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강연한 게이오대 설립자, 어록 들춰보니 '끔찍'

후쿠자와 유키치, 조선멸시 상상초월

"조선 인민은 소와 말, 돼지와 개 같다"

"조선은 야만국…속국 돼도 기쁘지 않다"

'위안부' 해외진출…"경세(經世)에 필요"

2023-03-22     이승호 에디터

 

일본인들은 게이오대 설립자 후쿠자와 유키치의 초상화를 1만 엔 지폐에 넣을 정도로 존경하지만, 그는 ‘조선인은 짐승’이라는 등의 비하 발언을 했던 인물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17일 일본 게이오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 비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또다시 이 대학 설립자의 과거 ‘조선 멸시’ 발언 등이 논란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게이오대 설립자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다. 그는 근대 일본의 계몽주의자, 인권사상가, 교육가, 언론인 등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오늘날에도 그는 일본인들의 큰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조선 멸시’와 ‘조선 저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조선 인민을 위해서 그 나라의 멸망을 축하한다.’ 그가 1885년 8월 13일 지지신보(時事新報)에 쓴 논설 제목이다. 지지신보는 후쿠자와 유키치가 창간한 신문으로, 극우 성향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산케이신문의 전신이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조선 관련 어록을 들춰보는 일은 끔찍하다. 그는 조선인을 짐승이나 미개인보다 열등한 존재로 멸시했다. “조선 인민은 소와 말, 돼지와 개와 같다.” “조선인의 완고, 무식함은 남양의 미개인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조선에 대한 멸시의 언어는 저주 이상이다. “조선은 요마악귀의 지옥국이다.” “조선국은 사지가 마비되어 스스로 움직이는 능력이 없는 병자와 같다.” “조선이란 나라는 본래 논할 가치가 없는 나라다.”

“조선은 아시아 주 중의 하나의 소야만국으로 그 문명의 정도는 우리 일본에게 까마득히 미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설사 그쪽에서 내조하여 속국이 된다 할지라도 기뻐할 것이 못된다.”

“조선은 상하 모두가 문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학자는 있지만 다만 중국의 문자만 알 뿐 세계정세는 모르고 있다. 그 나라의 질을 평가하자면 글자를 아는 야만국이라고 하겠다.”

윤 대통령은 일본으로 떠나기 전, 늦어도 게이오대로 가기 전, 후쿠자와 유키치의 이런 폭력적 망언을 한마디도 못 들었을까. 아무도 옆에서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었을까. 아니면, 듣고도 게이오대 강연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일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도쿄 게이오대에서 일본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일 미래세대 강연을 마친 뒤 기립 박수를 받으며 퇴장하고 있다. 2023. 3. 17. 도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게이오대 강연을 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또 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인권사상가였지만, 그의 인권은 차별적 인권이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일본 밖의 국가와 민족을 차별한 것처럼, 자국의 민중도 우민시하여 개돼지 취급했다. 그는 하층민을 평생 멸시했다. 하층 여성에 대해서는 극단적으로 반인륜적이기까지 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특히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해외에서 성매매를 하던 ‘가라유키상’을 미화했다. 그 여성들이 ‘일본 근대화 자금’에 쓸 외화를 벌어왔기 때문이다. 당시 해외 성매매에 내몰린 일본 여성들은 주로 시골의 빈곤층 소녀들이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매춘부의 해외 진출은 결코 비난해서는 안 되며, 자유롭게 하는 것이 경세(經世)상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가 1896년에 쓴 글 가운데 한 구절이다.

“세상사람들은 돈벌이로 여자들을 해외에 보내는 것을 보고 유감과 함께, 비천한 추태에 나라의 체면을 더럽히는 행위를 금지시켜야 한다고 논하고 있지만, 인간사회에 창부는 어디든지 있는 것, 또한 식민지(각 나라 현지)에는 필요하므로 그들을 굳이 비난한다 해도, 이주의 장려와 함께 그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필요할 수 밖에 없다.”

