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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세계의 판도가 확연히 변하고 있다. 1991년 소련 붕괴로 냉전의 승자가 된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 주도하는 일극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미국과 중국 사이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포괄하여 일부에서는 ‘신냉전’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또는 ‘신냉전’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일찍이 1998년 5월 미국이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 동유럽 국가들을 나토에 가입시키기로 하였을 때 조지 케난은 새로운 냉전이 시작되었다고 평가하고 이에 대해 러시아가 강하게 대항할 것으로 예측하였는데 그의 우려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로 현실이 되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한 중국은 2013년 ‘중국몽’과 ‘일대일로’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대외적으로 영향력 확대에 나섰는데, 방심하다 시기를 놓친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하였다. 러시아나 중국 쪽에서는 ‘신냉전’이라는 표현 또는 ‘신냉전’의 개시 여부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데 반해 미국에서는 일부 다른 의견이 있으나 ‘신냉전’을 자주 거론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이 패권국으로서 위기의식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그런데 앞으로 세계의 판도 변화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전망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의 외교가 어떤 전략을 구사할 것인가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2차 대전 후 시작되어 90년대 초 종식된 냉전과 현재 이야기하고 있는 ‘신냉전’ 사이에는 여러 점에서 차이가 관찰된다.

첫째, 과거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이 그랬던 것처럼 미-중 양극 체제가 형성될 가능성은 작다. 중국의 국력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것은 사실이나 과거 소련처럼 하나의 진영을 형성하기에는 특히 소프트 파워 측면에서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객관적 국력으로는 러시아가 중국에 열세이긴 하나 러시아의 저력과 국민성을 고려할 때 중국의 종속적인 파트너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한, 과거에는 미국과 소련이 각각 자기 진영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나 특히 중국이 비서구권에서 그러한 지위에 오르기에는 인도, 브라질 등 새롭게 부상하는 나라들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한편 과거 냉전에서 동서 양 진영에 속하지 않은 이른바 제3세계가 국제정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였던 데 반해 오늘날에는 아시아, 아프리카 및 중남미 국가들의 목소리를 그냥 지나치기 어렵게 되었다.

둘째, 과거와 같이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 대립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념을 갖고 이야기한다면 미국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간 대립 정도이다. 한국 사회 일부에서 러시아와 중국을 공산주의라고 하며 ‘멸공’을 외치기도 하나 세상 물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우선 중국을 보면 한 마디로 1949년 이래 장기 집권하고 있는 정치세력의 이름이 ‘공산당’일 뿐이다.

셋째, 과거와 같이 진영 간 장벽을 쌓고 교류를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 과거에는 소련과 중공이 각각 ‘철의 장막’과 ‘죽의 장막’을 치고 자본주의 진영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하였고 서로 다른 진영에 속한 국가들 사이 무역 등 교류는 강하게 통제되었다. 21세기 현재 세계는 그간 다자주의와 세계화의 진전으로 국가 간 상호의존이 심화되어 어느 국가든 대외적으로 장벽을 친다면 자해행위가 될 정도이다. 실제로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특히 유럽연합이 러시아에 대해 수많은 경제제재를 쏟아내고 있는데, 제재하는 쪽이 제재를 받는 쪽보다 더 큰 피해를 보고 있다. 다자주의 및 개방주의를 훼손하고 있는 쪽은 러시아와 중국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과 유럽연합이다. 그런데 미국은 중국과 경제적으로 상당히 서로 얽혀 있어 이른바 중국과 완전히 분리하는 것(decoupling)은 미국 소비자들이 감내하여야 할 비용을 고려할 때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로 미국은 일단 첨단분야에서의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고자 중국을 반도체 등 특정 품목의 공급망에서 배제하고자 할 뿐이다.

넷째, 과거와는 달리 현재 강대국 간 직접적인 무력충돌 가능성이 상당하다. 현재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앞으로 나토와 러시아 간 직접적인 대결로 비화할 수도 있으며,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미국 간에 대만을 둘러싸고 무력충돌 가능성이 있다. 냉전이라는 용어는 역설적인 표현인데 과거에는 강대국 간 직접적인 무력충돌은 일어나지 않는 가운데 국지전 및 제한전의 형태로 제3국에서 군사적 충돌이 있었을 뿐이고 전 지구적으로 볼 때는 평화가 유지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과거 냉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의 세계는 과거와 같이 배타적인 진영이 형성되어 서로 대립하는 구도보다는 미국의 상대적 우위가 유지되는 가운데 일부 강대국들이 자기 영향권을 형성하여 세력 경쟁을 하는, 일종의 다극 체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신냉전’에 직면하여 한국은 어떤 외교전략을 취해야 할 것인가? 윤석열 정부의 최근 발언들을 보면 ‘신냉전’이 과거 냉전과 유사하게 전개될 것이며 동시에 미국의 패권이 앞으로도 공고할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외신기자 회견에서 윤 대통령이 한국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은 러시아에 마치 경고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나, 대만 문제를 두고 중국에 대해서 거침없이 미국 지도자나 쓸 법한 표현을 한 것이 그것이다. 물론 윤 대통령의 발언이 자극적이었다 할지라도 중국 측이 모욕적인 언사로 반응한 것에 대해서는 마땅히 짚고 넘어가는 것이 당연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제적 번영은 우리 자신의 노력뿐만 아니라 다자주의적 자유무역 체제에 힘입은 바가 크다. 현재로서는 국제사회가 과거 냉전 시대로 회귀할 가능성은 작다. 한국의 번영은 그 어떤 나라와도 교류하고 협력하겠다는 개방적 자세에 달려 있다. 여기서 긴요한 것은 친구를 늘이는 것보다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균형외교(?)는 ‘중국에 자발적으로 휘둘리면서 미국을 서운하게 하고 러시아를 경시하는’ 모자란 외교이었다. 어느 정도 균형외교를 취해야 한다고 할 때 미국과 중국에 대해 또는 미국과 러시아에 대해 각각 5:5로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를테면 7:3 또는 6:4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어느 중국 매체는 미국 방문을 앞두고 미국 보고 들으라고 충성 맹세(?)를 한 셈이라고 비난하였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나라와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고자 하더라도 우리에게 중요한 나라들을 쓸데없이 자극하고 화나게 할 필요는 없다. 외교는 웅변보다는 달변을 요구하는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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