸을 향해 가고 있고, 10년 뒤의 세계는 틀림없이 더욱 나빠질 것이다. 비관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신조로 삼고 있는 것은 이론에서는 비관주의, 실천에서는 낙관주의 쪽에 서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필사적으로 해 보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국제협조, 그리고 통일된 유럽이 필요하다.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