역시 후쿠자와 유키치의 발언이다. 일본에서 제이피뉴스의 발행인이며 작가로 활동중인 유재순 씨가 쓴 <일본여자를 말한다> 51쪽에 나오는 내용이다.

당시의 일본 정부는 자국 여성들의 해외 성매매를 장려하며 칭송했다. 여성들의 성매매는 애국적 행위라는 논리였다. 당시 일본 언론은 이 여성들을 낭자군(娘子軍)이라는 이름으로 추켜세웠다. 정부와 언론에 이런 논리를 제공한 인물들이 바로 후쿠자와 유키치같은 이른바 계몽사상가들이다.

해외 성매매에 나선 일본 여성들의 이야기는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일본군 성노예가 됐던 ‘조선의 가난한 시골 소녀들’을 떠올리게 한다. 취업을 미끼로 소녀들을 유인하는 방법 또한 유사하다.

실제 세월이 흘러 ‘가라유키상’은 조선에서 ‘위안부’가 된다. 일본은 ‘야전주보규정(野戰酒保規程)’의 개정(1937.9.29)을 통해 일본군을 위한 '위안소' 설치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조선에서는 총독부 권력을 통해 ‘위안부’ 동원을 요구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게이오대 강연에서 메이지 시대의 국수주의 사상가 오카쿠라 텐신(岡倉天心, 1863~1913)의 말 ‘용기는 생명의 열쇠’를 인용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오카쿠라 텐신은 일본 제국주의 논리를 만들어낸 일본인 가운데 하나다. “조선은 500년 동안 일본의 지배하에 있던 속주였으니 일본이 앞으로 조선을 식민지로 재지배한다 해도 역사적인 원상회복일 뿐”이라는 일그러진 역사 인식을 갖고 있던 인물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은 게이오대를 방문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일본 대학생들의 박수를 받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세상을 뜬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흉상. 경기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 세워져 있다. 2023. 3. 17. 연합뉴스

조선의 ‘일본군 위안부’와 닮은 일본의 ‘가라유키상’

가라유키상은 ‘해외로 나간 사람들’이란 뜻으로,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외국에서 원정 성매매를 하던 일본 여성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성들을 사지로 내몬 자들은 제겐(女衒, 뚜쟁이)이라 불리는 취업 사기꾼들이었다. 제겐은 농어촌의 빈곤층 소녀들을 유인해 해외로 팔아넘겼다. 소녀들은 중국, 홍콩, 만주, 필리핀, 하와이, 보르네오 섬, 타이, 인도네시아 등으로 물건처럼 옮겨져 성매매를 해야 했다. 멀리는 북아메리카 캘리포니아주, 아프리카 탄자니아와 잔지바르까지 갔다. 가라유키상의 수는 30만~50만 명이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메이지 정부는 암묵적으로 소녀들의 성매매 행위를 비호했다. 소녀들을 ‘서구 열강들을 따라잡기 위해 필요한 외화를 벌어주는 애국자’로 미화했다. 언론도 소녀들을 ‘낭자군(娘子軍)’으로 부르며 나팔수가 됐다. 특히 ‘낭자군’이란 별명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군비 상당 부분을 소녀들이 보내온 돈으로 충당하는 과정에서 쏟아져 나왔다.

 

‘우나기’ ‘간장 선생’ 등의 영화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1987년 ‘제겐’을 발표하기도 했다. 사진은 ‘제겐’ 포스터.

그러나 메이지 말기 이후로 국가는 ‘애국 소녀들’을 배신했다. 여론도 바뀌어 종당에는 ‘국가의 수치’가 됐다. 결국 일본 정부는 1920년 매춘 금지령을 내렸고, 해외의 성매매 여성들은 고향으로 돌아오거나 현지에 남아 여생을 보냈다.

대신 일본은 조선 등 해외 식민지에서 ‘위안부’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조선인 위안부’는 이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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